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일반적(General)이지 않다. 범용AI(AGI)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 실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고급기계지능(AMI) 구현을 목표로 해야 한다."
AI 미래를 둘러싼 석학들의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세계 AI 4대 석학 중 하나로 꼽히는 얀 르쿤 뉴욕대 교수는 "실질적인 AI 혁명은 아직 오지 않았다"면서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르쿤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1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앰배서더호텔에서 개최한 '2024 K-사이언스&테크놀로지 글로벌 포럼'에서 기조강연을 했다. 르쿤 교수는 딥러닝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2018년 튜링상을 공동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메타플랫폼의 수석AI과학자도 맡고 있다. 메타의 스마트안경을 쓰고 연단에 오른 그는 "앞으로 모든 디지털 상호작용은 AI를 통하게 될 것"이라며 AI에 대한 오해와 그에 따른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역점을 뒀다. 또 실질적인 도움을 줄 AI를 구현하기 위한 개방형 협력 필요성을 역설했다.
르쿤 교수는 "AMI(아미)는 프랑스어로 친구란 단어와 발음이 같다. 앞으로 우리는 친구처럼 추론하고, 계획하고, 안전하게 통제 가능한 AI를 쓸 수 있게 될 것"이라면서도 "챗GPT, 라마 등 대형언어모델(LLM)을 포함해 지금의 AI 기술은 이를 구현하는 데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식기세척기에 설거젓거리를 골라 넣는 건 10살 아이도 하는데, 아직 이를 제대로 하는 로봇은 없다"고 비유했다.
그는 "현재 LLM이 학습 가능한 데이터 총량은 60조바이트 정도 된다. 그런데 사람의 눈엔 뉴런이 100만개씩 있어 4살만 돼도 10의 14승 바이트에 해당하는 정보를 축적한다"며 "우리가 목적지를 향할 때 일상적·지속적으로 하는 계층적 행동 계획도 아직 컴퓨터로 재현하지 못했다. 이는 강아지나 고양이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라 덧붙였다.
르쿤 교수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AI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AI가 언어를 넘어 실제 물리세계를 이해하려면 신경망 기술도 몇 단계 더 발전해야 하고 최적화도 필요하다"며 "모델예측제어(MPC)를 포함해 '목표 주도 AI(Object Driven AI)' 아키텍처가 구현돼야 한다. 기존에 사람이 입력해 학습시킨 데이터만 기반 삼는 게 아니라, AI가 아이들처럼 관찰하고 상호작용하면서 복잡한 정보를 계속 배워나가는 방식"이라 설명했다.
그는 영상 생성AI 또한 한계 극복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자기지도학습(Self-Supervised learning)은 LLM이 텍스트 사이 공백에 대해 확률적으로 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기여했으나, 훨씬 많은 정보가 중첩된 동영상의 경우 동일한 방식으론 예측 불가능하다"며 "이를 해결하고자 올해 메타에서 '제파(JEPA)' 아키텍처를 제안했다. 이 방식은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을 지워나가며 훨씬 용이하게 실제 세상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고 부연했다.
르쿤 교수는 이를 기반으로 실제 세상을 예측할 수 있는 아키텍처를 연구하고 있다. 가령 전 세계 식생이 어느 정도 높이로 자라는지 지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를 기반으로 이들이 저장 가능한 이산화탄소량을 유추해낼 수 있다. 이밖에 기계의 행동 순서나 시스템의 학습량 예측 등에도 쓸 수 있어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좀 더 알 수 있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르쿤 교수는 AI 분야 한계 극복을 위한 국제 협력 필요성도 제기했다. "한국 연구계도 제파와 유사한 아키텍처를 연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과 꼭 협력할 수 있길 바라며, '글로벌 AI 프론티어랩'에서 기회가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글로벌 AI 프론티어랩'은 과기정통부와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이 세계 최고 수준의 AI 공동연구 수행을 위해 지난 9월 미국 뉴욕대에 개소한 연구소로, 르쿤 교수가 같은 대학 조경현 교수와 공동소장을 맡았다.
개방형 협력도 화두로 제시했다. "실제 우리가 실생활에서 잘 사용할 수 있는 AI가 되려면 모든 인간의 언어·지식·문화가 함께 축적돼야 한다. 미국 서부에서만 축적된 데이터로는 인류 전체가 누릴 수 있는 AI를 만들지 못한다"며 "앞서 인터넷이 그랬듯, 빅테크들을 포함해 세계적인 민관 협력이 오픈소스 기반 AI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규제로 이를 막는 우를 범하지 말고, 컴퓨팅 자원 또한 적절히 배분·활용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글·사진=팽동현기자 dhp@dt.co.kr
얀 르쿤 뉴욕대 교수가 11일 여의도 페어몬트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2024 K-사이언스&테크놀로지 글로벌 포럼'에서 기조강연하고 있다. 팽동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