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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인] 김주인 시즈글로벌 회장 "사업은 죽기살기로, 50년 간 타협한 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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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인] 김주인 시즈글로벌 회장 "사업은 죽기살기로, 50년 간 타협한 적 없어"
김주인 시즈글로벌 회장. [최상현 기자]

"큰 실패를 겪으면서 사업이라는게 철두철미하게, 죽기 살기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50년동안 품질과 기술개발에서 만큼은 한시도 타협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 6일 경기 성남시 사무실에서 만난 김주인(79·사진) 시즈글로벌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50년 이상 기업을 이끌어 온 김 회장은 한국 중소기업사의 산 증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김 회장은 1970년 처음 사업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무수한 위기를 겪었고, 그때마다 돌파구를 찾아 이겨냈다. 지난 5월에는 '대한민국 중소기업인 대회'에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출과 일자리 창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노력 등에서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다.

김 회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왜 법대까지 나와 사업을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 않았냐'고 묻자 "법대로 못 사는 사람이라서"며 웃었다. 사업을 마음먹은 김 회장은 일찍부터 수출에 눈을 돌렸다. 1970년대는 우리나라에 변변한 '산업'이라는게 거의 존재하지도 않던 시기. 그나마 외화를 벌어들이는 효자 산업이 바로 '가발' 이었다.

김 회장은 국내 가발업체들로부터 물건을 떼다 미국에 있던 형님을 통해 수출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나중엔 성남에 6611㎡(2000평) 규모 부지를 분양받아 직접 가발공장을 차렸다.

순항하는 듯하던 사업은 이내 암초에 부딪혔다. "1973년에 오일 쇼크가 들이닥쳤습니다. 직원들 기숙사에 난방을 땔 기름도 없는 판에 공장을 돌릴 기름이야 말할 것도 없었죠." 공장이 문을 닫고, 200여명의 현장 여성 직원들이 짐을 싸서 울면서 고향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김 회장은 다짐했다. "앞으로 내 회사에서 자의로 떠나는 일은 있어도, 타의로 나가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시즈글로벌에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 많은 이유다. 현재 경영을 맡고 있는 정구희 대표이사도 신입사원 때부터 시즈글로벌에서 일한 '토종 출신'이다.

다행히 이후 가발공장을 다시 세우는 데 성공했지만, 또다른 문제가 닥쳤다. 업계 경쟁이 너무 치열해지면서 덤핑과 저가 제품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김 회장은 차세대 먹거리를 찾기 위해 무작정 미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박람회 행사에서 그가 인생의 '귀인'으로 꼽는 콘로드씨를 만났다. 콘로드씨는 당시 나이가 73세인 노신사였다.


"이봐, 젊은 친구. 장갑 한 번 해볼 생 각없어? 가발 공장을 해왔다면, 장갑도 충분히 가능할텐데. 요즘 가죽장갑 수요가 부쩍 늘고 있거든." 콘로드씨는 이렇게 말하며 김 회장에게 장갑 생산 오더를 맡겼다고 한다.
하지만 전환은 쉽지 않았다. 초도 물량인 3만 켤레에서 다수의 불량이 나온 것. 가죽 원단을 납품해주던 회사와 허술하게 계약을 맺은 게 원인이었다. "콘로드씨가 '섣불리 시작하도록 한 것도 내 책임이다'라며 빚을 탕감해주고 어음을 써줘서 겨우 재기했습니다. 사업이라는 건 목숨 걸고 죽기살기로 해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두번째 재기에 나선 김 회장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장갑 샘플을 들고 오더를 따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유럽의 한 전시회에서 독일 출신의 바이어와 만나 1000켤레 계약을 따냈다. 이번엔 죽기살기로 최고의 품질로 만들어 납품했다. 입소문이 퍼지며 1000켤레가 2000켤레가 되고, 다시 수만 켤레로 주문이 불어났다.

이후로도 김 회장과 시즈글로벌은 숱한 시대적 위기를 거쳐왔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 유럽발 재정위기, 미·중 무역분쟁과 코로나19 사태에 이르기까지. 오직 장갑에만 매진해 스키장갑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20%를 달성하고, 국내 최초로 TYPE2 소방장갑도 개발했다. 기술력과 끈기로 기업을 지켜왔고, 직원들을 지켜왔다.

올해 한국 나이로 팔순을 맞는 김 회장은 은퇴 후 인생 2막 계획을 차근차근 실천에 옮겨 나가는 중이다. "평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재단과 학술지를 만들어서 젊은 연구자들이 마음껏 좋은 논문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김 회장 본인도 역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남들은 골프라도 치면서 쉬라고 하지만, 그렇게 노는 게 태생적으로 잘 안 됩니다. 지금까지 사업으로 국가에 기여했다면, 앞으로는 힘닫는 데까지 학계를 통해 국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게 마지막 목표입니다."

최상현기자 hy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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