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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서가] 호조 다미오는 불쌍한 한센병 작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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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다미오 단편집
호조 다미오 지음 / 인현진 옮김 / 지식을 만드는 지식 펴냄
[논설실의 서가] 호조 다미오는 불쌍한 한센병 작가가 아니다
"만일 누군가 이 땅에서 지옥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밤 1시나 2시경에 중병실을 찾아가라. 귀신과 생명이 벌이는 격투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불꽃이 눈앞을 스칠지 모른다."(소설 '나병원 기록' 중에서)

호조 다미오(北條民雄)는 열아홉의 나이에 한센병이 발병해 스물셋에 운명했다. 창작 활동 기간이 단 3년밖에 되지 않음에도 삶에 대한 의지와 고뇌를 절절히 담은 작품들로 일본 문학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호조 다미오의 본명은 시치조 데루지(七條晃司)로 1914년 조선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육군 경리부 하사관으로 조선 경성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1933년 한센병 진단을 받았고, 이듬해인 수용시설인 전생원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입소했다. 입소 전 집안의 호적에서 제적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는 요양소 내에서 발행하던 기관지 '야마자쿠라'에 '동정기'를 발표한다. 한센병 진단을 받고 자살하러 했던 일을 다룬 짧은 글이었다. 1934년 8월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瑞康成)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보낸다. 가와바타의 극진한 창찬과 격려 속에 '생명의 초야'가 탄생한다. '생명의 초야'는 제2회 문학계상을 수상했고 제3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으로 '호조 다미오'라는 필명도 세상에 나왔다.


이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해 주옥같은 소설과 에세이를 남겼다. 머릿 속에 항상 '죽음'이라는 단어를 품고 있던 터라 창작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불과 3년이었다. 1937년 12월 5일 새벽 그는 병실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문학이 우리에게 감동과 공감을 주는 것은 그가 인생의 벼랑 끝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글을 써야 하고, 글쓰기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라고 일기에 썼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섬광탄' 같은 에너지에 눈이 부실 것이다. 그리고 여운은 오래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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