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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사진 속 이슈人] 끝나지 않은 비극, 100년 전 희생자 기리는 아르메니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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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사진 속 이슈人] 끝나지 않은 비극, 100년 전 희생자 기리는 아르메니아인들
아르메니아인들이 지난 23일 수도 예레반에서 '아르메니아 학살 108주년'을 추념하는 횃불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AP 연합뉴스



4월 24일은 아르메니아 학살 10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날을 추념합니다. 100여 년 전 옛 오스만제국(현 튀르키예) 내 각지에서는 아르메니아인과 아랍계 무슬림, 쿠르드인, 그리스인 등에 대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됐습니다. 집계와 추산이 다르지만 주로 아르메니아인을 중심으로 50만에서 최대 150만 명이 튀르키예 민간자경단과 군인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튀르키예는 일방적 학살을 부인하고 희생자 규모도 축소합니다. 일본이 중국을 식민지배할 때인 1937년 남경(난징)에서 일어난 학살의 규모를 축소하려는 것과 같은 입장이겠지요.

대학살 추념일 하루를 앞두고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AP통신에 따르면 23일 예레반에서 수천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1915년부터 1917년 사이에 최대 150만 명이 살해된 제노사이드를 잊지 말자며 횃불을 들고 시가행진을 벌였습니다. 아르메니아뿐 아니라 24일을 기해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사는 러시아, 미국,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 아르메니아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희생자를 기리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특히 매년 이 즈음에는 제노사이드를 전후해 미국으로 이주해 주류 사회에 편입한 아르메니아 후손들을 중심으로 튀르키예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할 것을 촉구합니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의 기원을 파고 들면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스만-러시아 전쟁(1877년~1878년)에서 오스만제국은 러시아와 종교적으로 동질적인(러시아 정교회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아르메니아인들이 오스만제국에 등을 돌릴 것을 우려해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이후 오스만제국의 주류인 투르크 무슬림은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 시기까지 40여년 동안 아르메니아인들을 핍박하고 살해했습니다. 아르메니아 학살은 이렇게 뿌리가 깊은데 보통 아르메니아 학살이라고 하면 1915년부터 2년여간 이뤄진 20세기 초의 아르메니아인을 대상으로 자행된 일련의 집단학살사건을 말합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20세기 들어 발생한 최초의 제노사이드였습니다.

아르메니아인 대량학살에 대한 튀르키예 정부의 공식 입장은 계획적이거나 계획된 대량학살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세계 대전(1차대전)의 혼돈과 폭력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제국의 쇠퇴기에 아르메니아인들이 제국의 붕괴를 촉진하는 내부 반란을 획책해 그에 대한 대응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을 분리하려다 발생한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일부 아르메니아인들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타 인종을 멸시하는 등 아르메니아인들이 자초한 성격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많은 서방 국가를 포함한 대다수의 국제사회는 이 사건을 집단 학살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최근까지 아르메니아 대량 학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021년 4월 24일이 되어서야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이 사건을 대량 학살로 인정했습니다. 여기에는 미국사회의 아르메니아인 커뮤니티의 힘이 작용했습니다. 현재 미국에는 아르메니아계가 최소 50만명 이상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 외에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이 사건을 공식적으로 대량 학살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대량 학살에 대한 인식은 일부 국가와 튀르키예 관계를 긴장시킬 수 있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많은 튀르키예 지식인과 활동가들은 이 사건을 집단학살로 인정하고 정부에 책임을 묻기도 했습니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튀르키예 작가 오르한 파묵도 그런 지식인 중 한 명입니다. 그가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튀르키예 정부는 국가모독죄로 기소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아르메니아 학살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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