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칼럼] `김치`를 `신치`라고 바꿔서는 안 된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108/2021080602102269660001[1].jpg "[이덕환 칼럼] `김치`를 `신치`라고 바꿔서는 안 된다")
문체부가 개정했다는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은 우리말에 대한 훈령이다.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중국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말에 대한 훈령으로 중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중국어를 어쩔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중국어 규정은 중국 사회과학원과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결정한다.
물론 우리 정부가 중국에 수출하는 김치 제품의 표기를 통일하겠다고 노력할 수는 있다. 순대와 선지를 'sundae'와 'seonji'로 표기하라는 지침도 그런 경우다. 그런데 영어사전에서 'sundae'는 오래 전부터 전혀 다른 식품을 뜻하는 용도로 써왔다. 우리 순대를 아이스크림과 혼동하는 소비자들이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기·김'을 소리 낼 수 없는 중국인들에게 '신치'가 최선의 대안이라는 주장은 황당한 억지다. 중국인들이 '신치'를 '맵고 신기한 김치'로 이해할 가능성은 없다. 신치는 우리에게도 거북스럽다. '매운 맛'을 김치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도 없고, 김치가 '신기(神奇)한 음식'이라고 우겨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김치가 '맵고 신기하다'는 주장이 오히려 모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자랑스러운 전통식품인 '김치'를 정체불명의 '신치'로 전락시켜서는 절대 안 된다.
우리의 '김치'가 자신들의 '파오차이'(泡菜)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중국의 억지는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김치를 신치로 바꾼다고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김치와 파오차이의 역사 논쟁도 무의미하다. 김치의 역사성을 증명할 방법도 없고, 중국이 그런 주장을 믿어줄 가능성도 없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가 먹는 김치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김치가 중국의 파오차이와 어떻게 다른지를 확실하게 확인시켜줘야 한다.
사실 배추·무 등의 야채를 식초나 소금에 절인 음식은 김치나 파오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피클', 독일의 '사워크라우트', 영국의 '피카릴리', 발칸·중동의 '토르쉬', 일본의 '아사즈케·츠케모노'가 모두 그런 음식이다. 슬라브의 전통 음식에도 화려한 채소 절임이 넘쳐난다. 김치를 포함한 전 세계의 모든 채소 절임이 중국의 파오차이에서 유래된 것일 수는 없다. 중국의 유치한 문화적 우월주의 때문에 우리의 김치를 신치로 바꿔 불러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김치는 농산물인 채소·양념을 수산물인 젓갈과 어우러지게 만들어 저온에서 유산균으로 발효시킨 정말 독특하고 고유한 우리 음식이다. 단순한 식초 절임에 가까운 파오차이를 포함한 다른 나라의 채소 절임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정말 독특하고 고유한 특색이다.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도록 땅에 묻은 독에 넣어 저장하는 것도 유별나다. 추운 날씨 때문에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철의 '김장'이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분명한 자랑이다. 이런 사실을 전 세계의 소비자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이 농축식품부가 해야 할 일이다.
중국의 식품안전국가표준(GB)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 필요하다. GB는 우리 식약처가 고시하는 '식품공전'과 마찬가지로 가공식품에 적용하는 분류표일 뿐이다. 우리의 김치를 GB에서 '파오차이'로 분류한다고 불평할 이유는 없다. 우리도 요구르트를 '발효유'라고 표기하고, 피자를 '빵'으로 표기하도록 요구한다.
중국 소비자들에게 김치를 한국의 전통식품으로 인식시키는 일은 기업의 몫이다. 경직된 관료주의는 중국 소비자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뿐이다. 물론 정치적으로 불순한 중국의 동북공정에는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어쨌든 김치를 신치로 바꾸자는 주장은 관료들의 패배적이고 부끄러운 발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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