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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갱단에 점령당한 아이티, 평화는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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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쿠데타·독재로 점철된 역사
갱단 폭동으로 온 나라가 무법천지
치안은 ’살벌’, 외국인 탈출 이어져
각 세력간 주도권 다툼 갈수록 치열
[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갱단에 점령당한 아이티, 평화는 언제쯤 올까
푸른 바다, 울창한 산림 등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가 쑥대밭이 됐다. 가뜩이나 힘들게 사는 나라에서 갱단까지 발호하면서 무법천지로 변했다. '갱단 통치' 시대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끝 모를 혼란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아이티에 봄은 올 것인가.

◇아이티, 어떤 나라인가

쿠바에서 동남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히스파니올라섬이 나온다. 카리브해에선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섬 서반부 3분의 1 정도( 2만7750㎢)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가 아이티다. 한반도 면적의 8분의 1이다. 섬의 나머지는 도미니카 공화국 영토다.

아이티 국토의 4분의 3은 산이다. 원주민 언어로 '아이티'는 '산이 많은 땅'이라는 뜻이다. 인구는 약 1100만명이고 수도는 포르토프랭스다. 프랑스어 및 프랑스어 기반의 혼종어 크레올어(Creole)가 공용어다.

1492년 12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섬을 발견하면서 비운의 역사가 시작됐다. 스페인 사람들과 함께 들어온 천연두 등 각종 전염병과 학살로 원주민 99%가 몰살됐다. 스페인령이 됐다가 1697년 프랑스 식만지가 됐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아프리카에서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데려왔다. 그래서 아이티 국민의 95%가 흑인이다.

1789년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나 왕정이 전복되자 아이티에서도 독립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흑인 노예들은 봉기했고 마침내 180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 탄생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에게 독립 배상금으로 거액을 지불해야 했고, 인프라 등이 갖춰지기 전에 독립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1915년 쿠데타가 발발하자 미국은 해병대를 투입해 아이티를 점령했다. 미국은 1934년까지 아이티를 군정통치했다. 그 결과 아이티는 군부의 입김이 강한 나라가 됐다. 1957년 프랑수아 뒤발리에가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문민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그는 최악의 독재자였다. 권력은 아들에게 세습됐다. 미국을 등에 업은 뒤발리에 부자의 30년 무단독재(1957~1986)로 아이티는 세계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큰 나라가 됐다. 지금도 6개 주요 가문이 산업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1990년 민주화의 선봉이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반년 만에 미국이 지원한 쿠데타가 일어나 국외 망명을 해야만 했다. 이후 복귀해 2000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또 일어난 쿠데타로 완전히 쫓겨났다. 이렇게 정치 불안이 계속되면서 국민들은 '절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갱단 발호로 무정부 상태

이렇게 아이티는 수십년간 빈곤, 자연재해,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려 왔다.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암살 이후 혼란은 더 심해졌다. 특히 군벌화된 갱단이 이달 초부터 공항, 경찰서, 정부청사, 교도소 등을 공격하면서 나라가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는 매일 경찰과 갱단 간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비상 통행 금지령(오후 7시∼다음 날 오전 6시)이 내려져 있다. 주민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도로는 텅 빈 상태다. 식료품점에서는 식품이 동났고, 주유소에서는 연료가 거의 바닥났다. 병원은 혈액 부족으로 비상이 걸렸다. 기업과 학교는 문을 닫았다. 공항과 항구는 정상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다. 외국인들의 탈출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자경단을 조직해 자체적인 방어에 나섰으나 되레 자경단이 주민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아이티에는 200개 이상의 갱단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20개 이상이 수도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크게 'G9'과 'G펩'이 양대 축을 이루고 있다. 현재 갱단은 아이티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오직 신만이 바꿀 수 있다"

갱단은 현 사태에 책임을 지라며 아리엘 앙리 총리의 퇴진을 강하게 요구했다. 푸에르토리코에 머물고 있던 앙리 총리는 결국 지난 11일(현지시간) 사임한다고 밝혔다. 과도위원회를 만들어 지도자를 뽑아 그에게 권력을 이양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새로운 정치 인물의 등장은 보이지 않는다. 각 세력 간 주도권 다툼만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9개 갱단의 연합체 'G9'를 이끌고 있는 지미 셰리지에(46)가 주목받고 있다. 그는 경찰 출신으로 '바비큐'로 불린다. 5살에 아버지를 잃고 거리에서 닭튀김을 팔던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이력 때문에 '바비큐'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경찰 폭동진압부대에서 근무했었다. 빈민가 학살사건에 가담한 범죄로 2018년 경찰에서 쫓겨난 뒤 갱단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언론을 좋아해 기자회견을 자주 연다. 그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이티 국민은 고통받고 있다. 국민들이 이제 새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면서 대권 야욕을 드러냈다. 앞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선 피델 카스트로, 말콤 X 등을 찬양하면서 자신을 부정부패에 맞서고 있는 자유 투사로도 소개했다. 셰리지에는 살인, 방화 혐의로 미국과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다.

다른 한 명으론 기 필립(56)이 있다. 갱단 출신은 아니다. 장교 출신으로 아이티 제 2의 도시 카프 아이시앵에서 경찰서장을 하기도 했다. 2004년 아이티 반정부 무장세력을 규합해 아리스티드 대통령에 대항했던 인물이다. 돈 세탁, 마약 밀매죄 등으로 미국에서 복역한 뒤 최근 아이티로 돌아왔다.

그는 'BSAP'라는 조직을 통해 헤게모니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만델라 전 대통령도 수감 생활을 했었다"면서 "총리가 된다면 아이티의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보면 새로운 권력 투쟁이 모습을 드러낼 조짐이다. 권력투쟁이 격화될수록 국민들은 더 큰 희생을 치를 것이다. 외신들은 아이티의 상황이 핵전쟁 이후 종말론적 미래를 묘사한 영화 '매드 맥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고 전한다. 한 시민은 이렇게 말했다. "오직 신만이 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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