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의식한 "그룹 개혁"…한·일 지배구조 바꾸기엔 역부족
순환출자 개선 등 개혁안 시기· 실행 불투명
정치권 칼날 우려 '울며 겨자먹기' 발표 지적
"가족과 경영 별개" 경영권 사수의지 피력도
순환출자 개선 등 개혁안 시기· 실행 불투명
정치권 칼날 우려 '울며 겨자먹기' 발표 지적
"가족과 경영 별개" 경영권 사수의지 피력도
불매 운동 등 반롯데 정서가 확산되고 정부가 재벌 기업에 대한 지배구조 조사에 착수하는 등 압박이 거세지자 결국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신 롯데 회장은 11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대(對)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기업 개혁안을 제시했다.
신 회장의 사과문 절반 이상이 '롯데는 한국 기업'이라는 내용으로 채워진 것으로 미뤄볼 때 현재 상황에서는 표면적으로라도 롯데그룹의 정체성 확보가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발표가 롯데그룹이 처한 역대 최대의 위기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신 회장이 제시한 기업 개혁안이 언제 시행될지, 그룹 지배를 좌지우지하는 지분 구조상 실행 가능성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신 회장이 제시한 그룹 개혁안은 롯데호텔에 대한 기업 공개를 통한 일본 계열회사들의 지분 비율 축소와 순환출자 해소가 주요 골자다.
그의 개혁안대로 호텔 롯데를 상장하더라도 일본 지분율이 워낙 높아 단기간 내에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그룹 7개 계열사 지분을 두루 보유한 실질적인 지주회사지만 최대주주는 일본의 롯데홀딩스(지분율 19.07%)로 신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은 L투자회사 12곳이 대부분인 72.65%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어 사실상 일본계 회사이다.
또 순환출자 해소에 대한 계획 발표 과정에서 보인 신 회장의 태도도 도마 위에 오르며 정부와 정치권의 칼날을 우려한 '울며 겨자먹기식' 발표가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신 회장은 "순환 출자를 비롯한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투명성 제고 조치를 빠른 시일 내에 시행하다"고 밝히면서도 "지주회사 전환에는 대략 7조 원의 재원이 필요한데, 연구개발과 신규채용 같은 그룹의 투자활동 위축이 우려된다"며 부정적인 면을 언급했다.
특히 신 회장은 대국민 사과 발표 후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에서 경영권 사수 의지를 강하게 피력해 대국민 사과를 한국 내 입지 다지기 '카드'로도 활용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지 15일 만에 이뤄진 이날 사과는 예정에 없었던 것으로 신 회장이 직접 결단해 급히 진행됐다고 알려졌다. 그만큼 신 회장이 이 자리를 통해 사과와 더불어 '반(反)신동빈' 진영에 자신의 '메시지'를 전했다는 분석이다.
신 회장은 "(갈등을 빚고 있는)가족들과 대화는 언제라도 할 것이지만 경영과 가족은 별개"라고 못 박으면서 경영권 다툼을 이어갈 것을 시사했다.
또 "글로벌 시너지를 내는 한일 롯데의 협력관계를 분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혀 한국과 일본의 분리 경영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한일 양국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한편, 신 회장의 사과문 발표 후 롯데그룹은 경영권 분쟁이 분수령이 될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총이 17일 개최한다고 밝혀 신 전 부회장 측의 '일본발 반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주총에서는 사외이사 선임건, 기업지배구조 등 경영 투명성 개선 등의 안건이 다뤄진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명예회장직 신설은 안건에서 빠졌으며, 신 전 부회장이 이번 주총에 안건을 올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신 전 부회장은 이미 롯데홀딩스 이사진과 L투자회사 대표를 신동빈 회장이 장악한 만큼 주총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신 신 전 부회장 측은 법적 대응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신 전 부회장은 신 회장이 아버지의 동의 없이 L투자회사 대표에 오른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10일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L투자회사 12곳 가운데 L4, 5, 6을 제외한 나머지 9곳에 대한 이의신청 성격의 새로운 변경등기 신청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져 주총에서 결론이 나지 않는 경영권 다툼이 법적 소송으로 지루하게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박미영기자 my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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