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집권당의 자국기업 불매운동, 누구를 위한건가

기업인 '멸공' 발언에 한주 내내 정치권 들썩
멸공 때리던 여권, 반중 연결지어 압박 늘려
선대위서 신세계 불매 선언, '中에 우려' 주장
'핵공격 전제' 방어적 선제타격에도 "전쟁광"
집권세력이 누굴 위해 자국민·기업 겁주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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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정치박박] 집권당의 자국기업 불매운동, 누구를 위한건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멸공' 발언 논란이 일기 전후 인스타그램에 올린 일부 게시물.



'멸공(滅共·공산주의 세력을 멸함)'과 '선제타격'이라는 두 단어 덕분에(?) 한주 동안 정치권 안팎에서 희한한 광경이 연출됐다. 둘 중 특히 전자는 집권여당 공직자들이 사실상 외세(外勢) 심기 경호를 맡으며 자국 기업 불매(不買)운동에 나선 것으로 보여 황당하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 5일 숙취해소제 사진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 테다. #멸공'이라고 써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폭력 및 선동'으로 분류돼 임의 삭제 처리되자 정 부회장이 "나는 공산주의가 싫다" "왜 이 글이 폭력 선동이냐"고 항의한 게 시작이었다. 멸공에 해시태그(#)를 단 숱한 게시물 중 정 부회장의 글만 삭제된 정황 등으로 인해 인스타그램 측의 편집권 남용에 따른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확산됐다. 삭제됐던 글은 '시스템 오류였다'는 해명과 함께 복구됐으나, 정 부회장은 시위하듯 멸공과 공산당을 키워드로 삼은 게시물을 계속 생산했다.

그러던 중 여권 핵심인사로 불렸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7일 트위터에 정 부회장의 멸공 발언을 겨냥 "거의 윤석열 수준"이라고 비꼬는 글을 올렸고, 더불어민주당과 재결합을 앞둔 열린민주당의 대변인은 정 부회장이 군 면제로 인해 멸공 발언 자격이 없다는 취지로 공격했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김태년 의원은 7일 "사실관계도 정확하지 않은 보도 링크해서 중국을 자극하는 게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며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압박했다. 정 부회장이 <"소국이 감히 대국에…" 안하무인 中에 항의 한번 못해>라는 제목의 기사 캡처본을 올리며 #멸공 #이것도지워라 시위를 이어간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등 야당이 8일부터 신세계 계열사 이마트를 찾아 '멸콩(멸치+콩)' 장보기 인증에 나섰고, 여권에선 "일베 놀이"라며 '극우(極右) 딱지' 붙이기로 맞서 소모적 공방이 일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여권은 반중(反中) 차단에 더 주력하는 듯했다. 정 부회장은 앞서의 기사 캡처본에 시진핑 중국 주석이 들어있다는 논란이 일자, "오로지 우리 위에 사는 애들(북한)에 대한 멸공이고 나랑 중국이랑 연결하지 말라"며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들어간 사진으로 교체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애초에 정 부회장은 시 주석 사진이 들어간 기사를 SNS에 올리며 반중을 의미하는 듯한 멸공 해시태그를 달았다"면서 "오너 리스크 비난에 북한 리스크라며 물타기를 한 것"이라고 물고 늘어졌다.

9일에는 현근택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이 트위터로 스타벅스 커피 불매를 선언했다. 그는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는 "(정 부회장이) 시진핑 사진을 올리면서 문제가 커진 것" "우리나라가 처한 위치가 중국과 (중국사업을 철수한 신세계같은) 그런 관계가 아니잖나" 등 비판을 쏟아냈다. '멸·콩' 창시자 격인 윤 후보를 겨냥해선 '문재인 정부의 중국편향 이후 한중(韓中) 청년들이 서로를 싫어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재론하며 "어찌 보면 최근에 행보가 이대남들의 요구를 부응하는 듯하다"는 해석도 달았다.

뒤이어 진성준 민주당 의원도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무총리 사회특보를 맡은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의 글을 공유하며 "저도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스타벅스에 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김용민 당 최고위원은 "커피는 동네커피가 최고"라며 스타벅스를 겨냥한 '#작별'을 덧붙였다. 민주당은 11일 선대위 박찬대 수석대변인 논평으로 "정 부회장의 '멸공' 논란은 신세계 그룹에 대한 불매운동과 함께 대(對)중국 사업에 대한 우려를 중국에 확산시켰다"며 '공직자와 같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멸공보다도 반중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자국 기업 불매를 조장하거나 방관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19년 한·일 정부 간 관계악화에 '죽창가'를 동반하며 일본계 기업인 유니클로 불매운동을 주도했던 것과도 양상이 다르고, '전례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발(發) 사드(THAAD) 경제보복의 '셀프 연장'인가도 싶다. 정 부회장은 어쨌든 한국노총 전국이마트노동조합(이마트 노조)이 "본인이 하고 싶은 말 하는 것은 자유이나 그 여파가 수만명의 신세계, 이마트 직원들과 그 가족들에게도 미친다"며 불안을 호소한 지 하루 만(13일)에 "저의 자유로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저의 부족함"이라며 몸을 낮췄다. 민간기업 핵심 이해관계자 간 대화로 해소될 문제에 공직자들이 '누구'를 위해 끼어들어 불매를 외쳤나 의문이다.한편 '선제타격' 발언 시비도 상당한 촌극이다. 북한군이 새해 들어서만 두 번이나 속력 마하 5~10에 달하는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해 안보 불안이 높아지고 있던 지난 10일, 윤 후보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 미사일 방어 계획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그는 "마하 5 이상의 미사일은 핵이 탑재됐다고 하면 발사돼서 우리 수도권에 도달해 대량살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분 이내다. 요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미사일 공격) 조짐이 보일 때 우리 3축 체계(킬체인 Kill Chain·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 KAMD·대량응징보복 KPR)의 가장 앞에 있는 킬체인이란 선제타격 말고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민주당에선 윤호중 원내대표가 윤 후보를 두고 "정말 호전적인 지도자"라며 "'종전선언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전쟁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망발을 해서 국민 지탄을 받은 바 있는데 선제공격을 해서 전쟁술에 의한 평화를 거론하고 있다"면서 발언 취소를 요구했다. 김용민 최고위원도 "전쟁광도 아니고 이게 무슨 망언이냐"며 "멸공 주장을 하더니 이제는 멸국(滅國)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몰아세웠다. 이재명 대선후보도 12일 "선제타격 운운하며 전쟁위기를 조장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윤 후보를 비난했다.

그러나 이 후보가 "킬체인은 대량살상무기나 핵 공격이 명백하고 임박했을 때 표적을 타격하는 것이지, 무기시험이나 발사체 시험 등의 상황에서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근거를 대면서 야당으로부터 "거짓말"이란 빈축을 샀다. 윤 후보가 애초 북한군이 극초음속 미사일에 핵을 탑재해 발사하는 상황을 가정해 '조짐이 보일 때 킬체인 선제타격'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난 2017년 대선에서 "북핵 대응을 위한 핵심 전력인 킬체인, 한국형미사일방어 체제를 조기에 구축하겠다"고 공약한 문 대통령도 '전쟁광' 반열에 오를 수 있나. 시험발사 수준의 도발에 대북 선제공격을 주장한 사람이 없는데 전쟁위기부터 앞세워 자국민을 '대리 위협'하는 듯한 논리는 누구를 위해 등장한 건지 의문이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한기호의 정치박박] 집권당의 자국기업 불매운동, 누구를 위한건가
더불어민주당 현근택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 트위터, 진성준 의원 페이스북, 김용민 최고위원 페이스북 게시물 갈무리.

[한기호의 정치박박] 집권당의 자국기업 불매운동, 누구를 위한건가
지난 12일 이재명(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안보영입인사를 발표한 뒤 북한의 최근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에 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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