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굴기'로 저가 LCD(액정표시장치) 패널로 국내 기업들을 위협한 중국 디스플레이 대표주자들이 패널 과잉 공급, 정부 보조금 축소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앞으로 자국 디스플레이 보조 정책 규모를 지속 줄여나가는 데다, 미·중 무역분쟁까지 심화하면서 앞으로도 이 시장에 먹구름이 낄 것으로 보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저가 LCD 패널로 국내 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는 중국 디스플레이의 '쌍두마차' 격인 BOE와 CSOT 모두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BOE는 3분기 연결기준으로 영업이익 4억1452만위안(약 672억4758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억359만위안(약 4223억8041만원)보다 84%나 감소한 것이다.
영업이익률도 큰 폭으로 줄었다. BOE는 지난해 3분기 10.49%라는 놀라운 영업이익률을 기록했지만, 올 3분기에는 1.59%로 9%포인트 가까이 내렸다. 100원 벌면 10원을 남기던 곳이, 1년 새 겨우 1원 남짓 남기는 회사가 됐다는 얘기다.
TCL 산하 디스플레이 업체 CSOT의 3분기 실적 역시 뒷걸음질쳤다. 올 3분기 CSOT의 세금, 이자비용, 감가상각비용 등을 빼기 전 영업이익인 EBITDA는 19억8700만위안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0억2000만위안) 보다 34.20%나 줄었다. 올 9월까지의 누적 매출액도 지난해 204억4000만위안에서 190억5000만위안으로 6.8% 감소했다.
대만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들도 울상이다. 대만 AUO의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97억달러)보다 69.1% 감소한 30억달러를 기록했다. 폭스콘 계열 이노룩스는 17억9000만달러로, 전년동기(108억9500만달러)보다 83.57% 쪼그라들었다.
통상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3분기를 '대목'으로 꼽는다. TV 제조사 등 세트 업체들이 하반기 수요 증가를 고려해 패널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화권 업체들이 올 3분기에 맥을 못 췄던 주요한 이유는 LCD 공급 과잉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천문학적인 보조금 지원으로 우후죽순 늘어난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치킨게임'을 치열하게 벌이면서, 각 회사별 이윤에 큰 악영향을 준 것이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의 월별 TV용 패널 가격 추이를 보면, 32인치 패널부터 55인치 패널까지 총 15종류의 LCD 패널 가격이 모두 내림세다. 일례로 55인치 고급 UHD(초고화질) 패널 가격은 지난 1월 177달러였지만, 지난 10월 기준 12%가량 내린 155달러까지 감소했다. 같은 기간 공급 부족 현상으로 대형 패널 평균 판가(ASP)가 1분기 695달러에서 4분기 738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시장과는 다른 모습이다. 여기에 위안화 약세를 초래한 미·중 무역분쟁도 찬물을 끼얹었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관계자는 "각 중화권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10.5세대 LCD 대형 공장을 완공하는 2022년 경에는 가격이 더 심각하게 곤두박질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 중국 정부가 보조금마저 줄여나가는 추세여서, 이 역시 실적에 문제가 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확한 지원금 액수는 알지 못하지만, 중국 정부에서 관련 업체가 너무 많아지면서 낮은 세대 공장에는 아예 투자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 보조 정책이 줄면서 박리다매로 판매하는 기존 전략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실적에 경고음이 울리자, 중국 내에서도 패널 업계 성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중국 제일재경일보는 지난 1일 '실적 하락 뚜렷한 BOE·CSOT, 패널업계 미래 괜찮은가'라는 기사를 내고 "BOE는 3분기 좋지 않은 실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패널업계의 실적 하락은 기정 사실화돼 있고, 제품 가격에 따라 실적이 반등할 수 있을 지 미지수"라고 보도했다. 이어 "민간 투자자들은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업계에 투자하는 것을 기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업체들은 중·소형, 대형 OLED 패널 기술을 토대로 상반기 기록했던 부진을 3분기 만회해나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의 실적 하락이 국내 회사들에게 기회가 될 지는 아직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BOE 등 중국 업체들이 OLED 패널 생산 수율을 올리는데 속도를 내고, 5G, 8K 기술 등 미래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중국의 어떠한 움직임도 아직 우리 업체들에게는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강해령기자 strong@dt.co.kr
중국 푸저우의 BOE 생산 공장.
지난 4월 중국 푸저우에서 열린 제 1회 디지털 차이나 서밋의 BOE 부스. <게티이미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