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논문색인 평가 목매 기술 뒷전
연구기관ㆍ중소기업 네트워크 구축 필요
네거티브방식규제 등 개선방안 긍정평가
분야별 연구성과 상시평가제도 만들어야
연구기관ㆍ중소기업 네트워크 구축 필요
네거티브방식규제 등 개선방안 긍정평가
분야별 연구성과 상시평가제도 만들어야
■ `국가R&D 제도개선 방안` 좌담회
"SCI(과학기술논문색인) 논문 양산에 전체 연구자들이 매달리다 보니 국가를 먹여 살릴 강한 기술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SCI 논문 중심 평가제도를 바뀌어야 과학기술 정책이 제 방향을 찾는다." "기초연구와 응용연구, 과학과 기술의 차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응용연구는 연구와 산업현장이 연결되는 정도가 아니라 밀착해서 연구성과가 바로 산업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 과학이 아닌 공학자까지 논문으로 평가해선 계속 국가R&D가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지난 13일 `국가 R&D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본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공동 진행한 좌담회에서 나온 의견들이다.
전문가들은 국가R&D가 `R&D를 위한 R&D'에 그치지 않고, `강한 기술'의 산파 역할을 하도록 평가ㆍ선정 등 제도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참석자
김상식 고려대 전기공학과 교수ㆍ산학협력단장
김후식 뷰웍스 대표
박항식 미래부 창조경제조정관
오영제 KIST 책임연구원ㆍ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회장
이광형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ㆍ미래전략대학원장
이상일 산업기술평가관리원 신산업기술본부장(가나다순)
사회=장윤옥 디지털타임스 생활과학부장
▶사회=미래창조과학부가 국가연구개발(R&D) 사업의 실질적 성과를 높이기 위한 R&D 규제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규제개선 추진 배경과 큰 틀의 방향은 무엇인가.
▶박항식=우리나라는 R&D 투자를 계속 확대해 왔다. 이에 따라 논문이나 특허의 양적 증가는 두드러지는데 기술이전, 사업화 등 창조경제로 이어지는 실질적 성과는 미흡한 실정이다.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SCI 논문건수는 연평균 8.8%, 특허 출원건수는 8.4% 늘어난 반면 기술료는 10.7%, 사업화 건수는 0.9%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자의 자율성과 몰입을 저해하는 규제 중심 연구관리제도가 문제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처별로 다르고 복잡한 연구관리 규정과 절차 때문에 연구자들의 혼란과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미래부ㆍ산업부ㆍ중기청 등 8개 부처와 산학연 대표기관 관계자로 구성된 `과학기술 규제개선 추진위원회'를 지난 9월 2일 발족하고,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실무작업반을 통해 국가R&D 규제개선방안 초안을 마련,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 안은 19일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의결을 통해 확정할 예정이다.
개선안은 창조경제를 이끌 선도형 R&D를 위한 연구자 친화적ㆍ자율적 환경 조성을 목표로, 부처별로 서로 다른 규정을 표준화하고,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 완화와,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제재하는 규제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투 트랙 전략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사회=성과창출을 어떻게 촉진할 것인가. 성과를 높이는 데 있어서 현장의 문제는 무엇이고, 개선방향은 무엇인가.
▶김상식=연구현장에서 SCI 논문이 양적으로 급격히 늘어난 반면 기술이전은 줄었다는 `SCI 양적 팽창'에 대한 비난이 높다. 하지만 SCI 양적 팽창은 우리나라 과학기술ㆍ산업발전 단계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현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문제는 논문 자체를 위한 논문들을 내놨다는 것이다. 이를 핵심특허나 기술이전으로 잇는 연결고리를 고민할 때다.
▶김후식=국가R&D 예산이 아웃풋 없는 `연구놀이'에 쓰인다는 지적이 많다. 연 16조원이 국가R&D사업으로 투입되는데 기술료 수익은 3000억이 채 안 된다고 한다. 물론 기초연구는 제쳐두더라도 응용연구까지 같은 흐름이면 안될 일이다.
특허조차 건수로 성과를 따지다 보니 건수를 늘리기 위해 A급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기술을 잘게 쪼개 C급 특허로 만들어놓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를 예를 들면 `바퀴 4개와 엔진으로 굴러가는 기관이나 장비'로 정의하면 범위가 아주 큰 기본특허로 잡히겠지만 이렇게 잡으면 변리사와 많이 싸워야 하고 특허출원 비용이 많이 나가니 엔진 개량이나 와이퍼 등으로 좁게 잡는다. 또 기술이전하기 전 미리 특허부터 내서 공지하다 보니 기술이 죽는 경우가 많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이전을 받을 때 이런 점들이 다 장애물이다.
기업은 명확하게 시장에 어떻게 팔 지를 생각하고 특허를 내는데 대학은 아무 그림 없이 건수 올리기식 특허를 낸다.
SCI 논문도 마찬가지다. 학술지에서 기술의 신규성을 따지니 연구자도 자꾸 좁혀서 논문을 낸다.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의 경우 지역 중소기업과 미리 연계해서 연구하기 때문에 연구비 대비 기술료 비중이 60∼70%에 이른다고 한다.
국가R&D를 왜 하느냐를 근본적으로 생각해서 응용연구만이라도 타깃을 명확히 해 전략을 짜야 한다. 대기업은 이미 연구 수준이 앞서있기 때문에 국가R&D에 기댈 일이 없다. 중소기업은 받고 싶어도 출연연 연구와의 연결고리가 취약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을 위해서 한다면 일이 진짜 되도록 해야 한다. 출연연 연구원이 중소기업에 파견을 가든지 과제를 이관시킨 후 상품화까지 되는 것을 보고 돌아오거나 스톡옵션을 받고 과실을 함께 향유하든지 해서 상품화, 사업화에 밀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따로 놀면 지금 이상으로 갈 수 없다.
▶오영제=개선방안에 현장 의견들이 많이 반영된 것 같아 고무적이다.
그동안은 연구자가 개발한 기술이 상용화됐을 때 받는 인센티브가 상당히 미흡했다. 포상제도나 기술료 제도 등을 손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프라와 분위기를 조성해주면 충분히 변화할 것으로 본다. SCI 집중 문제도 연구자 평가시스템이 전면적ㆍ획기적으로 개선되면 바뀔 것으로 생각한다.
▶이상일=산업부는 R&D 성과창출을 고민하면서 리스크가 높고 장기적인 R&D는 정부가 톱다운 방식으로 추진하고, 나머지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자유공모제 형태로 선정해 지원하는 투 트랙 전략으로 가고자 한다.
자유공모제로 하는 ATC(우수제조기술연구센터) 사업이 작년 10년을 맞아 효과를 분석했더니 투자대비 매출이 7배 정도로 높았다.
대학과 기업간 협업에 대해 얘기하자면 외국은 아주 잘 되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잘 안 되고 있다. 문화적 풍토도 원인인 것 같다. 산업부의 경우 연구목표를 정하고 대학과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도록 대기업을 끌어들인 후 정부와 기업이 매칭펀드를 대학에 줘서 대학이 기업과 협업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올해 처음 만들었는데,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어 가면 좋은 성과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광형=이번 연구제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성과창출과 관련해 얘기하자면, 한마디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R&D는 현재 길을 잃었다고 본다. 사람은 사회의 보상시스템에 따라 움직인다. 평가제도 때문에 모든 연구자가 SCI의 노예가 되고 있다. 과학분야의 평가는 지금의 평가제도가 타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기술분야까지 그러고 있다는 게 문제다. 논문 숫자와 인용지수를 계산해서 좋은 연구자를 가리고 프로젝트를 주는 시스템으로 지난 10여년 동안 국가를 먹여 살릴 대표적인 기술이 안 나왔다. 이 시스템으로 가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SCI가 과학기술 발전 초기단계에는 필요하다. 이제 벗어날 때가 지났는데 못 벗어나서 이런 문제가 일어난다. SCI를 파괴해야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이 제 방향을 찾을 수 있다.
미래부와 교육부가 뜻을 모아 대학평가 시 SCI 평가를 안 하면 된다. 선진국은 안 하는데 우리가 왜 여기에 매몰되는가.
▶박항식=과학자과 공학자는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노벨 수상자를 내는 게 중요하냐, 노벨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냐는 얘기가 있다.
▶이상일=산업부같이 시제품을 생산하고 실제 성과물을 내는 데서는 논문이 아니라, 교수들이 기업과 얼마나 협업을 많이 하고 기술지원을 했는지를 평가 잣대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논문과 특허에 안 매이고 더 많은 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전체적으로는 현장 중심으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로 종합되는 것 같다. 어떤 인센티브와 동기 유발 방안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김상식=기술이전 시 주어지는 연구자 인센티브에 대해 기술이전 관련 법령을 검토해서 현재 상황과 맞지 않거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내용은 개선해야 한다.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연구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김후식=기업 입장에서는 기술이전 인센티브를 줄 용의가 충분히 있고, 기술 발명자가 기술이전에 그치지 않고 기업으로 와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으면 하는데 많은 이들이 명확한 비전이 없어서 꺼린다. 기술을 개발한 대학 연구원에게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후 회사에 들어오면 기술지분까지 주겠다고 하지만 많은 이들이 교수가 시켜서 연구를 할 뿐 기술이 시장에 팔릴지 확신이 없다 보니 덤벼들지 않는다. 상용화를 위한 응용연구는 비전을 갖고 해야 하는데 논문 쓰고 졸업하기 위해 하는 경우가 많다.
▶오영제=출연연 연구자들이 중장기 국가 미션 연구를 하면서 20∼30%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도록 하려면 실제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연구자들의 봉사심과 애국심에만 호소할 수는 없다.
▶김후식=우량 중소기업은 매출의 10% 정도를 R&D에 쓰고, 우리 회사만 해도 1년에 70억원을 R&D에 투자한다. 그중 일부는 출연연, 대학과 연계해서 투자하고 싶은데, 이유는 인력을 구하는 게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은 충분히 출연연과 협력할 준비가 다 돼 있다.
▶사회=연구관리 시스템 개선 의견을 제시한다면.
▶김후식=중소기업과 출연연간의 네트워킹 지원방안이 필요하다. 지금은 중소기업 연구인력이 개인적으로 출연연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네트워크가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힘들다. 중소기업이 하고자 하는 연구를 하고 출연연이 이를 지원하도록 네트워크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광형=정부의 개선방안을 보니 나도 새로 연구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행정처리, 영수증 처리가 지겨워 연구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사전에 정의하는 기존 규제 방식을 `무엇만 안 하면 된다'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꾼다면 엄청난 개선이 이뤄질 것이다. 서류와 행정처리 간소화도 기대가 크다.
지금까지 회의비를 집행하려면 사전에 결재나 품의를 해야 했는데 10만원 이하는 이를 면제하고 영수증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한 점도 고무적이다. 10만원 이하 회의가 전체의 67%에 이른다고 하니 연구자들이 개선사항을 체감할 것이다.
연구 평가체계를 질적 성과 중심으로 전환하는 점도 중요한 변화다. 특히 공학은 더 숫자에서 벗어나도록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오영제=네거티브 방식 규제와 함께 경쟁기획형 R&D 제도 도입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중복연구를 엄격하게 제한하다 보면 창조적인 연구성과 창출을 저해할 수 있는데, 동일한 연구목표를 두고 복수의 연구자가 다른 기술적 접근방식으로 경쟁하다 보면 더 나은 성과들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박항식=회의비 집행 간소화, 경쟁기획형 사업 확대,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 도입, 혁신형 연구관리시스템 구축 등이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된다. 혁신형 시스템은 성실한 연구에 대해 실패 시에도 불이익을 면제하고 재도전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연구자 선정시 동일 기관이나 사제, 친족관제를 평가위원에서 제외하는 상피제도 완화도 중요한 시도다. 지금까지 상피제도를 너무 강화하다 보니 좋은 대학 교수가 과제를 신청하면 그 대학 교수가 다 평가위원에서 빠지는 문제가 있었다. 동일 학과가 아니면 풀려고 한다.
이들 20개 개선제도는 관계부처 협의를 끝냈고, 내년 초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특히 네거티브 시스템은 연구관리 관련 하위규정까지 완전히 고쳐지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상반기에 제도가 개선되면 많은 것이 정리될 것이다.
아울러 제도 개선은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 해 나가야 하는 만큼 옴부즈만제도 등을 둬서 현장에 착근하지 못한 제도는 계속 발굴해 고쳐나가겠다.
▶사회=개선제도 적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은.
▶이상일=평가위원 문제는 영원한 숙제다. 미국은 PD제도를 두고 해당 분야 PD가 예산을 직접 관리한다. 우리나라는 지연, 학연 다 빼고 평가위원을 뽑다 보니 평가의 질적 문제가 계속 지적된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앞세울지, 평가의 질을 내세울 지를 정부가 선택하고, 그에 따라 제도를 개선할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PD나 전문가가 직접 뽑는 것은 문제가 있으니 분야별 그룹을 만들어 상시평가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광형=혁신형 연구관리시스템은 특히 중요하고 꼭 해야 한다. 90% 넘는 연구 성공은 말이 안 된다. 다만 구체적인 방향이 궁금하다. 2억 이하 과제는 성공률 50% 이하를 목표하는 등의 가이드라인이 있나. 그런 게 있다면 신진연구자들이 더 마음 편하게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박항식=혁신형 시스템을 접목할 과제에 대해 부처들에 가이드라인을 주고 부처들이 대상 사업들을 정했다. 내년에 7000억원 규모 사업이 대상이다. 연구과제를 공지할 때 혁신형 과제인지 여부를 주무부처 장관이 공지하도록 했다.
혁신형 과제를 선정 평가할 때는 다른 과제보다 도전성을 30%로 더 중요하게 볼 것이다. 단계적으로 대상 사업 규모를 총 2조까지 늘릴 계획이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규제 개선이라고 생각한다. 한 술에 배부르지 않겠지만 연구개발과 과학기술 정책 전반의 규제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또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계속 점검해 나가겠다.
예를 들어 연료전지 기술을 개발한다면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충전소 설치 등 실용화와 연계된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창조경제가 성공할 수 있다. R&D 계획만 있어서는 안 된다. 창조경제는 과학기술 외에 공정거래, 환경개선, 금융관행, 인증 등 여러 문제를 함께 풀어야 이뤄진다. 전 부처가 해야 할 창조경제 과제를 만들고 틀을 만드는 게 창조경제조정관을 만든 이유라고 본다.
정리=안경애기자 naturean@
사진=김민수기자 ultrartist@
"SCI(과학기술논문색인) 논문 양산에 전체 연구자들이 매달리다 보니 국가를 먹여 살릴 강한 기술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SCI 논문 중심 평가제도를 바뀌어야 과학기술 정책이 제 방향을 찾는다." "기초연구와 응용연구, 과학과 기술의 차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응용연구는 연구와 산업현장이 연결되는 정도가 아니라 밀착해서 연구성과가 바로 산업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 과학이 아닌 공학자까지 논문으로 평가해선 계속 국가R&D가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지난 13일 `국가 R&D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본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공동 진행한 좌담회에서 나온 의견들이다.
전문가들은 국가R&D가 `R&D를 위한 R&D'에 그치지 않고, `강한 기술'의 산파 역할을 하도록 평가ㆍ선정 등 제도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참석자
김상식 고려대 전기공학과 교수ㆍ산학협력단장
김후식 뷰웍스 대표
박항식 미래부 창조경제조정관
오영제 KIST 책임연구원ㆍ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회장
이광형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ㆍ미래전략대학원장
이상일 산업기술평가관리원 신산업기술본부장(가나다순)
사회=장윤옥 디지털타임스 생활과학부장
▶사회=미래창조과학부가 국가연구개발(R&D) 사업의 실질적 성과를 높이기 위한 R&D 규제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규제개선 추진 배경과 큰 틀의 방향은 무엇인가.
▶박항식=우리나라는 R&D 투자를 계속 확대해 왔다. 이에 따라 논문이나 특허의 양적 증가는 두드러지는데 기술이전, 사업화 등 창조경제로 이어지는 실질적 성과는 미흡한 실정이다.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SCI 논문건수는 연평균 8.8%, 특허 출원건수는 8.4% 늘어난 반면 기술료는 10.7%, 사업화 건수는 0.9%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자의 자율성과 몰입을 저해하는 규제 중심 연구관리제도가 문제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처별로 다르고 복잡한 연구관리 규정과 절차 때문에 연구자들의 혼란과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미래부ㆍ산업부ㆍ중기청 등 8개 부처와 산학연 대표기관 관계자로 구성된 `과학기술 규제개선 추진위원회'를 지난 9월 2일 발족하고,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실무작업반을 통해 국가R&D 규제개선방안 초안을 마련,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 안은 19일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의결을 통해 확정할 예정이다.
개선안은 창조경제를 이끌 선도형 R&D를 위한 연구자 친화적ㆍ자율적 환경 조성을 목표로, 부처별로 서로 다른 규정을 표준화하고,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 완화와,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제재하는 규제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투 트랙 전략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사회=성과창출을 어떻게 촉진할 것인가. 성과를 높이는 데 있어서 현장의 문제는 무엇이고, 개선방향은 무엇인가.
▶김상식=연구현장에서 SCI 논문이 양적으로 급격히 늘어난 반면 기술이전은 줄었다는 `SCI 양적 팽창'에 대한 비난이 높다. 하지만 SCI 양적 팽창은 우리나라 과학기술ㆍ산업발전 단계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현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문제는 논문 자체를 위한 논문들을 내놨다는 것이다. 이를 핵심특허나 기술이전으로 잇는 연결고리를 고민할 때다.
▶김후식=국가R&D 예산이 아웃풋 없는 `연구놀이'에 쓰인다는 지적이 많다. 연 16조원이 국가R&D사업으로 투입되는데 기술료 수익은 3000억이 채 안 된다고 한다. 물론 기초연구는 제쳐두더라도 응용연구까지 같은 흐름이면 안될 일이다.
특허조차 건수로 성과를 따지다 보니 건수를 늘리기 위해 A급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기술을 잘게 쪼개 C급 특허로 만들어놓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를 예를 들면 `바퀴 4개와 엔진으로 굴러가는 기관이나 장비'로 정의하면 범위가 아주 큰 기본특허로 잡히겠지만 이렇게 잡으면 변리사와 많이 싸워야 하고 특허출원 비용이 많이 나가니 엔진 개량이나 와이퍼 등으로 좁게 잡는다. 또 기술이전하기 전 미리 특허부터 내서 공지하다 보니 기술이 죽는 경우가 많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이전을 받을 때 이런 점들이 다 장애물이다.
기업은 명확하게 시장에 어떻게 팔 지를 생각하고 특허를 내는데 대학은 아무 그림 없이 건수 올리기식 특허를 낸다.
SCI 논문도 마찬가지다. 학술지에서 기술의 신규성을 따지니 연구자도 자꾸 좁혀서 논문을 낸다.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의 경우 지역 중소기업과 미리 연계해서 연구하기 때문에 연구비 대비 기술료 비중이 60∼70%에 이른다고 한다.
국가R&D를 왜 하느냐를 근본적으로 생각해서 응용연구만이라도 타깃을 명확히 해 전략을 짜야 한다. 대기업은 이미 연구 수준이 앞서있기 때문에 국가R&D에 기댈 일이 없다. 중소기업은 받고 싶어도 출연연 연구와의 연결고리가 취약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을 위해서 한다면 일이 진짜 되도록 해야 한다. 출연연 연구원이 중소기업에 파견을 가든지 과제를 이관시킨 후 상품화까지 되는 것을 보고 돌아오거나 스톡옵션을 받고 과실을 함께 향유하든지 해서 상품화, 사업화에 밀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따로 놀면 지금 이상으로 갈 수 없다.
▶오영제=개선방안에 현장 의견들이 많이 반영된 것 같아 고무적이다.
그동안은 연구자가 개발한 기술이 상용화됐을 때 받는 인센티브가 상당히 미흡했다. 포상제도나 기술료 제도 등을 손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프라와 분위기를 조성해주면 충분히 변화할 것으로 본다. SCI 집중 문제도 연구자 평가시스템이 전면적ㆍ획기적으로 개선되면 바뀔 것으로 생각한다.
▶이상일=산업부는 R&D 성과창출을 고민하면서 리스크가 높고 장기적인 R&D는 정부가 톱다운 방식으로 추진하고, 나머지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자유공모제 형태로 선정해 지원하는 투 트랙 전략으로 가고자 한다.
자유공모제로 하는 ATC(우수제조기술연구센터) 사업이 작년 10년을 맞아 효과를 분석했더니 투자대비 매출이 7배 정도로 높았다.
대학과 기업간 협업에 대해 얘기하자면 외국은 아주 잘 되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잘 안 되고 있다. 문화적 풍토도 원인인 것 같다. 산업부의 경우 연구목표를 정하고 대학과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도록 대기업을 끌어들인 후 정부와 기업이 매칭펀드를 대학에 줘서 대학이 기업과 협업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올해 처음 만들었는데,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어 가면 좋은 성과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광형=이번 연구제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성과창출과 관련해 얘기하자면, 한마디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R&D는 현재 길을 잃었다고 본다. 사람은 사회의 보상시스템에 따라 움직인다. 평가제도 때문에 모든 연구자가 SCI의 노예가 되고 있다. 과학분야의 평가는 지금의 평가제도가 타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기술분야까지 그러고 있다는 게 문제다. 논문 숫자와 인용지수를 계산해서 좋은 연구자를 가리고 프로젝트를 주는 시스템으로 지난 10여년 동안 국가를 먹여 살릴 대표적인 기술이 안 나왔다. 이 시스템으로 가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SCI가 과학기술 발전 초기단계에는 필요하다. 이제 벗어날 때가 지났는데 못 벗어나서 이런 문제가 일어난다. SCI를 파괴해야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이 제 방향을 찾을 수 있다.
미래부와 교육부가 뜻을 모아 대학평가 시 SCI 평가를 안 하면 된다. 선진국은 안 하는데 우리가 왜 여기에 매몰되는가.
▶박항식=과학자과 공학자는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노벨 수상자를 내는 게 중요하냐, 노벨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냐는 얘기가 있다.
▶이상일=산업부같이 시제품을 생산하고 실제 성과물을 내는 데서는 논문이 아니라, 교수들이 기업과 얼마나 협업을 많이 하고 기술지원을 했는지를 평가 잣대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논문과 특허에 안 매이고 더 많은 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전체적으로는 현장 중심으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로 종합되는 것 같다. 어떤 인센티브와 동기 유발 방안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김상식=기술이전 시 주어지는 연구자 인센티브에 대해 기술이전 관련 법령을 검토해서 현재 상황과 맞지 않거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내용은 개선해야 한다.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연구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김후식=기업 입장에서는 기술이전 인센티브를 줄 용의가 충분히 있고, 기술 발명자가 기술이전에 그치지 않고 기업으로 와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으면 하는데 많은 이들이 명확한 비전이 없어서 꺼린다. 기술을 개발한 대학 연구원에게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후 회사에 들어오면 기술지분까지 주겠다고 하지만 많은 이들이 교수가 시켜서 연구를 할 뿐 기술이 시장에 팔릴지 확신이 없다 보니 덤벼들지 않는다. 상용화를 위한 응용연구는 비전을 갖고 해야 하는데 논문 쓰고 졸업하기 위해 하는 경우가 많다.
▶오영제=출연연 연구자들이 중장기 국가 미션 연구를 하면서 20∼30%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도록 하려면 실제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연구자들의 봉사심과 애국심에만 호소할 수는 없다.
▶김후식=우량 중소기업은 매출의 10% 정도를 R&D에 쓰고, 우리 회사만 해도 1년에 70억원을 R&D에 투자한다. 그중 일부는 출연연, 대학과 연계해서 투자하고 싶은데, 이유는 인력을 구하는 게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은 충분히 출연연과 협력할 준비가 다 돼 있다.
▶사회=연구관리 시스템 개선 의견을 제시한다면.
▶김후식=중소기업과 출연연간의 네트워킹 지원방안이 필요하다. 지금은 중소기업 연구인력이 개인적으로 출연연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네트워크가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힘들다. 중소기업이 하고자 하는 연구를 하고 출연연이 이를 지원하도록 네트워크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광형=정부의 개선방안을 보니 나도 새로 연구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행정처리, 영수증 처리가 지겨워 연구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사전에 정의하는 기존 규제 방식을 `무엇만 안 하면 된다'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꾼다면 엄청난 개선이 이뤄질 것이다. 서류와 행정처리 간소화도 기대가 크다.
지금까지 회의비를 집행하려면 사전에 결재나 품의를 해야 했는데 10만원 이하는 이를 면제하고 영수증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한 점도 고무적이다. 10만원 이하 회의가 전체의 67%에 이른다고 하니 연구자들이 개선사항을 체감할 것이다.
연구 평가체계를 질적 성과 중심으로 전환하는 점도 중요한 변화다. 특히 공학은 더 숫자에서 벗어나도록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오영제=네거티브 방식 규제와 함께 경쟁기획형 R&D 제도 도입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중복연구를 엄격하게 제한하다 보면 창조적인 연구성과 창출을 저해할 수 있는데, 동일한 연구목표를 두고 복수의 연구자가 다른 기술적 접근방식으로 경쟁하다 보면 더 나은 성과들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박항식=회의비 집행 간소화, 경쟁기획형 사업 확대,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 도입, 혁신형 연구관리시스템 구축 등이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된다. 혁신형 시스템은 성실한 연구에 대해 실패 시에도 불이익을 면제하고 재도전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연구자 선정시 동일 기관이나 사제, 친족관제를 평가위원에서 제외하는 상피제도 완화도 중요한 시도다. 지금까지 상피제도를 너무 강화하다 보니 좋은 대학 교수가 과제를 신청하면 그 대학 교수가 다 평가위원에서 빠지는 문제가 있었다. 동일 학과가 아니면 풀려고 한다.
이들 20개 개선제도는 관계부처 협의를 끝냈고, 내년 초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특히 네거티브 시스템은 연구관리 관련 하위규정까지 완전히 고쳐지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상반기에 제도가 개선되면 많은 것이 정리될 것이다.
아울러 제도 개선은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 해 나가야 하는 만큼 옴부즈만제도 등을 둬서 현장에 착근하지 못한 제도는 계속 발굴해 고쳐나가겠다.
▶사회=개선제도 적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은.
▶이상일=평가위원 문제는 영원한 숙제다. 미국은 PD제도를 두고 해당 분야 PD가 예산을 직접 관리한다. 우리나라는 지연, 학연 다 빼고 평가위원을 뽑다 보니 평가의 질적 문제가 계속 지적된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앞세울지, 평가의 질을 내세울 지를 정부가 선택하고, 그에 따라 제도를 개선할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PD나 전문가가 직접 뽑는 것은 문제가 있으니 분야별 그룹을 만들어 상시평가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광형=혁신형 연구관리시스템은 특히 중요하고 꼭 해야 한다. 90% 넘는 연구 성공은 말이 안 된다. 다만 구체적인 방향이 궁금하다. 2억 이하 과제는 성공률 50% 이하를 목표하는 등의 가이드라인이 있나. 그런 게 있다면 신진연구자들이 더 마음 편하게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박항식=혁신형 시스템을 접목할 과제에 대해 부처들에 가이드라인을 주고 부처들이 대상 사업들을 정했다. 내년에 7000억원 규모 사업이 대상이다. 연구과제를 공지할 때 혁신형 과제인지 여부를 주무부처 장관이 공지하도록 했다.
혁신형 과제를 선정 평가할 때는 다른 과제보다 도전성을 30%로 더 중요하게 볼 것이다. 단계적으로 대상 사업 규모를 총 2조까지 늘릴 계획이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규제 개선이라고 생각한다. 한 술에 배부르지 않겠지만 연구개발과 과학기술 정책 전반의 규제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또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계속 점검해 나가겠다.
예를 들어 연료전지 기술을 개발한다면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충전소 설치 등 실용화와 연계된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창조경제가 성공할 수 있다. R&D 계획만 있어서는 안 된다. 창조경제는 과학기술 외에 공정거래, 환경개선, 금융관행, 인증 등 여러 문제를 함께 풀어야 이뤄진다. 전 부처가 해야 할 창조경제 과제를 만들고 틀을 만드는 게 창조경제조정관을 만든 이유라고 본다.
정리=안경애기자 naturean@
사진=김민수기자 ultr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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