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디지털 그릇 빚는
투박한 '장인의 손길'
생산라인에서만 26년 세월. 그의 굵은 손마디가 지나온 삶의 궤적을 드러낸다. 작달막한 키에 희끗희끗한 머리, 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의 눈동자는 같은 자리에 있는 20대 젊은이들 못지 않게 초롱거리며 열정으로 넘쳤다.
LG전자 창원공장 생산라인을 누비는 박광호씨. 그의 나이는 올해로 쉰 여섯. 요즘 어떤 회사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연령대의 현장 근로자다. 박씨의 나이는 이미 법적으로 정년을 넘겼다. 작년 12월 20일, LG전자에서 보낸 26년의 생활을 공식적으로는 마감했다. 26년 동안 박씨는 생산직근로자의 직급체계인 사원, 기사, 주임, 기장을 거쳐 `기정'의 위치에까지 올랐다. 생산직근로자 직급 중 최고는 `기성'이나, 박씨는 기성까지 오르지 못한 것을 결코 아쉬워하거나 서운해하지 않는다. 여전히 일에 목마를 뿐이다.
정년퇴임은 박씨에게도 LG전자로서도 매우 아쉬웠다. 특정 분야에서 오랫동안 축적해온 기술 노하우와, 현장에 조금이라도 더 남아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가고 싶은 박씨. 그리고 그런 박씨를 법적 정년이라는 이유만으로 퇴직시켜야만 하는 LG전자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박씨는 정년퇴직과 함께 곧바로 계약직 직원으로, 회사에 남아 후배양성의 임무를 받았다. 그가 받는 임금은 정직원으로 있을 때의 70% 수준이지만, 박씨는 어떤 불만도 없다. 현장에 남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더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박씨의 공식적인 최종학력은 고등학교 중퇴. 1972년 경북 의성에 있는 금성농업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학생수가 20여명으로 줄어, 도시에 있는 다른 고등학교에 합병되자 여러 가지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게 됐다. 군 복무 후 몇 년간 크고 작은 직장을 전전하다, 78년 4월 24일 마침내 금성사(지금의 LG전자) 부산공장에 입사했다. 생산직 근로자에게 입사일은 군대에서의 군번과도 같은지라, 박씨는 26년 전의 입사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입사 후 26년 동안 LG전자에서 프레스 금형제작 부문에서만 일했습니다. 모든 제품은 금형이 생명이고, 금형을 통해 태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상품개발팀을 통해 신제품 개발 계획이 나오면 모든 제품은 금형제작의 성공여부에 따라 출시가 결정되는 겁니다."
500ℓ짜리 냉장고 금형을 시작으로 박씨가 LG전자에 몸담았던 26년간 LG전자에서 생산한 대부분의 제품은 박씨의 손길을 거친 금형에서 태어났다. 금형작업은 제품의 기본 뼈대를 만드는 작업인 만큼, 제품 출시시점과 시장의 요구에 직접적인 압박을 받는 피 말리는 싸움이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 밤낮 없는 전쟁을 치르기 일쑤였다.
박씨는 때로 "왜 이런 일을 선택했나" 후회하기도 했다. 특히 명절이라고 다들 전세버스를 타고 고향을 다녀올 때에도 박씨를 비롯한 금형제작팀은 남아서 밤을 새며 제품 출시시점에 맞춰 금형을 만드는 일을 했다. 박씨의 일은 창원공장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었다. 해외에 생산라인을 구축하게 되면, 제작한 금형에 맞게 제품이 생산되는지 꼼꼼히 챙겨왔다. 박씨의 손때가 묻은 라인만도 해외에 10여 곳에 이른다.
요즘 박씨는 후배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금형을 제작하는 일은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강조하는 그는, LG전자에 있는 동안 자신이 보유한 기술은 물론 제품에 대한 철학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한다. 박씨는 "내가 만든 제품이 경쟁사의 제품을 능가할 수 있도록, 내가 만든 제품을 시장에서 내가 구입했을 때 정말 만족할 수 있도록 금형을 제작하라"고 후배들에게 강조한다. 그는 `LG전자에 다니면서 학업을 지속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내겐 금형에 대한 연구가 곧 공부였다. 시간 날 때마다 금형에 대한 서적을 탐독하고, 안 되는 것에 오히려 흥미를 느끼며 도전해 왔다"고 답했다.
박씨에겐 요즘 또 하나의 고민이자 기대를 갖게 하는 사건(?)이 있다. 부인과 1남1녀를 두고 있는데, 요즘 장남(30)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금형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이미 3년째. 몸담은 회사는 다르지만, 아들의 도전이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이미 정년을 넘긴, 직장인들의 인생 대선배인 박씨. 그는 후배 직장인들에게 던지는 충고 한 마디로 말을 맺었다. "어떤 조직에 있든, 출근카드 도장만 찍는 사람은 되지 말라"
투박한 '장인의 손길'
생산라인에서만 26년 세월. 그의 굵은 손마디가 지나온 삶의 궤적을 드러낸다. 작달막한 키에 희끗희끗한 머리, 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의 눈동자는 같은 자리에 있는 20대 젊은이들 못지 않게 초롱거리며 열정으로 넘쳤다.
LG전자 창원공장 생산라인을 누비는 박광호씨. 그의 나이는 올해로 쉰 여섯. 요즘 어떤 회사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연령대의 현장 근로자다. 박씨의 나이는 이미 법적으로 정년을 넘겼다. 작년 12월 20일, LG전자에서 보낸 26년의 생활을 공식적으로는 마감했다. 26년 동안 박씨는 생산직근로자의 직급체계인 사원, 기사, 주임, 기장을 거쳐 `기정'의 위치에까지 올랐다. 생산직근로자 직급 중 최고는 `기성'이나, 박씨는 기성까지 오르지 못한 것을 결코 아쉬워하거나 서운해하지 않는다. 여전히 일에 목마를 뿐이다.
정년퇴임은 박씨에게도 LG전자로서도 매우 아쉬웠다. 특정 분야에서 오랫동안 축적해온 기술 노하우와, 현장에 조금이라도 더 남아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가고 싶은 박씨. 그리고 그런 박씨를 법적 정년이라는 이유만으로 퇴직시켜야만 하는 LG전자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박씨는 정년퇴직과 함께 곧바로 계약직 직원으로, 회사에 남아 후배양성의 임무를 받았다. 그가 받는 임금은 정직원으로 있을 때의 70% 수준이지만, 박씨는 어떤 불만도 없다. 현장에 남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더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박씨의 공식적인 최종학력은 고등학교 중퇴. 1972년 경북 의성에 있는 금성농업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학생수가 20여명으로 줄어, 도시에 있는 다른 고등학교에 합병되자 여러 가지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게 됐다. 군 복무 후 몇 년간 크고 작은 직장을 전전하다, 78년 4월 24일 마침내 금성사(지금의 LG전자) 부산공장에 입사했다. 생산직 근로자에게 입사일은 군대에서의 군번과도 같은지라, 박씨는 26년 전의 입사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입사 후 26년 동안 LG전자에서 프레스 금형제작 부문에서만 일했습니다. 모든 제품은 금형이 생명이고, 금형을 통해 태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상품개발팀을 통해 신제품 개발 계획이 나오면 모든 제품은 금형제작의 성공여부에 따라 출시가 결정되는 겁니다."
500ℓ짜리 냉장고 금형을 시작으로 박씨가 LG전자에 몸담았던 26년간 LG전자에서 생산한 대부분의 제품은 박씨의 손길을 거친 금형에서 태어났다. 금형작업은 제품의 기본 뼈대를 만드는 작업인 만큼, 제품 출시시점과 시장의 요구에 직접적인 압박을 받는 피 말리는 싸움이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 밤낮 없는 전쟁을 치르기 일쑤였다.
박씨는 때로 "왜 이런 일을 선택했나" 후회하기도 했다. 특히 명절이라고 다들 전세버스를 타고 고향을 다녀올 때에도 박씨를 비롯한 금형제작팀은 남아서 밤을 새며 제품 출시시점에 맞춰 금형을 만드는 일을 했다. 박씨의 일은 창원공장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었다. 해외에 생산라인을 구축하게 되면, 제작한 금형에 맞게 제품이 생산되는지 꼼꼼히 챙겨왔다. 박씨의 손때가 묻은 라인만도 해외에 10여 곳에 이른다.
요즘 박씨는 후배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금형을 제작하는 일은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강조하는 그는, LG전자에 있는 동안 자신이 보유한 기술은 물론 제품에 대한 철학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한다. 박씨는 "내가 만든 제품이 경쟁사의 제품을 능가할 수 있도록, 내가 만든 제품을 시장에서 내가 구입했을 때 정말 만족할 수 있도록 금형을 제작하라"고 후배들에게 강조한다. 그는 `LG전자에 다니면서 학업을 지속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내겐 금형에 대한 연구가 곧 공부였다. 시간 날 때마다 금형에 대한 서적을 탐독하고, 안 되는 것에 오히려 흥미를 느끼며 도전해 왔다"고 답했다.
박씨에겐 요즘 또 하나의 고민이자 기대를 갖게 하는 사건(?)이 있다. 부인과 1남1녀를 두고 있는데, 요즘 장남(30)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금형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이미 3년째. 몸담은 회사는 다르지만, 아들의 도전이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이미 정년을 넘긴, 직장인들의 인생 대선배인 박씨. 그는 후배 직장인들에게 던지는 충고 한 마디로 말을 맺었다. "어떤 조직에 있든, 출근카드 도장만 찍는 사람은 되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