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부가 18년 만에 합의한 국민연금 개혁안이 청년세대의 분노로 번지고 있다. 특히 2030세대는 조기 대선이 현실화할 경우 캐스팅보터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치권은 더욱 당황스러운 모습이다.
진영을 막론하고 '더 내고 더 받는' 구조의 국민연금 개혁에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유독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정당은 더불어민주당보다는 국민의힘이다.
한동훈 전 대표와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 여권 잠룡들이 일제히 비판을 쏟아낸 것은 물론 김도읍·윤상현·박수영·진종오·추경호 의원 등 선수와 계파를 불문하고 반대·기권표를 던졌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청년세대의 우려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며 "우리 당이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전부 완성해야 하는데 힘의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합의했다"고 해명했다. 권 원내대표는 "앞으로 연금특위를 통해 젊은 세대가 우려하고 있는 구조개혁이 완성될 수 있도록 젊은 의원들, 청년세대들과 호흡하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두고 국민의힘 내분이 격화하는 배경에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이 임박하는 게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당 지도부를 향한 불만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탄핵 정국을 거치며 2030세대가 국민의힘에 높은 지지를 보냈다는 점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층 여론은 이번 국민연금 개혁안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민연금 개정안은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내년부터 해마다 0.5%포인트씩 8년에 걸쳐 현행 9%에서 13%로,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을 40%에서 내년부터 43%로 오르는 게 핵심이다.
후세대의 부담 비중이 높은 보험료율은 점진적으로 상승하는데 기성세대가 혜택을 보는 소득대체율은 당장 내년부터 오른다는 점에서 세대 간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온다.
시민단체 연금개혁청년행동은 지난 2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과 미래세대 입장을 대표해 납득할 수 없는 연금 개악 입법을 강행한 여야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국민과 청년을 저버린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권 대선주자들이 국민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것도 청년층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 행보로 읽힌다.
당초 한 전 대표와 유 전 의원 등 경쟁주자들의 재의요구권 행사 요구를 비판하며 국민연금 개혁안에 찬성했던 홍준표 대구시장은 2030세대의 반발과 지지자들의 우려가 커지자 관련 글을 페이스북에서 삭제했다.
홍 시장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년들이 반대한다고 덩달아 반대하면서 재의요구권 행사를 촉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뭘 알고 그런 말을 하는지 안타깝다"며 "모수개혁도 오랜 진통 끝에 나온 것이다. 그건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구조 개혁을 촉구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 아닐까"라고 썼다.
하지만 이번 국민연금 개혁안을 놓고 '미래·청년 세대에 부담을 전가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수습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김용태·김재섭·우재준 국민의힘 의원과 이소영·장철민·전용기 민주당 의원, 이주영·천하람 개혁신당 의원도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모두에게 공정한 연금개혁을 이뤄내기 위해 논의 과정에 청년세대의 참여를 보장해 줄 것과 기금에 대한 국고 투입 논의 등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연금개혁으로 가장 큰 부담과 책임을 지게 되는 청년세대를 설득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담기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이번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강화된 혜택은 기성세대부터 누리면서 그로 인해 추가되는 부담은 또다시 후세대의 몫"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윤선영기자 sunnyday72@dt.co.kr
권성동(가운데)가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