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 칼럼] 개전 1년, 우크라이나 국민은 바둑돌이 아니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302/2023022002102269061002[1].jpg "[박영서 칼럼] 개전 1년, 우크라이나 국민은 바둑돌이 아니다")
전쟁 발발 이래 러시아는 대략 세 번의 주요한 좌절과 패배를 겪었다. 첫 번째는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지 못한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당초 키이우 점령 작전이 하루나 이틀 안에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도망칠 것이고 키이우는 금세 함락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우크라이나가 키이우 방어에 성공하면서 전세의 풍향은 바뀌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 전투에서 대패한 것이다. 9월 11일 우크라이나군은 하르키우 지역을 탈환했고, 러시아군은 황급히 퇴각했다. 푸틴은 이 패배에 충격을 받고 두 가지 중대 결정을 내렸다. 9월 21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여년 만에 '부분 동원령'을 내려 신병 32만여 명을 확보했다. 이어 30일에는 점령지 4개 주(州), 즉 도네츠크·루한스크·헤르손·자포리자를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로 합병해 버렸다.
세 번째는 11월 11일 남부 요충지 헤르손을 잃은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주의 주도(州都) 헤르손시를 수복했다. 러시아는 지난 9월말 '합병한' 주의 주도를 빼앗기는 망신을 겪었다. 이는 푸틴을 지지해온 러시아의 극우세력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푸틴은 러시아군이 열세라는 것을 알게됐다. 그는 "휴전 협상을 할 준비가 됐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합병한 4개 주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면 휴전 협상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우크라이나가 이를 거부하면서 전투는 계속됐다.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푸틴이 내린 결정은 총사령관 교체였다. 올해 1월 11일 푸틴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게라시모프는 푸틴 충성파이자, 전투 경험도 풍부한 '뼛속까지 군인'이다.
푸틴은 게라시모프에게 오는 3월까지 도네츠크주를 완전히 점령하라고 지시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7월 이후 루간스크주를 점령중이다. 하지만 도네츠크주는 약 50%의 통제권만 가지고 있다. 루간스크와 도네츠크주를 완전히 제압한다면 푸틴은 어느 정도 면목을 세울 수 있다.
게라시모프는 '큰 전투'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러시아군의 대공세는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의 요충지 바흐무트에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남부와 동부의 넓은 지역에서도 새로운 공격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방의 주력전차가 전선에 배치되기 전까지 결정적 계기를 잡겠다는 심산이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서방 전차가 도착하는 4월 이후 대규모 반격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전투가 더 치열해지면서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몇년 동안 지속될 것 같은 느낌이다. 종전은 푸틴의 결단에 달려있지만 그는 정예병력을 동원해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승리할 수는 없어도 패전만은 피하고 싶은 게 푸틴의 심정이다.
다만 전환점을 올해 맞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 미국, 유럽이 선거의 해를 맞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2024년 대선이 예정되어 있다. 이는 전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에게 우크라이나의 영토 탈환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핵무기 사용을 막고 장기전을 피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지난 16일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이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이 협상 테이블에서 끝나야 한다는 점을 언급한 것을 보면 미국의 태도 변화가 느껴진다.
잔혹한 전쟁이 지속되면서 '평화'라는 단어는 무게감을 더한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전쟁터의 바둑돌이 아니다. 전쟁의 최종 종착지는 결국 '평화'여야 한다. 방법이 없어서 전쟁이 해결되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쟁 2년차에 국제사회가 해야 할 일은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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