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경기둔화와 소비 위축에도 반도체 생산만큼은 예외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완전 자립을 목표로 계획 중인 '중국제조 2035' 전략이 이미 실행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삼성과 SK하이닉스의 대중 반도체 수출에 중장기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17일 한국무역협회 베이징지부가 최근 발간한 '한국의 대중 수출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월 중국의 스마트폰 생산량은 전년 동월 대비 11.9%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반도체 생산은 4% 늘었다.
이 같은 흐름은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중국제조 2035' 비전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제조 2035'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신에너지 등 전략산업을 중점 육성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특히 반도체는 미국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는 핵심 자립 품목으로 분류되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중국은 조만간 구체적인 투자규모를 포함한 실행 계획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현재 3기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일명 '빅펀드') 조성을 본격화하고 있으며, 우시·선전 등 주요 반도체 클러스터 지역에서는 칩 설계부터 제조, 후공정 패키징까지 전 공정에 걸친 국산화 비중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반도체를 전략 물자로 간주하고 있어 단기 수요 둔화와 관계없이 정부 주도로 투자가 지속되고 있다"며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려는 국가적 의지가 매우 뚜렷하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 움직임은 이미 한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수출 중 대중국 비중은 2021년 42.7%, 2022년 45.2%에서 2023년 40.3%, 2024년 31.7%로 꾸준히 하락했다. 올해 1~5월 기준으로는 20%대 중후반까지 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차세대 메모리 기술과 패키징 분야까지 국산화에 성공하면, 한국 반도체 산업에 상당한 충격을 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중국은 이미 올해 초 최신 범용 D램인 DDR5 양산을 시작했으며, HBM(고대역폭메모리) 후공정에 필요한 패키징 장비를 다수 내재화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반도체 장비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과거 액정표시장치(LCD)로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했지만,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경쟁력을 잃은 경험이 있다"며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은 단순한 추격 수준이 아니다. HBM 이후의 미래 시장에서도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박순원기자 ssun@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