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석 아름다운서당 이사장·前노동부 차관
![[정병석 칼럼] 분열된 사회, 플라톤식 토론법 활용하자](http://contents.dt.co.kr/images/202304/2023040602102269660002[1].jpg "[정병석 칼럼] 분열된 사회, 플라톤식 토론법 활용하자")
학생들 과제는 국가론을 읽고 후배들에게 이 책을 필독 고전으로 추천하는 보고서를 써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학생들은 이 책의 내용도 훌륭하지만 플라톤식 토론 방법과 토론 자세가 특히 인상적이라고 설명했다. 소크라테스를 주연으로 내세운 토론에서 플라톤은 '정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아테네 지식인들이 '정의란 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불의가 정의보다 이익이 더 크다'는 등 엉뚱한 논리를 펴더라도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소크라테스는 상대방 주장에서 옳은 것은 바로 수용하고 잘못된 부분은 차근차근 반박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며 합리적인 방향으로 유도해가는 토론을 진행한다. 이런 토론을 통해 정의의 원칙이나 이상적인 국가 체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낸다.
자기 생각과 다르고 잘못된 주장을 하더라도 소크라테스가 일단 상대방 의견을 경청한 뒤 하나하나 문제를 지적하며 상대방이 수긍하도록 논리적으로 설득하여 합의에 이르는 방법론에서 대학생들은 많은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우리 대학생들이 서양 철학의 기반이며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플라톤의 책을 읽고 그 내용에 앞서 토론 방법에 더 감명을 받은 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토론을 목격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신선하게 느꼈다는 의미이다. 2500여년 전에 저술된 책이 지금도 강한 생명력을 갖는 것은 그만큼 그 토론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라 이해된다.
최근 정부가 근로시간 유연화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표하자 곧바로 주 69시간 근로를 강요하고 과로사를 유발할 개악이라는 비난이 제기되었다. 개정안의 의도는 현재 주 단위로만 운영되는 근로시간 관리체계를 월 단위, 분기 단위, 연 단위로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해 운영하도록 탄력적인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일감이 밀리는 특정 기간에 많이 일하고 다른 기간에는 적게 일하며 그만큼 휴가로 몰아서 사용할 수 있게 운영하자는 취지이다.
그런데 이런 제안에 대해 주당 69시간까지 노동하게 하여 피로의 가중, 나아가 과로사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매도하는 바람에 원 취지가 왜곡되고 말았다. 장단점, 실행가능성을 제대로 살펴보기도 전에 69시간 근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주장하며 비판 여론을 조성해버린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서 최근의 한일 정상회담을 통한 한일외교 정상화를 들 수 있다. 최악으로 악화된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개선하여 북핵위기와 국제공급망 재편 등 국제현안에 공동 대응하자는 한일외교가 '굴욕외교'로 매도되고 있다.
'굴욕'이란 '남에게 억눌려 업신여김을 받음'을 의미하는데 일본에 가서 국빈급 대우를 받았고 경제적 실리도 크다는데, 그 성과를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은채 '굴욕외교'라고 비난하는 게 맞는가.
지금의 우리 사회가 너무 분열되어 있어 어떤 이슈에 대해 논리적 토론 없이 곧바로 감정대립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많은 노동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마련한 근로시간 유연화 개선안에 대하여 진지하게 토론해가면서 좋은 점은 수용하고 문제가 될 부분은 대안을 제시하는 방법이 타당하지 않을까.
진지한 찬반 토론도 없이 장시간 근로제를 도입해 과로사를 유발한다고 매도하는 방식은 올바른 문제해결 자세가 아니다. 요즘의 청년세대가 원하는 것은 자기 의견만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논쟁보다는 전문가들이 각각의 장단점을 차분하게 따져보며 논리적으로 설득하면서 토론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분열되어 있는 사회에서 토론과 대화의 기본은 거창한 철학을 내세우기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들어보고 가능한 접점을 조금씩 찾아보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플라톤식 토론, 대화 방법이 현대 우리 사회에 주는 소중한 교훈이다. 활성화된 종편방송이나 SNS매체 등을 통해 정부의 정책이나 사회 이슈에 대하여 전문가들이 나서서 차분하게 장단점과 문제점, 대안이 무엇인지를 토론하며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주고 국민이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
학교에서도 어릴 때부터 이런 토론을 자주 훈련하고 교육하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향상되어 의견대립이 줄어들고 사회통합에도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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