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빅테크들이 잇따라 대만을 인공지능(AI) 전진기지로 삼기로 하면서 국내 산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엔비디아가 확대 구축하는 AI 생태계에 국내 기업이 진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는 19일(현지시간) '컴퓨텍스 2025' 행사 기조 연설을 통해 대만에 슈퍼컴퓨터와 관련 인프라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슈퍼컴퓨터 구축은 단순히 컴퓨터를 몇 대 설치하는 게 아닌 과학·기술·산업·안보 역량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국가 단위 프로젝트다.
퀄컴과 인텔도 각각 데이터센터향 중앙처리장치(CPU)와 AI 가속기 신제품 개발 계획을 공개했다. 이들 기업들은 미국 중심의 AI 팩토리 모델을 동아시아로 확장해 AI 주권을 대만으로 가져온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 국내 기업의 참여는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을 공급하는 것 외에는 엔비디아 AI 가치사슬에 포함될 수 있는 국내 기업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반면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와 설계, 패키징까지 AI 생태계 기반이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 외에는 엔비디아의 AI 가치사슬에 국내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분야가 없어 보인다"며 "대만의 부상은 국내 산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이 현재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 빅테크들과 TSMC와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협력 관계가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추후 삼성 파운드리의 경쟁력이 올라오더라도, TSMC에 비해 불리한 환경에 놓일 수 있다"며 "대만이 글로벌 빅테크의 AI 전진기지가 되면 TSMC가 빅테크의 칩 테스트 평가에서 유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도체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국내에 온디바이스 AI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온디바이스 AI는 전자 기기 자체에서 AI 연산을 수행하는 기술을 말한다.온디바이스 AI는 지난해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적용되기 시작해 모든 전자 기기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 시장은 아직 개화가 이뤄지지 않아 생태계 조성을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고 평가 받는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는 "국내 제조업의 강점을 살려 자체적인 온디바이스 AI 생태계를 만들어 가야할 필요성이 커졌다"며 "정부는 제조기업과 팹리스(반도체 설계)를 적극 지원해 혁신플랫폼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순원기자 ssun@dt.co.kr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19일 대만 컴퓨텍스 2025 기조 연설자로 나서 '대만 AI 슈퍼컴퓨터 구축'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