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3분기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빚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저출산으로 향후 20년간 생산인구가 24% 감소하면서 잠재성장률이 2.0%로 하락할 것으로 경고했다.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 늪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단기 부양책보다는 장기적인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29일 한국은행과 OECD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우리 경제의 실질 GDP는 전분기 대비 0.3%(속보치) 증가하는 데 그쳤다. OECD 회원국 평균(0.4%)보다 낮은 수준이다. 현재까지 분기 성장률이 발표된 30개국 중 16위에 불과하다. 지난해 3분기에도 우리 경제는 0.3% 성장하는 데 그쳤고, OECD 평균(0.5%)을 밑돌았다. 4분기(-0.4%)는 아예 역성장해 OECD 평균(0.2%)을 크게 하회했다. 이런 추세가 올 1분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로 와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연금·교육 분야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며 "재정을 풀어 단기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기관들이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성장 전망도 비관적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1.4%로 낮췄다. 앞서 지난 2월 전망과 비교하면 상반기 성장률은 1.1%에서 0.8%로 0.3%포인트(p) 낮췄고, 하반기도 기존 2.0%에서 1.8%로 하향했다.무디스는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꺼질 수 있다"며 "인구 통계적 압력이 생산성 향상과 투자에 부담을 주고 재정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2·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올해 성장률 전망은 기존보다 0.1%포인트 낮은 1.5%로 낮췄다.
급격히 늘어난 가계와 기업 부채도 비상이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2.2%로 조사대상 34개국 중 1위였다. 기업 부채도 GDP 대비 118.4%로 홍콩과 중국, 싱가포르에 이어 네번째로 높았다. 세계적 긴축 기조에도 불구하고 기업 부채 비율은 오히려 일년 새 3.1%p 뛰었다. IMF는 한국의 기업 부채 중 '이자도 못 갚는 부실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20%가 넘는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전망한 '상반기는 낮지만, 하반기엔 높아질 것'(상저하고)이란 전망은 물건너가고 '상저하저'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정부는 지난해말부터 올해 성장률 전망을 1.6%로 고수하고 있다. 발표 당시엔 한은이나 OECD 등보다 비관적인 전망이었지만, 경제 지표가 악화하며 이제는 정부 성장률 전망이 더 높은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다만 기재부는 "성장률 전망치 수정 여부, 발표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전문가들은 저성장 기조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재정이나 통화 정책을 동원한 경기부양책 대신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일 근본적인 구조개혁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잠재 성장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어 제도 개혁과 생산성 제고 등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경제학)도 "단기적인 성장률에 일희일비해 재정 정책이나 금리 인하 등의 처방을 해선 안된다"면서 "규제 완화, 노동·연금 개혁 등으로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고 밝혔다.최상현기자 hyun@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