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중소기업·소상공인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전기요금에서 일부를 떼어 거두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이 이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매출 부진으로 산업계가 고사 위기에 몰렸는데 매달 부담해야 하는 전력기금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전력기금이 정부의 '쌈짓돈'으로 전락했다며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나왔다.
대구·경북지역의 한 금형 제조업 관계자는 13일 "공정 자체가 전기사용량이 많은 데다 열을 식혀줘야 해 에어컨도 장시간 돌리다 보니 매달 전기요금을 수백만원씩 내고 있다"며 "코로나19로 매출이 절반 이상 줄었는데도 전기요금은 전기요금대로 나가고 전력기금까지 수십만원씩 내야 해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제조업 대상으로 실시한 '2019년도 중소제조업 에너지비용 부담 현황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해 94%의 중소기업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18%는 전기요금 부담 완화를 위해 '중소제조업 대상 전력기금 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욱조 중기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정부가) 전력기금 부담금을 현재 창업 제조업에 한해 면제해주고 있는데, 이를 한시적으로 중소제조업 전체로 확대해 코로나19로 인한 중소기업 부담을 경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력기금은 매월 국민·기업이 내는 전기요금에서 정부가 3.7%씩 추가로 걷어 적립하는 돈이다.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하면서 공익목적으로 설립됐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집행한 전력기금은 총 2조354억원 규모다. 2018년 기준 전력기금 재원은 4조1848억원 수준으로, 2009년(2442억원) 대비 15배 넘게 증가했다. 올해 현재까지 5조원 가까이 적립된 것으로 추산되는 전력기금은 2029년이면 10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계 부담을 감수하면서 거둬들이는 돈이지만, 정작 엉뚱한 곳에 쓰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집행한 전력기금 50%에 가까운 9919억원이 태양광 사업 등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신산업 활성화'에 쓰였다. 애초 도입목적이었던 농어촌 전기공급 등 '에너지공급 체계구축' 사업 관련 지출은 2015년 5770억원에서 올해 3124억원으로 줄었다. 정부는 2022년 3월 개교 예정인 한전공대 설립 재원으로 전력기금을 가져다 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여유자금이 많다면 목적과 다른 곳에 쓸 게 아니라 전기료 요율을 낮추거나 기금을 폐지해 전기 사용자 부담을 덜어주는 게 맞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구자근 의원은 "노르웨이처럼 기금을 폐지해 준조세 하나를 줄이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합리적 기금 운영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공청회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전력기금 폐지·축소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어기구 민주당 의원은 20대 국회 국정감사 때 전력기금 개혁을 주장했다. 은진기자 jineun@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