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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갑 칼럼] 우리 시대에 집을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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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박원갑 칼럼] 우리 시대에 집을 산다는 것은
"출중한 지혜를 갖는 것보다 유리한 기회를 잡는 것이 더 낫고, 좋은 농기구를 갖는 것보다 적절한 농사철을 기다리는 게 낫다."

중국 고전 '맹자'에 나오는 얘기다. 인간의 지식이나 재주보다 좋은 때와 기회를 잘 잡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타이밍(timing, 시점 포착)이 승패를 가른다는 것이다. 가령 농사꾼에게 아무리 좋은 삽과 괭이가 있어도 때에 맞춰 씨를 뿌리지 않으면 곡식을 거둘 수 없다. 농기구는 수확량을 조금 더 늘리거나 줄일 뿐이다. 이보다는 '때'가 한 해 농사에서 훨씬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지난해 봄에 아파트 발코니 화분에 더덕 모종을 심어보니 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4월 중순에 '아기 모종'을 종로 꽃시장에서 사서 심었을 때는 금세 땅 내음을 맡고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5월 중순이 넘어 심은 '청소년 모종'은 적응을 못 해 비실비실 잘 크지도 않았다. 한여름을 지나도 이 두 더덕 모종은 튼실함에서 확실히 차이가 난다. 때를 잘 만나면 순풍에 돛 단 듯 모든 게 순조롭다. 하지만 그 시기를 놓치면 훨씬 많은 공을 들여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어릴 때 귀가 따갑도록 듣던 "공부는 때가 있다"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지금 와서 절실히 다가온다. 철은 왜 이리 늦게 드는 걸까.

농경사회에서 때를 맞추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모내기는 치자꽃 필 때가 지나면 늦다'는 속담이 있다. 그렇다면 치자꽃 피기 전에 모를 심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 아닌가. 완전 초심자가 아닌 이상 이미 농사의 경험치가 있고 주변 논밭의 눈치를 잘 살피면 큰 실수는 하지 않는다. 해마다 계절이 반복되니 타이밍을 재는 것은 평범한 농부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세상이 느린 속도로 변하니 굳이 타이밍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을 테고, 하루 이틀 늦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을 것이다.

농경사회에선 집을 살 때도 시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혼이나 분가를 할 때처럼 집이 필요할 때 구하면 되었다. 가격 변동이 심하지 않았던 데다 집을 투자용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너무 달라졌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주택시장은 수시로 널뛰기 장세를 연출한다. 때에 맞춰 집을 잘 사고파는 것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같은 타이밍이라고 해도 농사철을 맞추는 것보다 난도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하는 대가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제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도 냉엄한 머니게임의 장에서 타이밍의 승부사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수시로 실적이 평가되는 성과사회, 스스로 구축한 자산으로 살아야 하는 자산 기반형 복지사회에서 개인도 훌륭한 마켓 타이머로 살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집을 살 때 빚의 비중이 높을수록 삶 자체가 불안정해지고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내몰린다. 투자는 기본적으로 불안증을 유발한다. 확실성을 상징하는 저축과는 달리 그 성과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의 미래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개인 처지에서 보면 집을 사고파는 것은 주식 매매와는 차원이 다르다. 투자 금액 면에서 아파트는 주식을 압도한다. '내 집 장만이 인생 최대의 쇼핑'이라는 말은 이제 고리타분한 말이다. 지금은 인생과 가진 재산을 건 운명과의 백병전이다. 백척간두의 위험한 외줄 타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펀드나 주식 투자는 적립식으로 위험을 분산할 수 있지만 집을 살 때는 기회가 딱 한 번이다. 가진 것을 다 걸어야 한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더구나 제 돈 내고 집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빚(대출)이라는 외상까지 동원해 풀배팅을 하는, 건곤일척의 투기행위로 변한 것이다. 집값에 거액의 투자금을 쏟아부었으니 초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들도 주식 전문 딜러처럼 매번 타이밍을 재며 조마조마한 삶을 살아야 한다.

때로는 거래 과정에서 마법사라도 되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어느새 집값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편안함을 제공해야 할 집이 이래저래 스트레스 유발의 주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스스로 방어책을 마련해야 한다. 빚을 내더라도 적정 수준으로 빌리고, 주거 과소비를 하지 말며, 시세를 자주 보지 않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그래야 지금과 같은 변동성 시대에 그나마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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