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윤·임종훈 형제 선임 안건 모두 통과하며 '이사회 장악'
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측 신규이사 후보 6명 입성 불발
OCI그룹과 통합 계획 물건너가… 조직 정상화 숙제로 남아
고 임성기 회장의 경영철학과 도전정신에 대한 향수가 그의 오랜 지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소액주주들을 하나로 결집시켰다. 국민연금까지 반대편에 선 상황에서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의 승부가 소액주주들의 표심에서 갈렸다. OCI그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임종윤·임종훈 형제 측이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얻으며 이사회를 장악했다.
28일 경기 화성 라비돌호텔에서 열린 한미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제5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창업주의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주주제안한 이사진 5명의 선임 안건이 모두 통과됐다.
임종윤·종훈 사장은 사내이사, 권규찬 디엑스앤브이엑스 대표이사와 배보경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기타비상무이사, 사봉관 변호사는 사외이사가 됐다. 반면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의 장녀 임주현 부회장과 통합 파트너인 이우현 OCI홀딩스 대표 등 송 회장 측이 제안한 신규 이사 후보 6명은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입성이 불발됐다.
◇발행 주식 총수의 88%… 주주 2160명 주총장 모였다=이날 주총에 출석한 주주는 2160명에 달했다. 주식 총수는 5962만4506주로, 발행 주식 총수의 88.0%에 해당한다. 임종윤 사장은 51.1%를 득표했다. 이번 주총은 위임장 집계 및 확인 절차에 시간이 걸리면서 예정했던 오전 9시보다 약 3시간 30분 늦은 오후 12시 28분에 시작했다. 주총 현장에는 임종윤·종훈 형제와 이우현 OCI홀딩스 대표이사 등이 참석했고,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과 임주현 한미그룹 부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오후 들어 형제 측이 승기를 잡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이우현 OCI홀딩스 대표는 투표 결과 발표 전 행사장을 빠져 나갔다. 형제 측의 승리가 확인되자 현장에 참석한 소액주주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열세였던 형제, 표결 참여한 4.5% 소액주주가 살렸다=한미약품은 지난 1월 OCI와 '이종 간 통합'을 결정하고 지분을 맞교환해 통합 지주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임종윤 형제가 이에 반발해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임주현 부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여왔다. 이날 주총 직전까지 형제 측은 지분 확보 등에서 다소 밀리는 분위기였다.
전날까지 형제 측이 확보한 공개 우호 지분은 전체의 40.57%로 송 회장 모녀 측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약 43%보다 다소 열세였고, 앞서 OCI와 통합에 반대하며 법원에 제기한 가처분 신청도 기각됐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7.66%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송영숙 회장 측 지지를 밝히면서 임종윤·종훈 형제가 열세에 놓였지만, 이것이 오히려 소액주주들의 결집을 이끌어 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앞서 임 회장의 지인인 신동국 회장이 형제 측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줬다.
창업주 가족과 이번 주총에 앞서 형제 지지를 사전에 밝힌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12.15%), 모녀 측 지지를 밝힌 한미사우회(0.33%)를 제외하고 이날 주총 의결에 참여한 소액주주 등 지분은 4.5% 정도로 파악된다. 이들 소액주주 대부분이 형제 측에 표를 몰아주면서 이전 2%포인트 대의 지분 격차를 뒤집었다.
◇"저희가 할 일을 주주들이 해줬다"=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은 주총이 끝난 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미가 역사를 많이 쓴다는 생각이 든다"며 "저희 형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됐는데, 앞으로는 가족들도 다 같이 얘기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이런 모습(가족 간의 경영권 분쟁)을 보여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임 사장은 "저희 한미사이언스 주주는 원팀으로 법원도 이기고, (국민) 연금도 이기고 다 이겼다"며 "저희가 해야 할 일을 주주들이 처리를 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주주들이 원하는 회사로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절대적인 키맨인 신동국 회장님께서 저희를 믿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책임감 있게 숙제를 잘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날 주총이 끝난 후 OCI홀딩스 측은 "주주분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합 절차는 중단된다. 앞으로 한미약품그룹의 발전을 바라겠다"면서 "향후 통합 재추진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조직 정상화·상속세 마련 '숙제'=주총에서 형제 측이 승리했지만 내홍을 이어온 조직을 정상화하고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숙제로 남았다. 송영숙 회장과 자녀 3명이 상속받은 주식은 1조원 규모로, 5400억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여기에다 임주현 부회장은 임 전 사장이 상속세 해결을 자신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본인이 대여해 준 266억원을 즉시 상환해달라고 촉구한 상태다. 이에 대해 임종윤 사장은 최근 송 회장을 향해 "상속세 재원 문제로 개인이 내 집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면 경영 하시면 안 된다. 저희는 세금에 대한 문제는 개인적으로 알아서 잘 해결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화성/글·사진=강민성기자 kms@dt.co.kr
임종윤(왼쪽), 임종훈 사이언스 이사가 28일 화성 라비돌호텔에서 열린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가 끝난 직후 발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