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기고] 인구절벽, 왜 해결되지 않나](http://contents.dt.co.kr/images/201902/2019022102102269660001[1].jpg "[기고] 인구절벽, 왜 해결되지 않나")
현재의 인구절벽 문제는 단순한 인구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구조의 문제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즉, 인구가 1% 줄어든다고 할 때 모든 연령대의 인구가 똑같이 1%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인구가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젊은 인구는 줄어들고 늙은 인구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더 커진다.
청년실업 문제도 인구구조와 무관치 않다. 청년층이 줄면 내수기반도 축소된다.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엄청난 수요를 창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젊은이들이 줄면 수요가 감소해 고용창출력이 큰 내수산업의 일자리도 줄게 됨을 알 수 있다. 이때 기존 취업자들, 특히 은퇴를 앞둔 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은퇴를 미루고 고용주는 신규 채용을 줄이게 된다. 즉, 젊은 인구 감소로 인한 수요 감소와 일자리 감소의 충격이 모든 연령층에 골고루 퍼지는 것이 아니라 청년층에 집중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일본처럼 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은퇴하고 나면 청년 일자리가 다시 늘어날 수는 있겠으나 축소된 내수기반 때문에 고임금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진다.
다른 한편으로 기술혁신을 통해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나 각종 로봇을 발전시킨다면 인구구조 왜곡의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근본 요인이 기술혁신이라고 볼 때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기술혁신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 기술혁신을 위해서는 연구개발 투자가 중요하다. 연구개발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로머가 지적했듯 규모의 경제에 많이 의존한다. 시장의 규모가 커야 지식 창출의 수익성이 높아지고 연구개발의 인센티브도 커진다. 기술혁신을 담당하는 연구자들과 기업가들 자신이 고령화되는 것도 혁신의 효율에 좋지 않다는 점이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 추세로 가면 몇 십년 후 생산연령 인구의 비중이 40% 밑으로 떨어질 것이 예견되지만 먼 훗날을 위해 당장 자원을 투입하자고 할 때 정치적으로 지지를 얻기가 쉽지 않다. 유권자의 대다수가 이미 고령화되어 많은 이들이 저출산 대책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젊은 인구의 정치적 목소리가 위축된 상황에서는 저출산 해결을 위한 돌봄 인프라 구축이나 교육비 절감, 주거문제 해결 등에서 과감한 접근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오히려 청년이나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 건설을 반대한다든지 국공립 유치원 확대를 막는다든지 하는 퇴행적 지대추구 활동이 활발해진다. 그나마 저출산 대응 예산도 저출산과 별 관계없는 예산들까지 포함돼 부풀려진다.
한국보다 저출산 문제를 일찍 경험한 나라들 중 비교적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나라들이 있다. 출산율 1.9~2.0%수준을 회복한 프랑스 영국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다. 이들은 전국민적인 공감대 위에서 과감한 재정지출을 실시하고 출산과 육아에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랑스는 출산율이 1.79가 되었을 때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후 엄청난 규모의 재정을 저출산 해결에 투입했다. 프랑스·영국·스웨덴의 가족지출 정부 예산은 GDP의 2.9~3.8% 수준으로 한국의 1.1% 수준과 큰 차이를 보인다.
반면 비교적 성공적이지 못했던 나라들로는 출산율이 1.4 대에 머물고 있는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나라들에서는 GDP 대비 가족지출 비중이 1.3~2.2% 대로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작고 여성이 출산·육아와 일을 병행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에선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시키는 것이 극히 어렵다. 주거비와 육아비용(시간비용 포함)은 비싼 반면 젊은이들의 소득은 작아 맞벌이가 필수에 가까운데도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렵다면 젊은이들의 선택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이 되기 쉽다.출산율이 높았을 때 어린 시절을 보냈던 기성세대들이 볼 때에는 요즘 젊은 (예비)부모들의 고민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예전에 육아 인프라 역할을 했던 마을 공동체가 사실상 사라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놀면서 스스로 자라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한 시간 한 시간 돌보는 것이 모두 돈인 세상이 됐다. 그리고 이 돈의 대부분은 부모 개개인이 부담한다. 따라서 국가가 육아 공동체의 기능을 제공해줘 개개인의 과도한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다.
이젠 저출산 해결을 위한 시간이 많지 않다. 늦으면 늦을수록 재정 부담은 심해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발상을 과감히 전환해서 예산을 아끼지 말고 세계 최고 수준의 온종일 돌봄 체계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이를 통해 여성의 출산과 육아를 대하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 초저출산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뿐 아니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도 촉진되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다.
원문참고=동아시아재단(www.keaf.org) 정책논쟁 제1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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