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련 K정책플랫폼 젠더위원장 ·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K-폴리시, 최고 정책전문가가 말한다] 존엄사, 누구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가?](http://contents.dt.co.kr/images/202403/2024032602102269061002[1].jpg "[K-폴리시, 최고 정책전문가가 말한다] 존엄사, 누구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가?")
그는 얼마 전 존엄사를 돕은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라는 단체에 가입했다. 그리고 해당 단체로부터 '그린 라이트' 자격을 받았다. '언제든 스위스로 오면 존엄사가 가능하다'는 자격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에 머물고 있다. 하반신 마비인 그가 혼자 국제선 비행기를 탈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이 동반해야 하는데 그 순간 대한민국 형법상의 '자살방조죄'로 가족이 처벌받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그와 그의 딸은 2023년 12월 28일 헌법재판소에 '존엄사 관련 입법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며, 제한없이 자살방조죄를 처벌하는 형법 규정은 위헌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대한민국 헌법 해석상 그에게는 '스스로의 삶을 마무리할 권리 즉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있을까?
2009년 11월 26일 헌법재판소는 "죽음에 임박한 환자에게 연명치료중단에 관한 결정권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임을 천명하면서, "헌법 제 1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생명권 못지 않게 우리 헌법상 최고의 가치를 이루고 있으며, 죽음에 임박한 환자의 생명은 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보호되어야 하고,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판시하여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헌법상의 기본권임을 인정하였다.(2008헌마385)
위 헌법재판소 결정은 김 할머니 사건으로 유명한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헌법소원' 사건이었는데 헌법재판소는 죽음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하면서도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문제는 생명권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질서와 관련된 것으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입법정책적으로 해결할 문제'라며 김할머니 측 헌법소원청구를 각하하였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다. 최근의 여러 통계는 존엄사를 찬성하는 국민 비율이 약 80% 정도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위스 디그니타스의 2023년 12월 31일 자 기준 통계를 보면 존엄사 회원으로 등록된 환자 1만3775명 중 한국인은 162명(2022년 기준 117명에서 45명 증가함)으로, 총 103개 국가 중 7번째를 기록하고 있다(독일:4630명, 영국: 1900명, 미국:1717명, 스위스:849명, 이탈리아: 682명, 오스트리아: 285명). 일정한 요건 하에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는 캐나다(153명), 호주(146명)보다 대한민국 국민 중 존엄사를 택한 환자 숫자가 더 많은 것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162명의 환자들이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힘든 몸을 이끌고 가까운 가족의 도움을 받아 멀리 스위스로 고통스럽고도 슬픈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존엄사를 원한다는 80%에 육박하는 통계수치와 2023년 1년 동안 존엄사를 위해 디그니타스에 등록한 대한민국 국민 162명이라는 숫자를 이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독일(2020.2.26.),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2020.12.11.)는 각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자살방조죄'가 존엄사와 관련하여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존엄사할 자유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존엄사를 조력할 제3자를 찾을 자유, 또 조력이 제공되는 한 이를 요구할 수 있는 자유 또한 포함하는데 자살방조죄 처벌규정으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경우에도 임종지원단체 등의 조력을 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형법전 217조는 이들의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일반적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였다
존엄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신성불가침, 인간 존엄'을 근거로 내세우는데 이와 관련하여 독일 헌법재판소는 '생명은 인간 존엄의 기초이지만 자유의지에 기초한 존엄사가 공동체가 지키려는 인간의 존엄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함께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도 '타인의 자살에 조력'하는 경우 처벌하는 형법규정을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존엄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자기결정권에 기초한 것임이 명확히 확인'된다면 입법자는 그 의지를 존중해야 하는 바, 형법전 78조에서 모든 형태의 조력자살을 예외없이 금지하는 것은 존엄을 지키며 자살을 하고자 하는 사람의 죽음을 불가능하게 하므로 해당 규정은 연방헌법에서 도출되는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판단하였다.
2009년 우리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통해 확인된 바와 마찬가지로 독일, 오스트리아 헌법재판소도 '죽음에 대한 개인의 자기결정권'은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존중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행 형법상 '자살방조죄' 처벌규정 또한 존엄사 입법논의와 함께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종교계, 의료계에서는 존엄사 입법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생명경시풍조'를 우려하는 종교계의 목소리는 존엄사가 합법화되는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고려되고 입안과정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인 문제나 가족돌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존엄사를 선택하지 않도록, 여러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존엄사가 남용되지 않도록 해외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법에 반영해야 한다.
생명보호를 본질적 사명으로 하는 의료계에서 존엄사에 반대하는 것 또한 직분상 당연한 목소리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우리 헌법재판소는 현대의학으로 회복 불가능한 의식불명의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계속 하는 것은 환자 개인의 신체에 대한 훼손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하였다.
의료기술이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현대의학으로 치료불가능한 질병의 범위를 줄이는 것이 의학계의 책무일 것이나, 어떤 의학적 치료도 생명을 연장할 뿐 환자의 증상 개선이나 통증 완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존엄하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환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고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생명권 행사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개별적인 환자 개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유일한 주체인 환자 개인 말이다.
'추상적인 가치'인 '인간존엄'을 위해 개별적 생명권의 주체인 환자 개인에게 공업용 프레스기로 누르는 듯한 통증을 계속 감내하라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존엄의 주체가 아닌 도구로 취급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 누구도 자신의 죽음에 대한 유일한 주체이자 개별적 권리를 가진 환자 개인의 '죽음에 대한 권리', '존엄하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구체적이자 절대적인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유일한 존재인 자신의 삶의 소멸 즉 죽음에 대해 그 누구로부터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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