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무협 영화속 사부님은 제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끊임없이 은혜를 베푼다. 그래서 사부님은 부모와 동등한 존경의 대상이다. 제자들은 스승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런데 이 영화 속에는 등록금이나 연구비에 대한 언급이 없다. 사부님의 필요한 돈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제자들이 등록금을 납부할까? 국가에서 지원할까? 독지가가 지원할까? 아니면 사부님의 사재를 털까?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구조가 해결될 때, 사부님은 품위있는 스승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구조가 붕괴되면 사부님의 문화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수년 전 싱가포르에서 대학 경영에 참여한 적이 있다. 신임 교수들의 환영 회식 비용을 학교에 청구했더니 왜 각자 비용을 부담하지 않느냐고 했다. 서구적 사고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교수간 단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 분위기를 위한 투자는 결코 낭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학 당국은 내 의견이 매우 혁신적인 아이디어라고 채택했다. 한국인인 나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문화인데, 서구 문화의 눈에는 혁신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제도가 인정하지 않는데 내 문화를 강행한다면 무리가 따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연구비 유용이란 지적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당한 유용이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문화와 제도의 불일치로 야기되는 경우는 없을까?
청렴으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예를 보자. 장관은 기업의 대표보다 더 높은 봉급을 받는다. 장관이 기업대표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라고 사회가 공감해 주기 때문에 가능한 제도이다. 그러나 그 봉급 외에 관용자동차란 것은 없다. 자기 봉급으로 차를 사든 기사를 채용하든 자유이다. 부하 직원과의 회식비용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청렴은 절대적 조건이며, 공직이 최고의 명예이고 고소득의 기회이다.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문화가 다르다. 공직자의 봉급은 기업보다 낮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베풀어야 하고, 품위 유지를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든다. 이 문화적 차이를 메우기 위한 비용을 운영경비에서 감당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무리한 행동이 조장되기 쉽다.
이러한 제도와 문화의 불일치가 대학의 연구비에도 있다. 연구책임교수는 정부연구비를 받아 오지만 학생이나 연구원을 위한 회식 비용 항목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화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밥을 사주며 사랑을 베풀고 노래방에서 함께 노래도 해야 팀워크가 살아난다. 일면 미풍양속이다. 그러나 교수에게는 한 푼도 봉급이 더 주어지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 문화를 유지하는 것은 고스란히 연구책임교수의 개인적 추가 부담이 되어 버린다.대형 과제에 많은 연구원을 거느리는 교수에게는 이것이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다. 학생들이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을까? 무협지의 사부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 물어 보고 싶다.
교수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문화를 바꾸거나 문화를 따른 운영의 묘를 찾는 것이다. 문화를 바꾸려면 제자들에게 밥을 사주지 않거나, 각자 돈을 내고 먹자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의 문화는 이 대안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수가 개인 경비로 이 부담을 하면, 정부연구를 많이 할수록 개인 소득이 늘어나기는 커녕 경제적 부담이 커진다. 지속가능한 구조가 아니다.
학생과 교수가 회비를 공동으로 모아서 필요한 공동경비를 충당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분담하고 학생대표가 투명하게 관리하면 건강한 운영이 된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더 높은 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학생들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학생도 모르게 인건비에서 미리 모금하면 무리가 된다. 이렇게 마련된 돈을 교수가 비밀리에 운영하면 의심을 사기 쉽다. 더구나 교수가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면 비리가 된다. 작은 차이이지만 운영의 묘와 범죄라는 큰 차이를 내게 된다.
사전에 이런 차이를 안내 받지 못한 연구책임자는 그 경계선에서 갈등을 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문화를 이루거나, 문화를 감안한 최소경비를 인정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 연구자도 명백한 범죄인 줄 알면 피할 것이다. 그러나 모호한 영역에서는 실수하기 쉽다. 연구자들이 명예롭게 연구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일치시켜 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연구력을 향상시키는 한 방법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수년 전 싱가포르에서 대학 경영에 참여한 적이 있다. 신임 교수들의 환영 회식 비용을 학교에 청구했더니 왜 각자 비용을 부담하지 않느냐고 했다. 서구적 사고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교수간 단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 분위기를 위한 투자는 결코 낭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학 당국은 내 의견이 매우 혁신적인 아이디어라고 채택했다. 한국인인 나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문화인데, 서구 문화의 눈에는 혁신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제도가 인정하지 않는데 내 문화를 강행한다면 무리가 따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연구비 유용이란 지적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당한 유용이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문화와 제도의 불일치로 야기되는 경우는 없을까?
청렴으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예를 보자. 장관은 기업의 대표보다 더 높은 봉급을 받는다. 장관이 기업대표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라고 사회가 공감해 주기 때문에 가능한 제도이다. 그러나 그 봉급 외에 관용자동차란 것은 없다. 자기 봉급으로 차를 사든 기사를 채용하든 자유이다. 부하 직원과의 회식비용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청렴은 절대적 조건이며, 공직이 최고의 명예이고 고소득의 기회이다.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문화가 다르다. 공직자의 봉급은 기업보다 낮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베풀어야 하고, 품위 유지를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든다. 이 문화적 차이를 메우기 위한 비용을 운영경비에서 감당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무리한 행동이 조장되기 쉽다.
이러한 제도와 문화의 불일치가 대학의 연구비에도 있다. 연구책임교수는 정부연구비를 받아 오지만 학생이나 연구원을 위한 회식 비용 항목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화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밥을 사주며 사랑을 베풀고 노래방에서 함께 노래도 해야 팀워크가 살아난다. 일면 미풍양속이다. 그러나 교수에게는 한 푼도 봉급이 더 주어지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 문화를 유지하는 것은 고스란히 연구책임교수의 개인적 추가 부담이 되어 버린다.대형 과제에 많은 연구원을 거느리는 교수에게는 이것이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다. 학생들이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을까? 무협지의 사부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 물어 보고 싶다.
교수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문화를 바꾸거나 문화를 따른 운영의 묘를 찾는 것이다. 문화를 바꾸려면 제자들에게 밥을 사주지 않거나, 각자 돈을 내고 먹자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의 문화는 이 대안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수가 개인 경비로 이 부담을 하면, 정부연구를 많이 할수록 개인 소득이 늘어나기는 커녕 경제적 부담이 커진다. 지속가능한 구조가 아니다.
학생과 교수가 회비를 공동으로 모아서 필요한 공동경비를 충당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분담하고 학생대표가 투명하게 관리하면 건강한 운영이 된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더 높은 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학생들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학생도 모르게 인건비에서 미리 모금하면 무리가 된다. 이렇게 마련된 돈을 교수가 비밀리에 운영하면 의심을 사기 쉽다. 더구나 교수가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면 비리가 된다. 작은 차이이지만 운영의 묘와 범죄라는 큰 차이를 내게 된다.
사전에 이런 차이를 안내 받지 못한 연구책임자는 그 경계선에서 갈등을 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문화를 이루거나, 문화를 감안한 최소경비를 인정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 연구자도 명백한 범죄인 줄 알면 피할 것이다. 그러나 모호한 영역에서는 실수하기 쉽다. 연구자들이 명예롭게 연구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일치시켜 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연구력을 향상시키는 한 방법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