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산업의 쌀'과 같은 역할을 하는 '데이터'에 대한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데이터를 많이 가진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며 시장 지배력과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데이터 강자'가 '시장의 강자'로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특히 동물, 식물, 미생물 등 각종 생명연구자원과 같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양산하고 있는 바이오 분야에서 데이터의 존재 가치는 절대적일 수 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바이오 관련 데이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집·공유·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느냐에 따라 산업 경쟁력이 좌우된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대용량 생명정보 데이터에 대한 분석 수요가 늘면서 국내 유전체 정보 데이터 양은 2021년 25.8페타바이트(PB·1PB=1024TB)에 달할 정도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웅양 삼성유전체연구소 소장
환자의 유전정보, 생활정보, 임상정보 등을 분석해 개인에게 최적화된 예방과 진단, 치료가 가능한 곳.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미래 병원의 모습이다. 삼성유전체연구소는 미래 시대에 대비해 유전체정보 분석 방법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유전체정보는 병원에서 환자의 개인 특성에 따른 맞춤치료를 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데이터다.
환자의 유전체정보 분석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 연구소의 목표다.
박웅양 삼성유전체연구소 소장(사진)은 "환자의 유전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DNA 염기서열을 해독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며 "암 환자의 조직에서 얻은 DNA를 분석해서 돌연변이를 찾으면 각 개인에게 맞는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를 이용해 맞춤치료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희귀질환 환자의 DNA를 분석하면 원인 돌연변이를 찾아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DNA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분석하려면 염기서열 분석방법과 정보분석 알고리즘, 해석을 위한 지식정보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
특히 박 소장은 이러한 분석 방법·기술 개발에 있어 빅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박 소장은 "빅데이터의 중요성은 모든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지만, 특히 헬스케어 빅데이터는 실제 신약과 인공지능기술 개발에 중요하다"며 "수만명의 암 유전체 데이터베이스로 부터 표적항암제 개발을 이끌어 낸 전세계 최대 규모의 암연구 프로젝트 'TCGA(The Cancer Genome Atlas)'가 이를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TCGA는 2006년 미국 주도로 결성된 종양 유전체 컨소시엄으로, 20여 종의 종양에 대한 유전체를 분석해 맞춤 암 치료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어 박 소장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은 정부 차원에서 수백만명의 유전체 데이터를 생산해 유전체와 임상정보의 통합을 통한 연구와 기술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글로벌 제약사들은 임상·유전체 데이터로부터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대표적으로 신약 개발사인 미국 리제네론이 보험회사인 가이징거와 함께 수만명의 유전체 ·임상·생활정보를 이용해 새로운 고지혈증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삼성유전체연구소에서도 데이터를 보다 체계적,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인공지능 등을 통해 약을 개발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병원에서 연구목적으로 생산한 유전체 데이터를 정보 제공에 동의한 환자의 임상정보와 통합분석 해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 치료반응에 관련된 새로운 유전자를 확보하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로부터 인공지능 모델과 데이터마이닝 기법을 이용해 약을 개발하고 있다.
박 소장은 "삼성유전체연구소는 삼성서울병원에서 법적으로 정해진 영역내에서 유전체데이터를 활용을 하고 있다"며 "환자의 동의부터 연구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데이터를 모으고,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개인정보보호를 위해서는 어떤 장치가 필요한지 연구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분양받을 수 있는 공공 유전체데이터를 이용해서 검증하고 보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와 함께 영국 바이오뱅크의 50만명 데이터를 분양받아 각종 인공지능 모델을 만들고 있다"며 "이러한 경험들이 앞으로 대규모 데이터를 생산·분석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박 소장은 국내에서는 높은 수준의 데이터가 있는데도 이것들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국가 건강보험제도를 비롯해 전자의무기록의 보급, 높은 수준의 병원 임상의사, 국민건강검진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질 높은 임상데이터들이 국내에서 생성되고 있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헬스케어 빅데이터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은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고 병원에서 정밀의료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의 우수한 임상데이터가 치료제 개발과 병원 정밀의료에 원활하게 사용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2016년에 발표한 '일본재흥전략 2016'을 통해 '세계 최첨단의 건강국가'를 목표로 빅데이터 활용 진료 지원, 사물인터넷(IoT) 등을 활용한 맞춤건강서비스 등 데이터 활용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마련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UK 바이오뱅크'를 통해 50만명의 유전체·임상·생활정보를 세계 모든 연구자들과 개발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환자 공공 유전체 데이터를 이용해 제약사들이 경쟁적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