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인간과 기계, 이제는 함께 진화한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505/2025052102102369061002[1].jpg "[논설실의 서가] 인간과 기계, 이제는 함께 진화한다")
내 어머니는 컴퓨터였다
캐서린 헤일스 지음 / 이경란·송은주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인간과 기계 간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이른바 '인간의 영역' 깊숙이 침투하며 인간과 기계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 중이다. 책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간과 기계가 어떻게 얽히고 있는지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세계적인 포스트휴머니즘 이론가인 저자는 인간과 기계를 서로 대립하는 존재로 보는 낡은 시각에서 벗어나, 두 존재가 어떻게 공존하고 함께 변화해가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책은 인간과 기계의 복잡한 얽힘을 정밀하게 분석한 이론서다. 언어학, 문학, 프로그래밍, 철학을 넘나드는 학제적 통찰이 돋보인다. 예컨대 인간의 말하기·글쓰기와 컴퓨터의 코드 간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말하기'와 관련해서는 소쉬르의 언어학을, '글쓰기'와 관련해서는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를, '코드'와 관련해서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C++를 각각 참고하며 이 셋을 한데 엮어 논한다. 또한 전통적 인쇄 문학과 현대 전자 문학 간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들뢰즈·가타리의 '기관 없는 신체'와 '아상블라주' 개념을 차용하고, 라투르의 '사실물'과 '우려물' 개념을 토대로 '물질성'을 재정의함으로써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책을 이끄는 또 다른 큰 축은 픽션, 즉 허구다. AI에 대한 가설적 전망이 AI 개발에 반영되어 향후 궤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듯이,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는 그것이 허구일지라도 기계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다. 저자가 책에서 '인간과 기계가 뒤얽힌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을 독해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이들 소설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 존재가 앞으로 무슨 상황에 놓일지 미리 앞당겨 숙고·상상하게 하며, 이러한 '사고 실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듬게 한다.
책은 3부 9장으로 구성됐다. 1부는 언어 이론과 문학 작품을 통해 코드의 철학적·서사적 함의를 분석한다. 2부에선 인쇄 문학과 전자 문학의 상호작용을 분석해 텍스트 개념을 재정립하고, 코드와 서사의 피드백 구조를 고찰한다. 3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를 중심으로, 인간 주체성과 디지털 존재의 미래 가능성을 SF 작품 등을 통해 살펴본다.
저자는 인간과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상호 작용, 그리고 공진화(共進化)에 대한 연구를 선도해 온 세계적 이론가다. 로체스터공과대학교에서 화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에서 화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영문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로체스터대학교에서 영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듀크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동 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포스트 휴머니즘을 학술 영역에서 최초로 정의하고 본격적 학문 분야로 발전시킨 석학으로 평가받는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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