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섭 ICT과학부장
![[최경섭 칼럼] 불꺼진 판교, 벤처혁신도 멈춰섰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911/2019111102102269046001[1].jpg "[최경섭 칼럼] 불꺼진 판교, 벤처혁신도 멈춰섰다")
최근 대한민국 벤처혁신, 기술혁신의 심장부 판교밸리를 방문했다, 한 기업체 임원으로부터 이같은 얘기를 전해듣고 잠시 먹먹했던 적이 있다. 중견 게임업체인 이 회사는 지난 4월부터 주52시간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정식 퇴근 시간과 함께 모든 회사업무가 중단되는 '6시 셧다운제'에 돌입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판교밸리 기업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오후 6시만 되면 회사 업무를 종료하고 근로자들이 쏟아져나오면서 초저녁, 판교의 퇴근길 행렬은 장관을 이룬다고 덧붙였다. 언젠가부터 저녁 6시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판교 직장인들을 가리켜 '판교 공무원'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판교는 심야시간대에도 입주 기업들이 불야성을 이루는 대한민국 벤처혁신의 심장부였다. 내노라 하는 스타벤처는 물론 스타트업, 창업벤처 등 이제 막 새로운 도전에 나선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판교는 전통산업의 대기업들이 밀접한 서울 도심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왔다. 전에 없던 혁신서비스를 발굴하고,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미래에 도전하던 창업벤처들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새벽까지 뜨거운 열정을 토해내는 곳이었다.
그러나 주 52시간제가 대폭 확대되면서 대한민국 벤처 심장부 판교의 열정도 차츰 식어가고 있다. 과거 새벽까지 불을 밝히던 벤처 빌딩들은 오후 6시면 근로자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면서 적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판교 현지 벤처인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는 점은 주 52시간제가 무한도전의 벤처정신까지 위협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당장, 줄어드는 근로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인건비 부담이 폭증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이 줄어든 근로시간을 보충할 전문인력들을 벤처기업에서 빼 가다 보니, AI나 빅데이터 등 소위 잘나가는 분야의 인재들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경기침체에 수출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벤처기업인들로서는 인건비 급증에 핵심인력까지 이탈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신기술 개발 지연, 납기지연, 신작 출시 지연 등으로 이어져 기업경영에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신작출시 일정에 기업의 생존을 걸어야 하는 판교 게임업체들의 경우, 신작출시 일정이 당초 계획 대비 6개월 이상 지체되면서 매출과 수익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주 52시간제는 문재인 정부가 강조해 온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핵심이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 일과 삶의 균형, 이른바 '워라벨' 시대를 구현하겠다는게 현 정부의 구상이었다. 그러나 주 52시간제가 산업현장, 특히 대한민국 벤처 심장부인 판교에 도입되면서 전반적으로 큰 혼선을 주고 있다. 주 52시간제가 전면 확대되는 내년부터는 이같은 혼란이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이나 창업 벤처들에도 똑같이 닥칠 것이다.
재계와 중소기업 업계도 결국 주 52시간제 유예를 요구하며 거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5단체는 지난 6일 공동 성명을 내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중기 시행 1년 유예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통령이 직접 인선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도 참다 참다 못해 "벤처는 주 52시간제 지키기 어렵다"면서 반기를 들고 나섰다.
오후 6시 획일적으로 모든 업무가 중단되는 '셧다운제'를 보면서 판교 벤처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 52시간제는 복지제도가 아니다. 벤처를 망하게 하는 제도다."
최경섭 ICT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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