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전 연세대 교수·정치학
![[시론] 보수, 초심으로 돌아가야 산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707/2017072002102351607001[1].jpg "[시론] 보수, 초심으로 돌아가야 산다")
요즈음 보수 재건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 수개월 동안 탄핵과 대선의 열풍에서 벗어나 새 정부가 출범하고 정치권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그동안 보수의 몰락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 같다. 보수가 위기에 처한 것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이번의 위기만큼은 보다 근본적인 궤멸의 위기라는 점에서 보수 재건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보수 재건론은 대체로 두 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다수는 보수 개혁론을 내세우면서 보수의 가치와 보수정당들이 개혁적 중도 보수를 지향해야 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소수는 진영 재건론을 내세우면서 오히려 보수의 이념적 정체성을 회복하여 보수정당의 단합과 정치 투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 재건의 방향에 대한 논쟁은 한국정치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국가사회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두 보수정당들이 보수의 적통성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단 자유한국당이 새누리당 계승정당이고 국회에서 제1야당이기 때문에 보수의 적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수가 몰락한 상황(한국갤럽 7월 2주차 조사, 각각 9%의 지지율)에서의 적통 경쟁은 별 의미가 없다. 문제는 어느 정당이 앞으로의 보수 정통성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보수 적자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보수 재건의 방향에 따라서 그 운명이 좌우될 것이다.
우선 진영 재건론은 보수의 위기는 좌파세력의 준동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라고 믿는다. 대통령 탄핵과 진보정권의 등장은 좌파의 선동과 음모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며 일부 '철학 없는' 보수 정치인들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도 이념적으로 조직적으로 철저하게 무장해 강력하게 대응해야 하며 반공 애국세력을 규합하고 성공국가를 건설한 산업화 세력의 공헌을 높이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강경 보수 재건론은 성공국가의 신화를 창조한 보수의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있지만 과거의 기억과 향수에 젖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정을 부정하고 좌파세력의 음모로 사태를 단순화시키려는 의도는 국정농단의 심각성을 평가절하하고 국민 다수의 정서와 헌법적 절차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보수세력을 더욱 소외시킬 것이며 보수의 분열과 축소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진영논리에 의한 보수 재건은 보수를 경직화, 우경화시킬 것이며 다당제하에서 불가피하게 극우 정당으로 전락될 것이다.
반성과 성찰의 보수 재건은 당연히 개혁적 중도 보수의 방향에 있다. 물론 보수의 업적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선동적이고 교조화되어 정치논리에 빠질 것이 아니라 왜곡된 보수의 본령을 되찾자는 것이다. 참다운 보수는 전통을 존중하되 개혁 또한 중요시한다.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참보수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1729~97)는 전제적 반동적 보수주의를 비판하고 '보존을 위한 변화'를 주창했다. 그 후 서구 보수주의의 주류는 끊임 없이 변화해 왔고 그 방향은 중도화이다. 기득권층의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 사유재산의 공동체적 소유 개념, 사회적 이동성이 높은 공정사회 그리고 포용과 관용의 정치 등이 그 방향이다.
한국의 보수는 시대변화에 따라 진화하기보다 오히려 퇴보해 왔다. 한국의 보수에는 국가주의적 보수와 신자유주의적 보수가 혼재해 왔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 국가주의가 주류가 되어 보수의 본령에서 더욱 멀어졌다. 미래 세대에게 행복을 약속하는 보수가 되기 위해서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치를 모두 포용해야 한다. 개혁적이고 인간적인 보수만이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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