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삼성을 세계 1류의 반석에 올린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하면서 '포스트 이건희' 시대가 열렸다. 2014년 이후 6년 간 사실상 삼성을 진두지휘해 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제 반도체와 스마트폰에 이은 4대 신사업(인공지능(AI), 5G, 바이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전장부품), 그리고 비메모리 세계 1위라는 업적을 이루기 위해 전자 계열을 중심으로 한 '초격차' 경영에 한층 속도를 낼 전망이다.
1968년생인 이 부회장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 대학 경영대학원(MBA)를 거쳐 미국 하버드 대학 비즈니스스쿨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한 뒤 2010년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에 올랐고 2012년 삼성전자 부회장에 취임했다.
이 부회장은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사실상 삼성을 이끌어 왔고, 2018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지정으로 공식적인 총수로 인정 받았다.
이 부회장 체제에 이르러 '뉴삼성'의 면모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5년 방산·화학 계열사를 매각한 데 이어 다음해에는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약 9조원에 인수하면서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한 '선택과 집중' 행보를 보였다.
이전까지 삼성은 인수·합병(M&A)보다는 창업을 선호했고, 외부 인사를 받아들이는데 상대적으로 인색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인공지능(AI)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승현준(세바스찬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삼성리서치 소장으로 영입하는 등 능력 있는 외부 인재들의 영입도 주저함이 없었다.
이어 2018년에는 180조원 규모의 투자와 4대 미래 성장사업 육성 계획을 발표했고, 지난해에는 133조원 규모의 투자계획과 함께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달성이라는 원대한 포부도 내놓았다.
창립 50주년이었던 지난해에는 "미래 세대에 물려줄 100년 기업을 만들기 위해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자"며 지속가능한 상생 기업으로의 변화를 강조했다. 지난 6월에는 노조 문제 등에 대해 직접 사과하며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파격적인 약속을 하는 등 조직 혁신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온화한 성격과 소통 능력, 화려한 글로벌 인맥을 바탕으로 조직의 창의성을 높이고, 동시에 적극적인 총수 경영으로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직접 앞장설 것으로 보고 있다. 전자를 중심으로 조직 혁신에 가속도를 붙이며, 동시에 글로벌 스탠더드 경영 시스템 구축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일각에서는 일부 계열 분리 가능성도 점쳐진다. 과거 이병철 창업주는 삼남인 이 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면서도 장남인 고(故) 이맹희 회장에겐 CJ제일제당, 차남인 고 이창희 회장에겐 새한미디어, 장녀인 이인희 고문에겐 한솔그룹, 오녀인 이명희 회장에겐 신세계그룹을 물려준 바 있다.
그러나 당분간 큰 틀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경영체제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좀 더 유력하다. 수조원 또는 10조원이 넘는 상속세 문제를 비롯해 지배구조 문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어 사실상 계열분리가 어렵다.
여기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에 대한 경영권 승계 의혹, 국정농단 사건 관련 파기환송심 등 여러 사법리스크에 매여 있는 점도 변수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2010년 16라인 반도체 기공식에 참석한 이건희(왼쪽 두번째) 삼성전자 회장이 이재용(왼쪽 네번째, 당시 사장) 부회장과 함께 시삽을 하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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