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
![[시론] `신공항`이 남긴 뼈아픈 교훈](http://contents.dt.co.kr/images/201607/2016070102102351607002[1].jpg "[시론] `신공항`이 남긴 뼈아픈 교훈")
바다를 메워 만들까, 산을 깎아 만들까 하고 다투던 영남권 신공항건설이 밀양도 가덕도도 아닌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정됐다. 경제성을 따진 결과라고 하지만 영남권 지역다툼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청와대는 "김해공항 확장은 사실상 신공항으로 동남권 신공항 공약을 지켰다"고 했다. 잘못된 공약이거나 잘못되지 않았지만 상황이 바뀐 경우 공약을 접는 것은 옳은 일이고 그런 결단을 하는 게 리더십이다. 그런데 공약을 지켰다는 건 무슨 말인가. 구차한 언어의 유희다. 대통령은 그간의 사정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했다.
부산과 대구지역에서 정부가 "영남권 주민을 속인 것"이라며 신공항을 재추진하겠다는 말도 나왔다. 2015년 1월 영남권 5개 시·도지사는 신공항 유치경쟁을 하지 않고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런 약속은 깨면서 이전투구를 벌여놓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건 도를 넘는 후안무치다. 가덕도로 결정됐으면 대구지역주민을, 밀양으로 결정됐으면 부산지역주민을 속인 것이 되는가. 어디로 결정돼야 영남권 주민 모두를 속이지 않게 되는가.
"부산에서 5석을 만들어주면 가덕도 신공항을 반드시 유치하겠다"(지난 총선 때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가덕도가 안 되면 시장직을 걸겠다"(서병수 부산시장)는 발언을 보라. 신공항 입지결정 권한이 그들에게 있는 게 아닌데 아무리 정치적 발언이라 해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국가사업에 지자체장이 무슨 명분으로 직을 걸겠다고 했는가. 부산시장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을 사과하고 "김해 신공항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사과하는 것으로 끝나는가. 대구시·경북도는 김해공항 확장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도대체 어쩌자는 건가.
정치인들과 그들의 선동에 덩달아 춤춘 사람들은 공항의 경제성과 미래의 국가발전을 생각해보았을까. 돈을 낼 국민은 가만히 있는데 돈 쓸 사람들만 설쳐댔다. 지역사랑과 배타적 지역이기주의는 분명히 다르다. 특정지역과 특정세력의 정치적 압박에 밀려 국가정책이 결정될 수는 없다.
영남권 신공항건설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 때 검토되다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표몰이 공약으로 제기돼 영남 지역 간 유치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두 지역 모두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되자 이명박 대통령은 김해공항 확장을 검토하다가 2011년 3월 신공항 건설공약을 지킬 수 없음을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렇게 백지화된 사업을 2012년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대선공약으로 되살려냈다. 당시 야당의 문재인 후보도 같은 공약을 냈다.
지난번에도 그랬듯이 내년 대선에서 신공항건설 공약이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동남권 신공항 불씨가 꺼지기도 전에 또 다른 공항건설 이야기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차기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추미애 의원은 "당대표가 되면 새만금 신공항을 이뤄내겠다"고 했다. 전북 지역 당원들의 표를 의식한 발언이리라.
어쨌든 선거바람은 이성적 판단능력을 마비시킨다. 중요한 국책사업이 앞뒤 가리지 않고 특정지역 표몰이 공약으로 제기되고 그런 공약을 지키겠다고 하면 국가에 큰 부담으로 남는다. 호남권 표를 노린 노태우 대통령의 새만금 건설 공약, 충청권 표를 노린 노무현 대통령의 수도이전공약을 한 번 되돌아보라. 현재 전국 15개 공항 중 인천 김해 제주 김포 등 4곳을 뺀 나머지 11개 공항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공항건설이 정치적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지방공항이 한두 곳씩 늘어났고 폐쇄되거나 착공하다가 그만 둔 경우도 있다.
돈이 얼마 들어가고 그것이 국가발전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경제적 계산은 아예 안 하는 게 정치판 선거판이다. 결국 국민이 나서야한다. 허튼 공약을 남발하는 대선주자나 정치인들을 심판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