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석종훈입니다. 인터넷으로 전해 듣는 고국의 소식은 대부분 비관적입니다. 실물경기가 급속히 둔화되는 데다 공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하고, 환율은 가파르게 치솟고 있습니다. 실업이 늘고 있고, 일자리를 유지하는 사람도 감봉 감원 소식에 마음을 졸입니다. 지금을 제2의 IMF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날이 갈수록 삶의 질이 떨어지는 하향 사이클에 들어섰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 역시 경기가 급속도로 식어가고 있습니다. 나스닥은 최고점으로부터 이미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투표 1개월이 다 되도록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더 상황이 나쁜 것은,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리더십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미국경제의 엔진역할을 해온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정보통신과 벤처 업계도 기세가 예전같지 않습니다. 올 초부터 이른바 닷컴 기업의 몰락으로 어느 정도 예고됐던 것이기는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는 더욱 냉랭해졌습니다.
파산해고 같은 단어가 연일 화제로 오르내립니다. 인력관리회사 챌린저, 그레이 & 크리스마스에 따르면 11월 한달 동안 미국의 인터넷 회사에서 해고된 종업원은 지난 10월의 4805명보다 55% 늘어난 5677명에 달했습니다. 작년 12월부터 닷컴 회사에서 해고된 종업원은 모두 3만1056명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그러나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숫자까지 포함하면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떠난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을 닫는 회사도 많습니다. 닷컴기업이 사이트를 닫으면서 고객에게 전하는 닷컴의 고별사라는 말이 새로운 유행어로 떠오를 정도입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의 닷컴회사가 망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애완동물 전문 온라인 소매업체인 펫츠닷컴(Pets.com)은 지난달초 회사운영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나갈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전체 320명 직원 중 255명을 해고한 이 회사는 판매하다 남은 재고를 비롯해 애완동물 관련, 콘텐츠와 각종 아이콘 및 심지어는 회사 URL까지 각종 회사자산을 매각할 예정이라고 공개했습니다. 지금 최선의 대안은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단계적으로 기업을 축소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이 이 회사 최고경영진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닷컴 회사도 비슷한 절차를 거칩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먼저 감량경영에 들어갑니다. 직원을 줄이고, 각종 비용을 줄이고, 그러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우면 청산 절차를 밟습니다. 회사가 이 지경까지 됐다는 것은 경영인으로서는 최대 수치이고, 투자자에게 고개를 들지 못할 일입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와 부하직원을 내보내야 한다는 것은 고통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회사를 세울 때 못지 않게 망할 때도 최선의 모습을 보입니다. 투자자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려주고 직원에게도 다른 길을 찾도록 배려합니다. 한푼이라도 챙길 수 있는 재산은 모두 거뒀다가 채무자와 주주에게 최대한 돌아가도록 합니다.
얼마전 한국을 찾았다가 잘 알고 지내던 닷컴회사 중 문을 닫은 기업이 여러 곳 있어 테헤란밸리의 현실을 절감했었습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이들이 대부분 소문도 없이 문을 닫았다는 것입니다. 사무실 전화는 물론, 핸드폰, 이메일까지 모두 끊겨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저에게 주변에서는 웹사이트를 통해 휴폐업을 알리는 것은 그나마 나은 경우라며 일부에서는 회사가 망할 것을 알면서도 주식을 제3자에게 팔거나, 받을 돈은 챙기고, 줄 돈은 떼어먹으면서 야반도주하다시피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회사가 곧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 받을 돈은 거두기 어려워지고 채권자는 돈을 떼일까 봐 더욱 목을 죄어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정이 어렵더라도 이런 식으로 사업을 정리하는 것은 재기의 가능성을 스스로 막는 것입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이 망하면서도 투자자, 거래처, 동료직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이들의 신뢰를 잃고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빨리 망하는 것도 성공의 하나라고 얘기합니다. 어차피 가능성이 없는 사업이라면 질질 끄는 것보다는 빨리 망해야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면, 다음에는 그만큼 성공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사업을 시작했으면 죽을 힘을 다해 성공해야 합니다. 그러나, 끝내 사업을 접어야 한다면 제대로 거둬야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망해가는 벤처기업이 이런 자세를 가진다면, 국내 벤처기업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석종훈 올림. <실리콘밸리뉴스 편집인 alameda@svnews.com>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 역시 경기가 급속도로 식어가고 있습니다. 나스닥은 최고점으로부터 이미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투표 1개월이 다 되도록 당선자를 내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더 상황이 나쁜 것은,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리더십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미국경제의 엔진역할을 해온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정보통신과 벤처 업계도 기세가 예전같지 않습니다. 올 초부터 이른바 닷컴 기업의 몰락으로 어느 정도 예고됐던 것이기는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는 더욱 냉랭해졌습니다.
파산해고 같은 단어가 연일 화제로 오르내립니다. 인력관리회사 챌린저, 그레이 & 크리스마스에 따르면 11월 한달 동안 미국의 인터넷 회사에서 해고된 종업원은 지난 10월의 4805명보다 55% 늘어난 5677명에 달했습니다. 작년 12월부터 닷컴 회사에서 해고된 종업원은 모두 3만1056명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그러나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숫자까지 포함하면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떠난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을 닫는 회사도 많습니다. 닷컴기업이 사이트를 닫으면서 고객에게 전하는 닷컴의 고별사라는 말이 새로운 유행어로 떠오를 정도입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의 닷컴회사가 망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애완동물 전문 온라인 소매업체인 펫츠닷컴(Pets.com)은 지난달초 회사운영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나갈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전체 320명 직원 중 255명을 해고한 이 회사는 판매하다 남은 재고를 비롯해 애완동물 관련, 콘텐츠와 각종 아이콘 및 심지어는 회사 URL까지 각종 회사자산을 매각할 예정이라고 공개했습니다. 지금 최선의 대안은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단계적으로 기업을 축소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이 이 회사 최고경영진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닷컴 회사도 비슷한 절차를 거칩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먼저 감량경영에 들어갑니다. 직원을 줄이고, 각종 비용을 줄이고, 그러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우면 청산 절차를 밟습니다. 회사가 이 지경까지 됐다는 것은 경영인으로서는 최대 수치이고, 투자자에게 고개를 들지 못할 일입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와 부하직원을 내보내야 한다는 것은 고통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회사를 세울 때 못지 않게 망할 때도 최선의 모습을 보입니다. 투자자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려주고 직원에게도 다른 길을 찾도록 배려합니다. 한푼이라도 챙길 수 있는 재산은 모두 거뒀다가 채무자와 주주에게 최대한 돌아가도록 합니다.
얼마전 한국을 찾았다가 잘 알고 지내던 닷컴회사 중 문을 닫은 기업이 여러 곳 있어 테헤란밸리의 현실을 절감했었습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이들이 대부분 소문도 없이 문을 닫았다는 것입니다. 사무실 전화는 물론, 핸드폰, 이메일까지 모두 끊겨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저에게 주변에서는 웹사이트를 통해 휴폐업을 알리는 것은 그나마 나은 경우라며 일부에서는 회사가 망할 것을 알면서도 주식을 제3자에게 팔거나, 받을 돈은 챙기고, 줄 돈은 떼어먹으면서 야반도주하다시피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회사가 곧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 받을 돈은 거두기 어려워지고 채권자는 돈을 떼일까 봐 더욱 목을 죄어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정이 어렵더라도 이런 식으로 사업을 정리하는 것은 재기의 가능성을 스스로 막는 것입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이 망하면서도 투자자, 거래처, 동료직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이들의 신뢰를 잃고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빨리 망하는 것도 성공의 하나라고 얘기합니다. 어차피 가능성이 없는 사업이라면 질질 끄는 것보다는 빨리 망해야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면, 다음에는 그만큼 성공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사업을 시작했으면 죽을 힘을 다해 성공해야 합니다. 그러나, 끝내 사업을 접어야 한다면 제대로 거둬야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망해가는 벤처기업이 이런 자세를 가진다면, 국내 벤처기업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석종훈 올림. <실리콘밸리뉴스 편집인 alameda@sv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