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투자 등 유형자산 비중 높아 대외경제 대응력 미흡
R&Dㆍ원천기술 경쟁력 키워 지속가능 생태계 구축해야
IoT 기반 융합 서비스 확산… 한국경제 재도약 기회로
R&Dㆍ원천기술 경쟁력 키워 지속가능 생태계 구축해야
IoT 기반 융합 서비스 확산… 한국경제 재도약 기회로
■ 2015~2020 `골든타임`…혁신나선 한국경제
대한민국 제조업의 부진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는 환율 등 대외 경제요인의 영향이다. 이는 자칫 우리는 하던 대로 잘했지만 주변 환경이 도와주지 않아서 억울하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외부 환경을 탓하기 전에 우리 제조업의 구조적인 한계를 먼저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계 경제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지만, 우리 제조업의 구조는 아직 과거의 성장공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제조업이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전략을 버리고 새로운 성장공식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안전하고 단기적인 성과에만 추구하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다.
20세기 후반까지는 이 전략이 충분히 통했다.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까지 이어진 시장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비슷한 제품을 누가 더 싸고 좋은 품질로 내놓는지가 경쟁력의 핵심이었다. 우리나라는 특유의 근면성과 빠른 손재주, 정부와 기업 간 긴밀한 협력 아래 이뤄진 적극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전 세계가 놀랄 만한 엄청난 성장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대립이 끝나고 중국이 엄청난 내수시장을 앞세워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를 이끄는 양대 축으로 부상하면서 우리가 처한 시장 상황은 달라졌다. '패스트 팔로워' 경쟁으로는 중국의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을 이겨낼 방법이 없게 됐고, 그 사이 미국 등 선진국 진영에서는 IT와 융합, R&D를 앞세운 혁신으로 새로운 시장 영역을 끊임없이 개척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주요 국가들이 각자의 살길을 모색하는 가운데 우리는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패스트 팔로워'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스마트폰이다. 지난해까지 삼성전자뿐 아니라 우리 제조업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스마트폰은 이제 애플 아이폰과 중국 중저가폰에 밀려 매출 점유율 20% 초반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경직된 제조업의 생태계와 이에 따른 부가가치 창출 능력의 저하다. LG경제연구원에 의하면,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하락세(2010년 5.7%→2013년 4.0%)를 보였던 국내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은 2014년(상반기 기준 4.4%) 소폭 상승했다. 2010년 6.1%에서 2013년 4.6%로 하락했던 전 세계 제조기업의 영업이익률도 2014년 상반기 5.2%로 회복됐다. 그렇지만 국내 제조업의 상승폭(0.4%포인트)은 세계 제조기업(0.6%포인트)에 미치지 못해 영업이익률 격차 역시 2013년 0.6%포인트에서 지난해 상반기 0.8%포인트로 벌어졌다. 이는 국내 제조업체들이 원천기술이나 특허, 플랫폼 등 무형자산보다는 대규모 설비투자를 앞세운 유형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2014년 상반기 말 국내 제조기업의 총자산 중에서 유형자산의 비중은 전 세계 제조기업의 26.5%에 비해 9.3%p 높은 35.8%로 집계됐다. 미국의 경우 12.8%, 제조업이 발달한 독일의 경우도 19.8%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제조업이 설비투자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유형자산을 많이 보유한 사업구조를 가진 기업은 현금흐름이 악화 돼도 일정한 투자를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경영환경 변화에 대한 탄력적 대응능력이 약해져 경기가 부진할 때에 실적이 급격하게 악화 되는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국제유가 하락과 공급과잉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국내 철강·정유화학 업계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같은 현실을 비춰볼 때 우리 제조업의 성장 패러다임 전환은 시급한 과제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해 "국내 제조업이 세계 경제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그럼 우리가 가져가야 할 새로운 제조업의 성장엔진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미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 시대 진입을 눈앞에 둔 우리 제조업의 살길은 결국 원천기술과 플랫폼 생태계 조성 등 무형자산을 키우는 것이다. 당장 먹거리를 위한 공장 증설보다는, 기존 시장의 틀을 과감하게 깨고 적극적인 R&D 투자를 바탕으로 원천기술을 확보해 긴 안목의 지속가능성을 찾아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나 독일, 이스라엘의 기업들의 자산 중에서 유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대에 불과하다는 것은 국내 기업의 방향성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며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혁신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유행처럼 확산 되고 있는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융합 활성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웨어러블 기기의 경우 누구나 의료, 보안, 자동차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소비자 접점이 될 수 있다. 특정 사업자가 제공하는 제품만 이용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동성과 휴대성, 시야각에서 유리한 웨어러블 기기와 IoT 플랫폼을 접하면 단일 제품뿐 아니라 더 큰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주요 경쟁력이 된다.
또 IoT를 에너지 산업과 연결하면, 에너지 저감을 유도하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조원가를 낮추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자동차와 IoT의 결합은 전자 업계의 자동차 시장 진출의 기회를 제공해 줄 뿐 아니라, 스마트홈·스마트그리드와 연계한 새로운 시장 영역을 열어줄 수도 있다. IoT를 활용한 헬스케어와 원격의료 역시 의료시장을 혁신하는 하나의 중요한 열쇠로 주목받고 있으며, 삼성전자 등 주요 제조업체들이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보안 솔루션 역시 IoT 시대를 맞아 주요 미래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꼽힌다.
임양수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사물인터넷의 확산은 외부 혁신에 의한 다양한 융합 서비스가 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의 도래를 앞당기고 있다"며 "기업들의 혁신의지를 되살릴 수 있는 국가 차원의 현실적인 지원 정책이 뒷받침된다면 ICT 강국으로서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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