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광장] 영국이 `핀테크 허브`인 이유](http://contents.dt.co.kr/images/201511/2015111002102351749001[1].jpg "[DT광장] 영국이 `핀테크 허브`인 이유")
에스토니아 출신의 두 청년은 고민이 있었다. 한 명은 영국 파운드로 급여를 받지만 유로가 필요했고, 또 다른 한 명은 유로로 지급되는 월급 말고 영국 파운드가 필요했다. 두 사람은 서로 필요한 돈을 은행에서 환전하지 않고 가진 돈을 맞바꾸는 식으로 은행 수수료를 아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P2P(Peer to Peer) 환전 서비스인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는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
이들은 에스토니아인이지만 창업은 런던에서 했다. 영국의 자본 접근성, 인력 풀, 그리고 금융 인프라 등이 주변 유럽 국가에 비해 월등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창업 소재지로 런던을 택한 중요한 이유 중에는 규제 환경도 포함돼 있었다. 영국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 서비스인 트랜스퍼와이즈의 창업이 '합법적'으로 가능했을 뿐 아니라, 창업 1년 안에 관련 규정을 정비해 정식 허가를 내주기까지 했다. 런던은 개인간 자금 융통 방식인 '대출형 크라우드펀딩(P2P 대출)'에 대해서도 법규를 만들어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였다. 세계 최초의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기업인 '조파(ZOPA)'가 런던에서 창업한 이유였다. 영국은 이런 열린 마음과 기업을 배려하는 노력에 힘입어 핀테크 투자의 증가율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앞서면서 '핀테크 허브'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와는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당국이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음에도 핀테크를 비롯한 ICT 융합 벤처기업들은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고 있고, 핀테크 업계는 애로를 호소하고 있다. 규제 개선이 아닌 '규제 공백'의 문제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사업과 관련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사업자는 일단 대부업 등록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은 대부업과는 성격이 달라 소액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빌려주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대부업법 위반의 소지가 있고, 수수료 부과도 불법이어서 수익 기반이 취약하다. P2P 환전 서비스를 정상적인 영업형태로 인정하는 규정도 없다. 한국의 현행법상 P2P 환전 서비스는 '환(換)치기'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트랜스퍼와이즈' 같은 비즈니스 모델이 이 땅에 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사업 형태가 쏟아져 나오는 핀테크를 비롯한 ICT 융합 신산업의 현장에서는 규제 개선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는 새로운 사업 형태를 영위할 수 있도록 '규제 공백'을 빠르게 메우는 일이 시급하다. 다행히 정부는 P2P 환전서비스를 위한 '외환이체업', P2P 대출을 위한 'P2P 대출중개업'을 지정하는 등 관련 제도의 신설계획을 발표했다. 제도의 조속한 시행을 통해 ICT 융합 신산업 분야의 '규제 공백'을 신속하게 메워 이들 산업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자 새로운 수출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날이 앞당겨지길 기대한다.
김춘식 한국무역협회 무역정책지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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