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컨설팅, 신뢰·인적 자원이 경쟁력… 오너경영 선택 아닌 운명"

첨단기술 총동원 '포스코 생산관제' 경험… 앤더슨·삼성SDS 현장서 큰도움
한가지 일에 끝을 보는 성격… 초기 자금난·사업 부진 7년간 롤러코스터
공공사업 갈수록 척박 수익낮고 리스크 높아… 대기업 배제해도 힘들더라
정부예산으론 한계… 민간서 개발 국가가 구매하는 방식 더 확산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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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컨설팅, 신뢰·인적 자원이 경쟁력… 오너경영 선택 아닌 운명"
조미리애 브이티더블유 대표


D파이오니어를 만나다

⑦ 조미리애 브이티더블유 대표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 AI·데이터센터, 국세청 빅데이터 시스템….

정부가 최소 수십년 간 이어 온 사회복지, 도시운영, 국세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인 IT 프로젝트다. 규모와 의미가 큰 만큼 사업에 대한 IT업계의 관심도 뜨거웠다. 그런데 이들 사업 모두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이 있다.

2000년 설립돼 20년을 맞은 IT컨설팅 기업 브이티더블유다. 한·프랑스 합작기업 밸텍컨설팅코리아로 시작한 이 회사는 2013년 당시 CEO이던 조미리애 대표가 대부분의 지분을 흡수하며 브이티더블유로 사명을 바꾸고 오너경영 체제를 이어왔다. 회사는 500여 개 IT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정부·공공시장 IT컨설팅 1위 기업으로 자리를 굳혔다. 130여 명의 컨설턴트와 엔지니어를 보유하고, 작년 약 19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서울 남산 자락 사무실에서 두 차례 만난 조미리애 대표는 작은 키에 단아한 외모지만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새로운 것에 뛰어들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덕분에 38년째 온갖 첨단 프로젝트를 경험한 그는 오너 경영인이 된 것은 선택이라기보단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2013년 이후의 삶은 한 마디로 '롤러코스터'였다고 정의하는 조 대표는 "운명은 예기치 않게 주어지지만 운명의 경영은 내가 하는 것"이라면서 "전자정부에서 만들어낸 역사를 데이터혁신 시대에도 이어가고, 성장의 열매를 공정하게 나누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대담 =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중요 공공 IT사업에서 활약 중인데 비결이 뭔가.

"IT프로젝트는 이유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제도나 법, 업무혁신이 시도되면 반드시 뒷받침하는 IT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난 38년간 IT컨설팅을 하면서, 정책이나 제도 설계단계부터 담당 공무원들과 머리를 맞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 왔다.

법 조항이나 세부 정책이 만들어지지 않아도 제도 시행 시점이 못 박히면, IT시스템을 함께 설계해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지원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업무 전문성과 기술, 경험이 모두 뒷받침돼야 한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발주기관 담당자들과 일종의 전우애가 생기기도 한다. 20년간 쌓아온 신뢰와 탄탄한 인적 자원이 핵심 경쟁력이다."

-의도치 않게 오너 경영인이 됐다고 했는데, IT업계에 뛰어든 것은 선택이었나.

"타고나길 적극적이고 새로운 것을 해보길 좋아했다. 한가지 일에 매달려서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기질에 IT가 맞았다. 1983년 숙명여대 수학과를 졸업했는데, 당시 컴퓨터라는 신문명이 열리고 있었다.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겠다는 꿈 하나로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시스템공학센터에서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컴퓨터 입력은 종이에 구멍이 뚫린 펀치카드로 하고, 출력은 프린트 용지에 하던 시절이었다.

이후 국토개발연구원에 들어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도로·철도의 수요를 예측하고 노선을 설계하는 일을 했다. 당시 연구결과가 중앙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남산터널 통행료 신설, 서울외곽순환도로 건설로 이어졌다. 그러다 컴퓨터가 메인인 조직에서 일하고 싶어서 제조IT 컨설팅 기업 애트워스로 자리를 옮겼다."

-애트워스에서 운명적인 포스코 프로젝트를 경험했는데.

"85년 애트워스 대표가 박태준 포스코 회장 앞에서 첨단 생산관제시스템 구축방안을 제안해 그 자리에서 200억원 넘는 당대 최대 프로젝트가 결정됐다.

제조현장 곳곳에서 생산정보를 수집해 설비에 작업지시를 내리고, 설비 운영상황을 실시간 파악해 생산계획을 조정하는, 포스코의 심장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철광석이 고로에서 쇳물이 되고 제연, 압연을 거쳐 강이 만들어지는 전체 공정이 대상이었다. 당시 최고 사양의 컴퓨터, 그래픽 인터페이스 대형 상황판, 생산관제센터 등 지금 돌아봐도 첨단 기술이 총동원됐다. 사업에 참여하고 싶어 애트워스로 이직한 후 포항에서 1989년까지 4년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는 기술을 이용해 요즘 말하는 스마트팩토리를 구현한 거다. 센서 대신 사람이 PC에 생산현장 상황을 입력해 중앙으로 모아 상황판에 표출했다. 포스코는 이 시스템을 이용해 주문에 따라 생산설비를 맞춤 가동하는 실시간 생산관제를 도입했다. 종이와 손으로 하던 일이 시스템화됐다. 이론으로 되는 것과 현장에서 작동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실패가 이어졌지만 결국 시스템을 완성했다.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것에 가까웠다. 당시 최고 사양 서버인 'DEC 백스'를 도입했는데 주메모리를 16메가바이트(MB)에서 32메가바이트로 증설하는 게 뜨거운 이슈였다."

-그야말로 '회장 프로젝트'였는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컸을 것 같다.

"그보다는 온갖 첨단기술을 다 시도해 보는 재미가 컸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즐거웠다. 당시 애트워스에서만 40명이 현장에 투입되고 포스코 IT조직도 다 참여했다. 20대 후반이었는데, 일 아니면 술자리로 밤 새는 날이 이어지니 프로젝트 종료 무렵엔 간이 나빠질 정도였다.

88년 시스템 오픈을 앞두고는 당시 서슬이 퍼렇던 박 회장 앞에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안 할까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정상 개통되고 그게 바탕이 돼서 포스코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관리시스템을 발전시켜 왔다.

그 경험이 큰 행운이자 자산이 됐다. 진짜 시스템이 뭔지 배운 것이다. 그 경험 덕분에 글로벌 최대 SI회사로 꼽히던 앤더슨컨설팅(현 액센츄어)에 스카우트돼 체계화된 IT 방법론과 이론을 익혔다."

-앤더슨에서 익힌 이론적 틀이 삼성SDS의 프로젝트 현장에서도 도움이 됐나.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부르짖던 93년 삼성SDS 컨설팅조직에 합류했다. 저런 모토라면 직접 참여해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는 전자정부 개념이 태동하던 시기다. 행정전산망을 통해 주민등록이 전산화되고, 등기, 국세,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 공공정보화 사업이 잇따라 추진됐다. 프로젝트 현장경험과 이론을 겸비하니 삼성에서 컨설팅, 제안, 실행, 교육 등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활동했다. 앤더슨컨설팅 근무 당시 국내 5호 여성 정보처리기술사 자격을 딴 게 도움이 됐다. 2~3번 재수가 보통인데, 2달 준비하고 바로 합격했다."

-삼성SDS 고유 IT 프로젝트 방법론 개발을 이끌었는데.

"98년 남궁석 당시 삼성SDS 대표가 우리 토양에 맞는 IT방법론을 개발하자며 '엔테베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TF팀장을 맡아 6개월간 과제를 이끌었다. 당시 대형 사업을 수행·관리하기 위한 표준과 절차가 시급했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외국계 방법론을 수정해 썼는데 제도와 정서가 다르다 보니 우리에게 맞는 방법론이 필요했다.

20여 명의 TF 팀원들이 서울대 연구동에서 방법론을 개발하고, 현장에서도 300명이 의견수렴과 적용을 맡았다. 패키지 개발, SI 개발, ERP(전사적자원관리) 적용, 컨설팅, 유지보수 등 10여 개 유형에 맞는 '이노베이터' 방법론을 완성했다. 웹에서 방법론뿐 아니라 관련 기법과 산출물을 하이퍼링크 식으로 보여주는 방법론 시스템도 구축했다. 6개월 만에 임원회의에서 결과를 발표하니 평가가 좋았다. 남궁석 대표에게 금일봉을 받기도 했다."

-벤처 붐을 지나고 밸텍과 인연을 맺었는데.

"99년 전후 벤처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너도나도 스톡옵션을 받고 벤처로 이동하는 시절이었다. 나도 2000년 미처 준비되지 않은 채 미국계 합작사 에이전시닷컴 부사장으로 이직했다. 벤처 붐은 오래 가지 못했고, 마음고생 끝에 2002년 밸텍컨설팅코리아 IT컨설팅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공공사업을 이끌었다. 이후 2대 주주로 참여한 SK㈜ C&C와 프랑스 밸텍이 지분을 정리하고자 해 2009년부터 CEO로 있으면서 3년 여간 의견조율을 했지만 난항이 거듭됐다. 결국 내가 맡게 됐다. 인생 계획에 전혀 없던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제3의 주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다들 SI라는 업종에 고개를 내저었다. 엄청난 빚을 지고 광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39살의 나이에 인연이 된 남편과 가족들의 응원이 힘이 됐다."

-초기 격변기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글로벌 브랜드 회사에서 로컬 기업이 되자 떠나는 직원도 많았고, 자금압박과 사업부진도 힘겨웠다. 지난 7년은 한마디로 롤러코스터 같은 기간이었다. 매일 아침을 시험장에 들어서는 기분으로 시작했다.

사업은 다행히 순조롭게 되고 있다. 공공시장에서 컨설팅을 컨설팅답게 하는 곳이 드문데, 주요 전자정부 사업 컨설팅은 거의 맡아 하면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60여 명의 컨설턴트 중 밸텍, 삼성SDS, LG CNS, 액센츄어 등 대기업 출신 시니어급 컨설턴트들이 포진해 있다. 40명 정도는 SI 인력이다. 공공사업 수익성이 열악해 사업을 확장하기보다 데이터 컨설팅·구축, AI, 빅데이터, 마스터데이터, 복지, 고용 등에 집중하려 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94년 삼성SDS에서 제안과 컨설팅 PM을 수행한 고용보험 프로젝트다. 96년 제도 시행을 앞두고 보험 접수, 등록, 관리 등 전체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시작된 후에야 법이 통과되고, 시행령은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시스템 개발과 시행령 작업이 동시에 진행됐다. 신설된 법 조항을 보면서 업무·서비스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거기에 맞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했다. 숱하게 밤을 새 가며 컨설팅을 끝냈는데, 고객의 요청으로 구축단계에도 계속 참여했다. 전국 피보험 대상자를 시스템에 입력하고, 보험료 고지와 징수, 실업급여 지급에 이르는 전체 프로세스가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했다. 차질 없이 오픈해서 96년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상을 받은 것보다 더 큰 보람은 98년 IMF 당시 시스템이 잘 작동한 것이다."

-무에서 유를 함께 만드는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단순히 시스템과 기술만 생각하지 않고, 철학과 프로세스를 함께 고민하고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고용보험만 해도 90년대초 사실상 완전고용 시대인데 왜 실업급여제도를 도입하느냐는 반대 목소리가 많았다. 그런데 불과 2년 만에 도입 필요성이 입증된 거다. 그 사업이 계기가 돼서 이후 고용노동부의 고용보험 컨설팅을 5번이나 했다. 지금도 관련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복지부 사회보장정보시스템도 비슷한 경우다.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각 부처에 산재해 있던 복지기금 사업을 통합 관리해 중복과 사각지대를 막기 위해 추진했는데, 우리가 컨설팅을 맡았다. 이후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업을 해 오고 있다. 최근 시작된 차세대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공공사업 하기가 갈수록 힘들다는 목소리가 크다.

"점점 더 척박해지는 것 같다. 선배로서 후배들한테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좋은 인재들이 유입돼 실력발휘를 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투입인력 수만큼 대가를 주는 헤드카운팅 방식은 구축사업에서 많이 없어졌는데 컨설팅과 콘텐츠 개발은 여전하다. 전 영역에서 완전히 없어지도록 올해 적극적으로 활동할 생각이다.

컨설팅과 시스템 구축을 병행하고 있는데, 구축사업의 수익성이 너무 낮고 리스크가 높은 것도 심각한 문제다. 제안요청서에 정의된 사업범위가 구체적이지 않다 보니 고무줄같이 늘어난다. 발주기관에 의해 사업이 지연돼도 원가보존이 안 되고, 오히려 기업의 탓으로 돌려 지체상금을 매긴다. 2013년 대기업 공공사업 참여제한 후 우리라도 잘 해보겠다 했지만 별 수 없더라. 어려움이 매우 많았다."

-정부의 IT 예산 투입규모부터 부족해 보이는데.

"정부 연 IT 예산이 약 5조원으로 전체 예산 대비 1%인데, 턱도 없이 부족하다. 혁명기에는 3%, 최소 2%는 돼야 한다. 산업을 키운다고 하면서 보따리를 안 만드니 공허하다. 그러면서 머릿수 세서 대가를 주는 농경시대의 구태를 이어가고 있다. 산업을 키우려면 제대로 집중해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실증사업 공모만 이것저것 벌려놓고 본사업이 이어지지 않는다. 제도가 바뀌지 않으니 본사업이 안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업들은 세상이 바뀌는 줄 알고 참여했다가 희망고문만 당한다.

산업 경쟁력을 제대로 키우려면 용역 중심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제값 주고 서비스를 사주면 된다. 국내에서조차 인큐베이션이 안 되면 기업들이 해외로 나갈 수 없다. 국가가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줘야 한다. 서울시가 기업과 합작사로 세운 티머니가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시 대중교통 플랫폼은 세계적인 성공사례로 자리잡아 수출도 하고 시민들도 더 편해졌다. 민간이 하니 그런 서비스가 연속성 있게 발전한다."

-공공IT 사업방식도 전면적 변화가 필요해 보이는데.

"정부 예산으로 IT 수요를 다 충족할 수 없고 그렇다고 예산을 무한히 늘릴 재정상태도 안 된다. 그렇다면 국가가 예산을 투입하는 대신 민간이 투자해 개발한 서비스를 국가가 사서 쓰면 된다. 이 아이디어가 채택돼서 과기정통부 민간 주도형 국가서비스 기획사업이 시작됐다. 우리도 이 사업에 참여해 개인 의료정보를 클라우드에 올리고 개인과 보호자, 의료진이 공유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는데, 코로나19 이후 열릴 원격의료 시대에는 이런 플랫폼이 필수적이다. 작년 스페인 MWC에서 플랫폼을 소개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아 4일 동안 80여 곳과 상담을 진행했다. 이런 방식을 공공IT 전반에 확산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자체 서비스를 해야 수출도 하고 사업기회도 넓힐 수 있다."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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