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정부 효율화 정책에 따라 미국의 연방 연구개발(R&D) 예산이 줄어든 여파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앞서 정부 R&D 예산 삭감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기도 했던 한국으로선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최고경영자(CEO)는 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정보기술(IT) 매체 테크크런치와의 인터뷰에서 AI 및 관련기술에 대한 연방 R&D 투자 규모가 줄어들어선 안 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오히려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R&D 예산은 확대돼야 한다"고 강력 주장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연방 연구예산을 긴축하되 AI 등에 대한 전략적 투자는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예산 삭감이 AI 관련 영역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와 국립과학재단(NSF)의 직원 다수가 해고 위기에 놓였고, 칩스법 집행을 위한 사무국은 지난 3월 사실상 해체됐다. 칩스법으로 NSF 산하에 마련돼 AI 등 신기술 연구 관련 지원을 맡는 기술·혁신·파트너십국(TIP) 예산까지 대폭 축소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2026 회계연도 예산안은 NSF 예산의 절반 이상에 대한 삭감을 의회에 요청한다. 국립보건원(NIH)과 에너지부(DOE) 등 다른 연방기관의 AI R&D 프로젝트에 지원하기로 했던 수십억달러도 위태로워졌다. 이에 미국 소프트웨어정보산업협회(SIIA) 등 여러 기술업계 단체들은 데이비드 삭스 백악관 AI·암호화폐 책임자와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에게 미국의 글로벌 AI 리더십을 저해할 수 있다고 서한을 통해 경고했다.
IBM도 예산 삭감의 직격탄을 맞은 곳 중 하나다. 1분기 실적 발표에서 회사는 1억달러 규모의 연방계약 15건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크리슈나 CEO는 "현재 연방정부의 R&D 투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으로 볼 때 역사적 최저 수준"이라면서 "1년쯤 뒤에는 AI·양자·반도체 부문에 대한 연방 R&D 자금이 현재보다 더 나은 상태에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연구재단이 공개한 '트럼프 행정부의 과학기술정책 분석 및 대응 방안 모색'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연구비 삭감과 반과학적 행보는 미국 연구 환경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려 두뇌 유출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고, 실제 유럽·캐나다·아시아 국가들의 인재 확보 기회로 이어지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은 미국 과학기술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5일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열린 유럽 과학 콘퍼런스에서 '유럽을 선택하세요'(Choose Europe)로 명명한 과학연구 종합지원 계획을 내놨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2025∼2027년 유럽을 연구자에게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기 위한 5억유로(약 8000억원) 상당의 새로운 패키지를 제안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EU 회원국과 함께 2030년까지 R&D 부문 투자를 GDP의 3％까지 늘리는 게 목표"라 밝혔다. 또한 "기초적이며 자유롭고 개방적인 연구에 대한 투자에 도전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엄청난 오판"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한편 국내에선 이달 초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안 대비 618억원 증액한 1조9067원 규모 AI분야 추경안이 의결됐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를 중심으로 AI업계에서 정부안 대비 1조5000억원 규모 추가예산을 요청했던 것에 비하면 아쉬운 측면이 있으나 AI 추경이 이뤄진 것만으로도 대체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AI를 중심으로 한 R&D 예산 확보와 그 효율적·효과적 집행은 앞으로도 국가적 과제가 될 전망이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AI 추경에 대해 "AI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결정 속에서 시급한 예산이 확보됐다"면서 "과기정통부는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심정으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혁신적인 기술과 인재양성 및 AI 확산 등에 대한 신속한 예산 집행을 통해 글로벌 3대 강국으로 도약할 것"이라 말했다.팽동현기자 dhp@dt.co.kr
트럼프 1기 vs. 바이든 vs. 트럼프 2기(예상) 정책 비교. 한국연구재단 보고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