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여명 9년간 협력연구… 신진연구자 문호 개방 '중진급' 육성
교육과학기술부 선도연구센터 지원사업은 이학(SRC)과 공학(ERC), 기초의과학(MRC), 융합연구(NCRC) 등의 분야에서 여러 대학 교수들이 대학원생들과 함께 한 연구주제에 대해 장기적인 협력연구를 할 수 있게 해 국내 대표적인 R&D 지원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여러 분야에서 협력연구의 꽃을 피우고 있는 대학 선도연구센터들을 찾아가 연구현장을 소개한다.
■ 글로벌 R&D중심 선도 연구센터를 찾아서
(1) 고려대 식물신호네트워크연구센터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의 삶에서도 네트워킹은 중요한 생존전략이다.
일생동안 한 곳에 뿌리박고 살아야 하는 식물은 씨앗에서 발아해 성장하고 죽을 때까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자극과 병충해에 민감한 안테나를 세울 수밖에 없다. 혹시 생명에 해를 끼칠 수도 있는 바깥의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 세포 내로 전달하고 세포내 유전자나 인자끼리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신호네트워크를 긴밀히 가동한다.
얼핏 보기엔 홍수, 해충, 가뭄 등에도 속수무책으로 살아갈 것 같은 식물의 치열한 생존 메커니즘을 9년간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온 연구집단이 있다.
바로 고려대 백경희 교수(생명과학부)를 중심으로 14명의 교수와 석ㆍ박사과정생 등 총 120명으로 구성된 고려대 식물신호네트워크연구센터(센터장 백경희)다. 센터는 2003년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이학분야 선도연구센터(SRC)로 선정돼 9년간 식물신호네트워크 한 분야만 파고들어 이 분야 국내 연구허브로 자리잡았다.
선도연구센터 사업 최초의 여성 센터장으로 기록된 백경희 교수는 "동물은 새끼가 태어나면서 눈, 코, 입 등 대부분의 기관을 갖추고 일생을 시작하지만 식물은 씨앗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죽는 등 평생 동안 끊임없는 발달과정을 거친다"며 "이러한 발달과정에서 신호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특히 식물은 외부의 위협이 있어도 숨거나 피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갑작스런 병균의 습격이나 홍수, 가뭄, 추위 등에 대처하기 위해 내부 방어시스템이 중요하다. 이것 역시 신호네트워크를 통해 가능하다.
센터는 신호네트워크에 숨겨진 비밀을 풀기 위해 연구자 각자가 해답을 찾는 각개전투가 아니라 120여명의 연구자가 머리를 맞대는 협력연구 전략을 세웠다. 백 교수를 중심으로 고려대 안지훈ㆍ김정국ㆍ정용윤 교수, 포스텍 황일두 교수, 연세대 이명민ㆍ배현숙 교수, 서울대 박충모 교수, 서울여대 류기현 교수, 세종대 좌남수 교수 등 14명의 교수가 `드림팀'을 꾸렸다.
백 교수는 "이제 한 실험실에서 연구의 A부터 Z까지 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여러 연구자들이 협력연구를 펼치면서 9년간 한 연구주제에 몰입하다 보니 훨씬 좋은 연구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백 교수는 포스텍 황일두 교수와 함께 식물의 대표적인 발달 생장호르몬인 사이토카이닌이 생장뿐만 아니라 병 저항성도 크게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밝히고 지난해 8월 세계적인 학술지 `셀'의 자매지인 `디벨로프멘털 셀'에 발표했다. 고려대 안지훈 교수는 식물의 개화시기를 조절하는 유전자(SVP)를 찾아내고 그 메커니즘을 규명하기도 했다. 이 유전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식물은 외부 온도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정해진 시기에만 꽃을 피우는 것. 서울대 박충모 교수는 애기장대와 벼에 존재하는 1500여개 전자인자 중 10% 이상이 세포 내부의 막과 결합돼 있는 비활성 상태이고, 이들이 식물의 환경스트레스 저항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최고의 연구진으로만 구성하면 되겠지만 백 교수를 그렇게 하지 않았다. 될성부른 젊은 신진연구자에게 문호를 과감히 개방했다. 그 결과 이들 젊은 연구자들이 9년간 중진 및 정상급 연구자로 올라설 수 있었다. 백 교수는 "대학 연구센터는 연구 자체뿐만 아니라 인력을 키우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 점을 중요시했다"고 말했다.
10년 가까이 호흡을 맞춰가다 보니 연구자들끼리는 자연스레 협력과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다. 물론 처음부터 물흐르듯 되지는 않았다. 사람과 사람은 얼굴을 마주해야 관계가 돈독해지고 협력도 된다는 생각에 센터 출범과 함께 매달 모든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연구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의견과 조언을 주고받으면서 연구자들은 이웃 연구자에게서 아이디어와 해답을 찾으면서 한 계단씩 성장했다.
특히 이 과정을 통해 석박사생들끼리도 자연스레 친분을 갖고 연구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경험과 능력을 쌓았다. 9년전 학부생으로 출발해 센터를 거치면서 박사과정까지 끝낸 학생이 있고, 센터에서 식물신호를 연구한 후 우수 연구기관에서 박사후과정을 보내는 연구자들도 여럿이다.
백 교수는 "실제 연구자들이 협업연구를 펼치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센터의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협업을 할 수 있었다는 점과, 미래 연구인력들을 키워냈다는 게 센터의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출범 후 20년 넘게 연 10억원에서 늘어나지 않은 SRC 사업 예산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 같은 기간 개인연구 지원사업은 예산이 상당 폭 늘었지만 유독 센터사업만 제자리걸음을 했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정부는 예산이 부족한 만큼 참여연구자 수를 줄이라고 말하지만 연구의 네트워킹도 어느 정도 사람 수가 돼야 가능하다"며 "사업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지원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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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R&D중심 선도 연구센터를 찾아서
(1) 고려대 식물신호네트워크연구센터
사람뿐만 아니라 식물의 삶에서도 네트워킹은 중요한 생존전략이다.
일생동안 한 곳에 뿌리박고 살아야 하는 식물은 씨앗에서 발아해 성장하고 죽을 때까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자극과 병충해에 민감한 안테나를 세울 수밖에 없다. 혹시 생명에 해를 끼칠 수도 있는 바깥의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 세포 내로 전달하고 세포내 유전자나 인자끼리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신호네트워크를 긴밀히 가동한다.
얼핏 보기엔 홍수, 해충, 가뭄 등에도 속수무책으로 살아갈 것 같은 식물의 치열한 생존 메커니즘을 9년간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온 연구집단이 있다.
바로 고려대 백경희 교수(생명과학부)를 중심으로 14명의 교수와 석ㆍ박사과정생 등 총 120명으로 구성된 고려대 식물신호네트워크연구센터(센터장 백경희)다. 센터는 2003년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이학분야 선도연구센터(SRC)로 선정돼 9년간 식물신호네트워크 한 분야만 파고들어 이 분야 국내 연구허브로 자리잡았다.
선도연구센터 사업 최초의 여성 센터장으로 기록된 백경희 교수는 "동물은 새끼가 태어나면서 눈, 코, 입 등 대부분의 기관을 갖추고 일생을 시작하지만 식물은 씨앗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죽는 등 평생 동안 끊임없는 발달과정을 거친다"며 "이러한 발달과정에서 신호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특히 식물은 외부의 위협이 있어도 숨거나 피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갑작스런 병균의 습격이나 홍수, 가뭄, 추위 등에 대처하기 위해 내부 방어시스템이 중요하다. 이것 역시 신호네트워크를 통해 가능하다.
센터는 신호네트워크에 숨겨진 비밀을 풀기 위해 연구자 각자가 해답을 찾는 각개전투가 아니라 120여명의 연구자가 머리를 맞대는 협력연구 전략을 세웠다. 백 교수를 중심으로 고려대 안지훈ㆍ김정국ㆍ정용윤 교수, 포스텍 황일두 교수, 연세대 이명민ㆍ배현숙 교수, 서울대 박충모 교수, 서울여대 류기현 교수, 세종대 좌남수 교수 등 14명의 교수가 `드림팀'을 꾸렸다.
백 교수는 "이제 한 실험실에서 연구의 A부터 Z까지 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여러 연구자들이 협력연구를 펼치면서 9년간 한 연구주제에 몰입하다 보니 훨씬 좋은 연구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백 교수는 포스텍 황일두 교수와 함께 식물의 대표적인 발달 생장호르몬인 사이토카이닌이 생장뿐만 아니라 병 저항성도 크게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밝히고 지난해 8월 세계적인 학술지 `셀'의 자매지인 `디벨로프멘털 셀'에 발표했다. 고려대 안지훈 교수는 식물의 개화시기를 조절하는 유전자(SVP)를 찾아내고 그 메커니즘을 규명하기도 했다. 이 유전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식물은 외부 온도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정해진 시기에만 꽃을 피우는 것. 서울대 박충모 교수는 애기장대와 벼에 존재하는 1500여개 전자인자 중 10% 이상이 세포 내부의 막과 결합돼 있는 비활성 상태이고, 이들이 식물의 환경스트레스 저항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최고의 연구진으로만 구성하면 되겠지만 백 교수를 그렇게 하지 않았다. 될성부른 젊은 신진연구자에게 문호를 과감히 개방했다. 그 결과 이들 젊은 연구자들이 9년간 중진 및 정상급 연구자로 올라설 수 있었다. 백 교수는 "대학 연구센터는 연구 자체뿐만 아니라 인력을 키우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 점을 중요시했다"고 말했다.
10년 가까이 호흡을 맞춰가다 보니 연구자들끼리는 자연스레 협력과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다. 물론 처음부터 물흐르듯 되지는 않았다. 사람과 사람은 얼굴을 마주해야 관계가 돈독해지고 협력도 된다는 생각에 센터 출범과 함께 매달 모든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연구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의견과 조언을 주고받으면서 연구자들은 이웃 연구자에게서 아이디어와 해답을 찾으면서 한 계단씩 성장했다.
특히 이 과정을 통해 석박사생들끼리도 자연스레 친분을 갖고 연구정보를 주고받으면서 경험과 능력을 쌓았다. 9년전 학부생으로 출발해 센터를 거치면서 박사과정까지 끝낸 학생이 있고, 센터에서 식물신호를 연구한 후 우수 연구기관에서 박사후과정을 보내는 연구자들도 여럿이다.
백 교수는 "실제 연구자들이 협업연구를 펼치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센터의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협업을 할 수 있었다는 점과, 미래 연구인력들을 키워냈다는 게 센터의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출범 후 20년 넘게 연 10억원에서 늘어나지 않은 SRC 사업 예산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 같은 기간 개인연구 지원사업은 예산이 상당 폭 늘었지만 유독 센터사업만 제자리걸음을 했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정부는 예산이 부족한 만큼 참여연구자 수를 줄이라고 말하지만 연구의 네트워킹도 어느 정도 사람 수가 돼야 가능하다"며 "사업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지원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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