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개 국가서 집단지성 400만명이 17개 언어 번역 자청
싸이 등 SNS 번역 통해 홍보…이용자 번역포인트 기부 가능
싸이 등 SNS 번역 통해 홍보…이용자 번역포인트 기부 가능
(8) 플리토
"여러분 제가 어머니와 대화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해 한 애플리케이션(앱)에 올라온 글이다. 미국으로 입양 갔다 가까스로 한국에 있는 어머니를 찾았지만, 한국어를 할 줄 몰라 어머니와 대화가 어려웠던 친구는 이 앱을 발견했다. 어머니를 만난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식탁에 올려놓고 앱을 실행시켰다. "어디가 안 좋으세요?"를 앱에 영어로 올리자, 한국어로 번역됐다. 이를 다시 어머니에 보여줬다. 어머니도 한국어로 앱에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라고 입력했다. 다시 영어로 번역된 내용이 올라오자 딸은 그저 눈물만 흘렸다. 20여 년 넘게 떨어져 있던 모녀의 첫 상봉을 함께 한 건 가족도, 친구도, 번역사도 아닌 스마트폰 앱이었다. 그녀가 1시간 앱으로 대화하고, 마지막으로 올린 번역 의뢰 글은 "감사하다"는 말이었고, 그녀의 마지막 말은 번역에 함께 참여하고 있던 모든 이들을 울렸다.
집단 지성 번역 앱 '플리토'는 "가치 있는 것을 만들자"는 회사 모토를 그대로 녹인 앱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동안 번역은 전문가 영역이었다. 아니면 포털 사이트 자동 번역기가 대신해줬다. 특히 앱에서 이 같은 일을 수행하기란 어려웠다. 그런데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에 앱 하나만 설치하면, 언제 어디서나 번역을 의뢰하고, 누구나 참여해 번역을 수행하는 '집단 지성 번역'이라는 새로운 모바일 서비스가 등장한 것이다. 이 개념을 처음 만든 이가 플리토를 창업한 이정수 대표다.
14일 서울 강남 청담동 플리토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짧은 글 몇 줄, 한 페이지 정도 되는 서류를 번역하려고 전문 번역가에 높은 비용을 내는 게 보편적 번역 방식이었다"며 "좀 더 쉽고 빠르게, 저렴하게 번역을 할 순 없을까 생각하다 누구나 참여해 함께 공동 번역하는 플리토 앱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SK텔레콤에서 사내 벤처 아이디어로 '집단 지성 번역'을 냈다가, 함께 활동하게 된 이가 회사 선배인 강동한 이사와 김진구 이사다. 2011년 아이디어도 있고, 사내에서 최고 엔지니어로 꼽히는 든든한 선배도 함께 했지만, 실제 앱 서비스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회사 생활과 병행하느라 '올인'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다 2012년 사내벤처를 해체한다는 회사 방침이 정해지면서 "이때다"고 생각한 세 명은 창업을 결심하고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영국 최대 벤처 지원 단체인 테크크런치의 인큐베이팅 팀에 선정돼 창업과 동시에 영국에서 4개월간 교육을 받았다. 영국으로 떠나기 2주 전 사석에서 우연히 국내 투자사인 DSC인베스트먼트 관계자를 만나고, 창업 아이디어를 얘기하자 단번에 5억원 투자 결정까지 이뤄졌다. 돈도 있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에서 교육도 받게 됐지만, 영국으로 떠난 세 명은 누구보다 치열했다. 하루 점심과 저녁 두 끼는 교육건물 앞에 있는 샌드위치만 먹었고, 그곳에 입주한 스타트업 중에서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자는 다짐도 끝까지 지켰다. 이 대표는 "5억원이란 돈이 있었지만, 투자자에 미안해서 이 돈을 그곳에서 한 푼도 쓸 수 없었다"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당시 두 이사가 플리토 개발 작업을 맡았고, 이 대표는 서비스 디자인과 마케팅에 주력했다. 일단 플리토를 알리는 게 중요했다. 집단 지성 번역을 위해 참여하는 이가 많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택한 방법은 "한류스타 소셜네워크서비스(SNS)를 공략하자"였다. 싸이, 슈퍼주니어 등 세계적으로 한류가 대세였다. 이들이 SNS로 올린 글을 일일이 이 대표가 직접 번역해 다시 SNS에 올렸다. 처음엔 의아하게 보던 싸이나 슈퍼주니어 멤버도 "제 글을 읽고 싶으면 '플리토'로 가세요"라며 홍보대사가 돼버렸다. 그렇게 급속도로 이용자가 늘었고, 1년 6개월 전인 2013년 말, 지금의 플리토 서비스가 완성되며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세계 170여 개 국가 400만명이 넘는 사용자가 17개 언어 번역을 자청하며 플리토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용자는 짧은 번역을 하고 받은 포인트로 사이트에 등록된 물건을 사거나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 있다. 하루 평균 번역 요청 건수만 7만 건이 넘는다. 3명이던 직원은 32명으로 불어났다.
이 대표는 창업을 꿈꾸거나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이들에게 "창업 초기 힘들어 버티기 힘들다는 이들이 많은데, 창업 후 하루하루 지날수록 더 힘들어진다. 오히려 창업 초기가 제일 덜 힘들었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 지금 원하고 있는 것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면 힘든 순간도 금방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선기자 dubs45@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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