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가 위탁 생산한 모더나사의 코로나19 백신이 이번 주 국내에 처음 공급되는 것과 관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를 진두지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향후 경영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이 부회장은 지난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1주기 흉상 제막식 당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가자"고 말한 바 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 8월 가석방 이후 가장 먼저 모더나 백신 생산 계획부터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삼바는 모더나와 협력해 생산할 수 있는 기틀은 갖췄지만, 인허가 문제 등 여러 난관에 직면해있었다. 특히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을 처음 생산하는 삼바로서는 안정적인 대량 생산이라는 목표 자체가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이에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와 삼바,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삼성 최고 경영진으로 이뤄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힘을 실어줬다. 삼성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코로나19 이후의 미래준비를 통해 바이오 사업을 '제2의 반도체 신화' 창출로 이어가겠다는 비전을 밝히면서 바이오 경영진과 임직원에게 책임감과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고 전했다.
이후 TF는 생산 공급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체크 리스트를 작성, 점검하고 매일 컨퍼런스콜을 실시했다. 주말은 물론 추석 연휴에도 관련 회의가 계속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TF는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인허가 문제 해결, 생산능력 강화 등 곧바로 실행에 나섰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스마트 공장팀은 생산 초기 낮았던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을 끌어올렸고, 까다로운 이물질 검사 과정에는 관련 노하우를 확보한 삼성전자 반도체 및 관계사 전문가들을 투입했다.
이 부회장은 모더나와의 신뢰 구축에도 공을 들였다. 이 부회장은 오랜 지인이 모더나와 거래관계에 있는 것을 알고, 그를 통해 모더나 최고 경영진을 소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과 모더나 최고 경영진은 지난 8월 화상회의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성공적인 백신 생산을 통해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중장기적으로 바이오산업 전반으로 협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재계에서는 이처럼 이 부회장과 사장단, TF, 생산 현장으로 이어지는 '모더나 백신 생산 협업 체제'가 가동된 뒤 두 달 만에 삼바가 생산하는 모더나 백신의 국내 공급 일정은 당초 연말에서 10월로 앞당겨졌고, 동시에 안정적인 대량 생산 체제도 갖출 수 있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새로운 삼성으로의 도약 의지를 밝힘에 따라 그동안 물밑 행보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대외 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다음달 초로 예상되는 미국 출장 일정에서 현지 반도체 공장 투자계획 확정과 함께, 반도체 공급망 정보 요구 등에 대한 활로를 뚫어줄 수 있을지에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9월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핵심 공정인 EUV(극자외선)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