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 혼란에 원·달러 환율이 연일 치솟고 있다. 외환당국이 원화가치 방어에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대외 신인도 하락, 정국 혼란 장기화 등 영향에 환율이 여전히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 상단을 1450원까지 열어놓고 있다.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으로 전 거래일 대비 17.8원 오른 1437.0원에 마감했다. 이는 2022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비상계엄 다음날인 지난 4일 야간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442원까지 오른 후 주간거래에서 1420원대에 거래됐는데, 이를 훌쩍 뛰어넘은 수준이다.
탄핵정국이 장기화될 것으로 관측되자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 상단이 1450원까지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연구원은 환율 상단을 1450원으로 열어뒀고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환율이 1450원을 터치할 것으로 전망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주간 원·달러 환율 밴드를 1410~1460원으로 제시했다.
박 연구원은 "외국인의 추가적인 자금 이탈이 원화 가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당국 개입 노력 등을 감안할 때 상단은 1450원 정도를 예상한다"고 말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이 환율 상승 흐름 자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며 "국내 개인 및 외국인 투자자의 원화자산 회피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원·달러 환율은 1500원 이상으로까지 상승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전망했다.
최근 몇 달간 나타난 중국 위안화와 유로화의 급락이 원·달러 환율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킬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위안화와 유로화가 상대적으로 경제 규모가 작은 주변국들에 '통화 앵커' 역할을 하는데 최근 이들 통화의 앵커 역할이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위안화와 블룸버그 아시아 달러지수 간 30일 상관관계가 이달 0.95로, 5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밝혔다.
유로화와 블룸버그 중·동유럽 달러 지수 간 상관관계도 지난 9월 말 0.2에서 0.6으로 뛰었다고 설명했다. 수치가 1에 가까울수록 같은 단계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러한 긴밀한 상관관계는 무역 연계에서 비롯되는데 한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수출에서 대중국 수출이 최소 20%를 차지하고 헝가리와 체코 등의 수출 중 유로존 수출 비중은 50%를 웃돈다.
인터치 캐피털 마켓의 션 캘로우 수석 외환 애널리스트는 한국에 대해 "탄핵 표결 불성립에 대한 일부 실망감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관련된 리스크로 인해 원화의 근본적인 추세는 여전히 하락세"라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무역 전쟁이 가속할 것이란 전망이 원화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해온 가운데 정국 불안이란 불확실성이 겹쳤다는 뜻이다.
이에 해외 신용평가업계에선 지난 10여년 간 역대 최고 수준(Aa2 안정적·무디스 기준)을 유지해 온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무디스의 자회사 무디스애널리틱스는 지난 4일 "정치적 갈등이 장기화해 경제활동에 영향을 끼치면 신용에 부정적일 것"이라며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6일(현지시간)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정치적 리스크(위험)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의 신용도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