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앞으로의 경영 과제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불확실성을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핵심입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르면 이달 말부터 이어질 주요 대기업의 정기 인사의 키워드에 대해 이 같이 설명했다.
재계가 시계제로다. 통상 연말이 다가오면 대략적인 인사의 방향성과 윤곽이 입소문으로 퍼지기 마련이지만, 몇몇 대기업들은 인사 시기조차 정하지 못했다.
워낙 대내·외 변수가 많고, 여기에 당장 전반적인 사업 침체를 극복할 만한 돌파구도 딱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변해야 산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또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도 알지만 현 상황에서는 움직일 틈이 없다는 하소연이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통상 매년 12월 초에 진행하던 정기 임원 인사를 다소 늦추거나 내년으로 넘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양형 심리 기일이 12월 6일에 예정돼 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9일)와 삼성에버랜드(13일)·삼성전자서비스(17일) 노조 와해 의혹에 대한 1심 선고 역시 같은 달 이어질 예정이어서다.
여기에는 이 부회장 뿐 아니라 삼성전자 핵심 경영진들도 대거 포함해 있어 재판 결과에 따라 인사의 향방이 바뀔 수 있다. 경영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 신성장 사업 육성을 위한 전략적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다른 기업들도 고민은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진두지휘로 대대적인 사업재편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난해 5월 전면 철회했던 지배구조 재편 문제를 1년 넘게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SK그룹은 SK텔레콤의 중간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을 계속 대내외에 알리고 있지만, 아직 방법은 찾지 못했다.
다만 구광모 체제 출범 2년차에 접어든 LG그룹은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의 용퇴 결정 이후 세대교체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당장 뚜렷한 성장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구광모 회장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는 아직 물음표다.
이 밖에도 롯데그룹은 총수 리스크는 어느정도 해소했지만 유통사업의 전반적인 부진을 극복할 해결책 마련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최근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고 조원태 회장 체제를 본격화 한 한진그룹의 경우 당분간 체제 안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스마트폰과 자동차, 반도체, 정유·화학, 조선, 철강 등 주요 제조업 전반이 침체한 상황에서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며 "하루만 늦어도 10년이 도태될 수 있는 상황이지만, 현재 국내 대기업들은 사실상 손발이 묶여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