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횡재세’ 논의에 정유사들 ‘초긴장’
영국은 이미 시행, 미국도 도입 추진…업계 “형평성 안 맞아”
정치권에서 고유가 덕분에 역대 최대 흑자를 누리고 있는 국내 정유사에 대한 이른바 '횡재세(Windfall Profit Tax)' 도입 논의가 나오고 있다. 최근 기록적인 기름값 상승세로 '초호황'을 누리고 있는 국내 석유회사들의 초과이윤을 세금으로 환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선 최근 정유사를 대상으로 초과이윤세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고, 미국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정유사들은 향후 유가 하락에 따른 손실 가능성과 조세 형평성 등을 들어 횡재세 도입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에도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리터(ℓ)당 평균 2100원선을 넘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자 정치권에서 정유사들의 초과이익 환수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정유업계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겠다"고 했고, 같은 당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정유사 초과 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 등을 통해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정유사들이 고유가 상황에서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선 안 된다"며 정유사의 고통 분담을 촉구했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는 올해 1분기 역대 최대 규모의 흑자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SK이노베이션 1조6491억원, 에쓰오일 1조3320억원, GS칼텍스 1조812억원, 현대오일뱅크 7045억원으로, 4사 모두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4사의 전체 영업이익은 4조7668억원이다. 전년 동기보다 2조5079억원이나 늘어난 수치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미리 사둔 원유의 가치가 높아져 재고 관련 이익이 늘었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정제 마진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 덕분이다.
올해 2분기 역시 1분기와 비슷한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횡재세' 주장은 세계적인 에너지 대란 속에 비정상적인 이익을 낸 정유사들이 물가안정과 소비자 부담 완화를 위해 초과 이익의 일부를 환원하라는 것이다.
해외에선 영국은 지난달 에너지 요금 급등에 대응해 일시적으로 석유와 가스업체에 25%의 초과 이윤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에선 민주당이 이윤율 10%를 넘어서는 석유회사에게 추가로 21%의 세금을 물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0일 대국민 연설에서 "엑손이 지난해 하느님보다 돈을 더 벌어들였다"며 석유회사의 고수익을 비판하기도 했다.
정치권의 정유사 횡재세 도입이 거론되자 국내 정유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초과이윤세 도입 시 정유사들의 수익성이 악화할 수밖에 없어 정유업계가 강력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유사들은 영업이익 규모가 다소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정유사들이 1분기에 거둬들인 영업이익 4조8000억원 중 약 40% 규모가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관련 이익으로, 앞으로 유가가 하락하면 재고 손실로 다시 반납해야 하므로 '회계상의 이익'일 뿐이라는 것이다.
횡재세가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유사들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2020년 세계적인 석유 수요 급감으로 연간 5조원에 달하는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당시 정유사에 대한 손실 보전 등 정부 지원이 없었는데 최근의 일시적 고수익에 과세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초과이윤세 도입 시 수익성 악화에 따른 석유제품 생산 감소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국내 횡재세 도입 논의가 아직 초기 단계여서 정치권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22일 경기 성남 대한송유관공사 판교 저유소로 유조차(탱크로리)들이 줄지어 들어가고 있다(오른쪽 차선). 왼쪽 차선에는 운송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시작한 민주노총 화물연대 오일탱크로리지부 소속 유조차들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1일 오전 유가 폭등 대책 마련을 위해 서울 양천구 양천현대셀프주유소를 방문, 한 시민이 주유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