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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정치박박] 역선택보다 한심한 건 상식 역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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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 꼬집더니 역선택 혈투서 아노미 상태
與지지층 野주자 선택 설문 시 전략투표 뚜렷
구조적 역선택 결과로 대표성·경쟁력 장담하나
선관위 권한 부정에 역선택 우려 말 뒤집기 눈살
尹측까지 오락가락…당원 표 가치 담보하겠나
[한기호의 정치박박] 역선택보다 한심한 건 상식 역주행
지난 8월25일 국민의힘 제20대 대선 예비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과 홍준표 의원이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 약속 비전 발표회에서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이 제20대 경선 여론조사에 관한 '역선택 방지'를 둘러싸고 볼썽사나운 모습만 노출했다. 여권 골수 지지층에게 자당 대선후보 선출 지분을 맡겨선 안 된다는 주장과, 이를 중도·확장성 포기 내지 부정으로 규정하고 막아서는 쪽이 내내 대립했다. 역선택 방지 문항이 결국 도입 되냐 아니냐를 떠나, 제1야당이 상식을 뒤로 하고 '아노미 상태'에 가까워지는 광경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른바 '조국경(經)'을 대여(對與) 비판 잣대로 삼으며 외쳐온 '내로남불' 구호는 이들에게 벌써 대선을 앞둔 1호 폐기 대상으로 전락한 듯하다.

역선택 논쟁에서 눈에 뻔히 보이는 것까지 부정하는 행태들은 '지록위마(指鹿爲馬)'부터 떠올리게 한다.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를 묻는 정례여론조사(KSOI, NBS 등) 중 여야 주자 전체에서 1명을 꼽게 하는 일명 '다자대결' 설문과, '범진보·범보수(또는 범여권·범야권) 대선후보군 선호도' 설문을 병행하는 사례들을 들여다 보면 역선택 징후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데도 부정하는 것이다.

여야 다자대결에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여권 유력주자와 선두를 다투며 다른 야권주자들과는 n배수 지지율 격차를 보이지만, 범보수권 후보군만 선택할 수 있게 한 설문에선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이 2·3위권에서 약진하는 패턴이 나타난다. 홍 의원은 범보수 후보군 선호도에서 20%대로 치고 올라가 윤 전 총장을 오차범위 내로 따라잡았다는 여론조사도 속속들이 발표되고 있다. 지난 7~8월 두 주자가 '윤석열 때리기' 빈도를 늘리면서 뚜렷해진 추세다.

다만 다자대결과 특정 진영 후보군 조사를 놓고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국민의힘 지지층 응답 성향을 보면 윤 전 총장 지지율이 일관되게 과반을 넘나들며 선두를 달린다. 또한 범보수권 후보만 고르게 하면 더불어민주당·열린민주당 등 여권 지지층은 2·3위 주자에게 두자릿수 지지율 몰표를 주는 정황이 뚜렷하다. 동일한 응답자 표본에 설문했을 때 '적합후보 없음, 모름/무응답'과 같은 '선택 포기' 성향이 범진보보다 범보수 후보군 설문 시 '적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여권 지지층의 전략적인 투표 참여 성향이 야권 지지층보다 높은 가운데, '구조적인 역선택'이 유도되는 경향이 짙다. 본선에서 받을 가능성이 희박한 표가 경선에 적잖게 개입하는 격이다. 그럼에도 일부 캠프는 범보수 후보군 선호도 강세만을 앞세워 여야 다자대결·양자대결 쪽이 가늠하기 용이한 본선 경쟁력을 장담한다. 이들은 핵심인 '지지정당별' 응답만 빼놓고 특정 지역이나 연령대별 강세, 추격세를 부각하기도 한다. 역선택이 아니라 '교차투표' 개념이란 주장 역시 있으나, 단 1표를 쥐고 특정 정당 후보 1명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할 대선에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

뻔히 드러난 당헌 규정 외면과 이중잣대도 희한한 광경이다. 국민의힘 경선 관련 당헌 69조 3항에는 "여론조사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정한 일정과 방법에 따라 실시한다"는 문구가 있다. 그런데도 유승민·홍준표 등 주자들은 경준위(경선준비위원회)에서 만든 안(案)을 "토씨 하나도 고치지 말라"고 선관위에 으름장을 놓고 임명 일주일도 안 된 정홍원 위원장 사퇴를 압박해왔다.

정 위원장에게 역선택 방지 문항 도입 가능성을 거론하며 '윤석열 편들기'라고 규정했지만, 이들이 거론한 증거는 지난달 5일 입당 일주일도 안 된 윤 전 총장이 정홍원 전 국무총리 사무실을 예방했다고 윤석열 캠프가 스스로 알린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윤 전 총장과 갈등관계인 이준석 당대표를 옹위하던 서병수 위원장의 경준위에서, 원희룡 전 제주지사 말대로면 주자들 의견 수렴 없는 언론 발표로 밀어 붙여 온 경선 룰을 이들이 금과옥조로 삼는 것도 '선관위 때리기' 잣대와 대조하면 부자연스럽다.

국민의힘 당헌에는 역선택 방지를 위한 보칙 99조(여론조사 특례)도 있다.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둔 홍준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체제에서 신설했다. 99조 1항은 "당이 실시하는 각종 여론조사에 있어 여론조사 대상을 국민의힘 지지자와 지지정당이 없는 자로 제한할 수 있다"고, 2항은 "제1항의 여론조사를 시행함에 있어 구체적인 방법은 당규로 정한다"고 규정한다.

홍 당시 대표는 "민주당과 정의당 지지층 사람들한테 우리 당 후보를 뽑는 투표권을 줄 수 없다"며 "어차피 본선에서 우리를 안 찍을 사람이 역선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한국당·무당층 상대로만 여론조사를 한다"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은 지난 2017년초 바른정당 19대 대선 경선을 앞두고 오픈프라이머리 방식을 닮은 '국민정책평가단' 문자투표에 대해 당시 캠프 관계자가 '역선택 방지' 필요성을 거론한 바 있다. 대통령 탄핵 찬성에 반감을 품은 친박(親박근혜) 세력의 조직적인 개입을 우려한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역선택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걸 알면서도 이번 대선에서만큼은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반대 입장인 윤석열 캠프도 오락 가락한다. 지난 5월26일자 유튜브 방송에서 한 데 모여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 관련 '당원 중심'의 선택을 비판하던 인물들이 캠프 중책으로 합류해 있다. 한명은 전국 책임당원 분포 그대로 지역별·연령별 가중치를 주는 방안에 '호남·2030 소외'라고 주장했고, 다른 한명은 "역선택 방지 조항으로 민심 물을 때 국민의힘 지지자나 무당층 지지자로만 뽑는 건 여론조사의 '여'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했었다.

후자는 최근 '역선택 방지 필요'로 입장을 바꿨다면서 4·7 보궐선거를 거론, "숫자·데이터가 달라지면 당연히 분석과 판단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변을 했다. 역선택 방지에 관한 일관된 기준을 찾을 수 있는 건 최재형·황교안 캠프 정도일 것이다.한편 한기호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2일 당 의원 워크숍에서 6·11 전대 이후 8월말까지 신규 입당이 13만3800명, 이 중 84%(11만2600명)가 당비 납부를 약정했다며 당세 확장을 자평했다. 신규 입당자 중 적어도 11만여명은 당원으로서 대선 경선 투표권을 갖게 될 전망이다. 다만 1·2차 컷오프(예비경선)부터 여론조사 100%·70%로 치르고, 최종 경선에도 당원투표 50%만 반영하는 게 국민의힘의 방식이다. 단순 여론조사 대신 선거인단모집으로 자연스레 적극 참여층만 끌어모은 여당과는 상반된다. 이 와중 역선택 방지를 방지하겠다며 총력전을 벌이는 주자들 목소리가 가장 크다. 신규 당원들이 추후 1표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는다고 느끼게 될지 의문이다. 정당이 정당답지 않을 때 유권자들에겐 2016년 20대 총선 때와 같이 투표 자체를 포기하는 선택권이 있다는 것도 상기 시키고 싶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한기호의 정치박박] 역선택보다 한심한 건 상식 역주행
지난 8월25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국민 약속 비전 발표회에 대선주자인 윤석열(왼쪽)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이 참석해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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