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인구대국의 `인구걱정`… 14억 붕괴 초읽기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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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인구대국의 `인구걱정`… 14억 붕괴 초읽기
박영서 논설위원

중국은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하지만 옛날부터 인구가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춘추시대(기원전 770~403년) 인구는 50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산출 근거는 전차 보유 대수다. 이 시대 전쟁터의 주역은 전차였다. 전차에는 대부(大夫) 이상만 탈 수 있었다. 전차 한 대에 부수되는 보병의 수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각국의 전차 수를 보면 그 나라의 보유 병력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당시의 징병률이 통상적으로 국민 5명 중 1명이란 점을 토대로 계산을 해보면 약 500만명 인구가 산출된다.

전국시대(기원전 403~221년) 인구는 2000만명 설이 유력하다. 사기(史記) 등의 역사책에 기술되어 있는 각국의 병력에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징집된다'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대략 총 인구가 나온다. 예를 들면 초나라는 병력이 100만명이므로 인구는 500만명이 되는 것이다.

전한(前漢) 말기에는 인구는 6000만명 정도로 늘어난다. 이때부터 호적이 만들어지기 시작해 이전보다 정확하게 인구를 측정할 수 있게 됐다. 후한(後漢)말에서 삼국시대까지는 전쟁이 빈발해 인구가 급감했다가 진(晋)·남북조(南北朝)를 거쳐 수·당(隋·唐)에 이르러서는 다시 5000만명 이상으로 회복됐다. 5대 10국 시기에 전란으로 다시 감소했다가 송(宋)나라 때 7600만명으로 늘어났다. 원(元)나라가 들어서면서 줄었다가 명(明)나라가 건국되면서 다시 6000만명으로 증가했다.

중국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한 때는 청나라 시대인 17세기 이후 부터다. 영토 확장과 벼농사 기술의 보급에 따른 것이었다. 특히 18세기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강희제(康熙帝)에서 건륭제(乾隆帝)까지 약 130여년 간 '강건성세'(康乾盛世)로 불렸던 기간에 인구는 3억명에 육박했다. 청나라 말기 도광제(道光帝) 시기엔 4억명을 넘어섰다.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인구대국의 `인구걱정`… 14억 붕괴 초읽기
1949년 신중국이 성립됐을 때 인구는 5억4000만명이었다. 공산당 정부는 인구 증가를 장려했다. 인구가 국력과 비례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마오쩌둥(毛澤東)은 사람이 많을수록 노동력이 늘어 경제가 성장한다고 보고 국민들에게 자녀를 많이 낳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은 인구가 급증하면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 이에 중국 정부는 1973년부터 계획출산 정책, 1979년부터 한 자녀 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두 명 이상의 아이를 둔 경우에는 벌금이나 자녀 취학, 의료면에서 벌칙을 부과했다. 그 결과 출산율은 3% 이상에서 2% 이하로 급강하했다.

하지만 상당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한 자녀 낳기 정책의 결과로 이른바 '샤오황디'(小皇帝)로 불리는 아이들이 우후죽순 나타났다. '샤오황디'는 부모가 지나치게 떠받들어 키워 이기적이고 버릇이 없는 아이를 말한다. 남녀 성비 균형이 깨지고 고령화 사회도 심화됐다. 한 자녀 정책은 2016년까지 지속됐다. 하지만 중국의 가족계획법은 여전히 세 자녀 이상 출산하는 가정에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근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해 11월 1일 기준 중국 본토 인구가 14억1178만명이라고 밝혔다. 7차 인구조사 결과다. 2000~2020년 매년 평균 0.53%씩 인구가 늘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부터 인구 감소가 본격화돼 14억 인구선이 무너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도 중국 인구는 서구 모든 나라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이에 따라 올 가을 열리는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에서 출산제한 정책이 완전히 철폐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중국도 저출산을 두려워한다. 인구대국의 '인구걱정'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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