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한기호의 정치박박] "X파일 찢었다"… 육하원칙 빠진 검증론 피로감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한기호의 정치박박] "X파일 찢었다"… 육하원칙 빠진 검증론 피로감
지난 6월19일부터 이른바 '윤석열 X파일' 문건을 입수했다고 폭로한 장성철(왼쪽)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 지난 5월26일 "윤석열의 수많은, 윤우진 등 사건에 대한 파일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고 발언했다가 약 한달 만에 "X파일은 없"고 부인한 송영길(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 <각 인물 페이스북 캡처>


정치권에 이른바 '윤석열 X파일'을 입수했다는 폭로가 한 주 간 정국을 달궜지만, 어떤 의혹이 검증 대상인지조차 불분명한 채 피로감만 양산한 형국이다. 보수야당 출신의 평론가가 X파일을 손에 쥐고 있다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낙마 가능성부터 거론하더니 논란 닷새째 돌연 '셀프 파쇄' 선언을 했다. 지난달 말 윤 전 총장에 관한 "파일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던 집권여당 대표는 비슷한 시기 "X파일은 없다"고 발을 뺐다.

X파일의 실체나 출처조차 불분명해 여야가 서로 '폭탄 돌리기'를 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대권주자를 향한 검증이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고 불가피하다. 이미 숱한 문건이 X파일 후보(?)로 거론되는 만큼 'Y파일, Z파일' 시비가 뒤따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논란처럼 육하원칙이 결여 된 '냄새'만 피우는 방식이 반복 된다면 책임지지 않는 구태 정치의 연장이고 국민 여론에 짜증만 유발할 뿐이다.

무책임 정치의 주범으로 X파일 폭로자인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난 19일 공개 SNS로 문서화한 파일을 입수했다며 윤 전 총장에 대해 "국민의 선택을 받기 힘들겠다" "방어하기 어렵겠다" "일찍 포기하는 게 낫다" 등 단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오랫동안 보좌한 데다, 4·7 재보궐선거 국면에서 국민의힘 비전전략실 위원 활동을 했던 야권 출신 인사가 '윤석열 불가론'을 펴니 순식간에 이목이 집중됐다.

20일부터는 국민의힘 인사들로부터 융단폭격이 쏟아졌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아군 진영에 수류탄을 터뜨린 격으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보수진영 내에서 활동을 시작한 '제2의 김대업'으로, 장제원 국회의원은 '민주당 세작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빗대며 장 소장을 질타했다. 이들은 어쨌든 X파일이 공개될 경우를 대비해 윤 전 총장이 직접 해명할 의무를 상기 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장 소장의 이후 대응이 예상 밖, 상식 밖이었다. 그는 20일 장 의원이 "X파일의 입수 경위와 내용을 윤 전 총장 측에 전달해 앞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자행할 네거티브 공세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올바른 처신"이라고 지적한 데 대해, SNS로 "(당원도 아닌데) 문건을 입수했으면 전달해서 대비하라니 제 정신인지 의심스럽다. 저는 정치 브로커가 아니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장 소장은 21일 OBS 방송에서 자신이 X파일을 국민의힘 지도부에 사전 전달하려 했었다는 새로운 주장을 폈다. 이준석 당대표에게 '문건을 전달해 줄테니 당에서 검토한 뒤 대응하라'고 전하려 전화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고 '콜백'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튿날인 22일 CBS라디오에선 이 대표에게 연락을 시도한 시점을 "토요일날(19일) 오전 10시"로 특정하며 "(이 대표가) 전화를 안 받아서 그냥 제가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라고 구체화하기도 했다. 추가 폭로 과정에서 말이 바뀌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대외적으로 X파일 공개를 촉구하던 이 대표는 "저와 연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달된 것도 없다"고 일축했다.
장 소장은 21일~23일 방송 출연 과정에선 X파일 관련 정황 진술을 늘려갔다. 4월말과 6월 초 각각 만들어진 두 종류가 있고, 하나는 총 20페이지 분량에 의혹이 20 가지에 달하며 다른 하나는 윤 전 총장·부인·장모 관련 3개 챕터로 나뉘었다는 것이다. "본인(윤 전 총장)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자금의 흐름, 액수 등도 담겨 있어 '기관이 개입한 것 아닌가'"라는 추측도 했다. 이는 윤 전 총장이 "공기관과 집권당이 개입했다면 명백한 불법사찰"이라고 발끈하게 만든 대목이다.

장 소장은 "평소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윤미향 의원 의혹을 비판했는데 X파일 의혹의 강도가 더 심각하다"거나 각 문건의 출처를 '정부기관, 여권발(發)'로 지목했으나 진위나 과장 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그가 국민의힘 지도부와 윤 전 총장 측에 '넘겨줄 테니 공개해보라'는 큰소리까지 쳤지만, X파일 실물 공개를 끝내 거부했기 때문이다. 22일 YTN 방송에 출연해 "제가 처음부터 (X파일을)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고 실토하더니, 23일 SBS 방송에선 "집에 가면 바로 파쇄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24일 연합뉴스TV에는 "(문건을) 손으로 찢어버렸다"고 밝혔다. X파일이 윤 전 총장에게 큰 타격이 될 것으로 '기대'하던 쪽이든, '우려'하던 쪽이든 막장 폭로극 하나가 막을 내린 셈이다.

현재 정치권에선 장 소장이 확보한 것과 동일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문건을 접한 여야 출신 인사들이 "지라시 수준"이라고 혹평하는가 하면, 윤 전 총장 처가에 관한 '대용량 문서파일' 등이 거론되면서 X파일 의혹이 초점을 잃고 확산 되는 중이다. 또 다른 6페이지짜리 PDF파일은 한 친여(親與) 유튜브 채널에서 작성한 것으로 드러나고, 해당 매체는 '취재내용을 정리한 방송용 대본에 불과하다'는 입장으로 공작 의혹을 부인 중이다. 이 와중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23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저에게) X파일은 없다"며 "(지난 2019년) 검찰총장 인사 검증 과정에서 야당 내부에서 여러 가지 자료를 정리했을 것"이라고 문건 생산 의혹을 야당으로 돌렸다. 이 대표는 이를 "음모론"으로 지적하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상대 당이나 세력을 지목할 땐 최소한 육하원칙에 맞아야 한다"고 응수했다. 이 '진흙탕'과 제1야당 입당 압박이 고조된 가운데서도 윤 전 총장은 오는 29일 대권 도전 선언을 예고하고 독자적인 스케줄을 이어갈 태세다. 때맞춰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제3지대에서 제1야당 대선후보와 야권단일화를 시도하는 방향을 "정도(正道)"라고 표현하며 "(X파일 논란은) 본인이 자신 있으면 크게 신경쓸 필요 없다. 무시하고 지나가면 된다. 결국 국민이 판단할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입당 여부야 어쨌든, 윤 전 총장이 다가올 검증론을 감당하고 국민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는 온전히 본인 처신에 달렸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