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벤처 힐세리온, 초음파 진단기 '소논'
20㎝ 크기에 가격은 기존 장비 10분의 1 저렴
출시후 매출 8억 … 올 30억·내년 100억 목표
병실침대서 바로진단 가능 세계 의료취약지 희망
'연 5.2%↑' 의료기기산업 국내비중은 1.4% 불과
의사들도 혁신제품 개발 동참 … 선제적 투자 시급
20㎝ 크기에 가격은 기존 장비 10분의 1 저렴
출시후 매출 8억 … 올 30억·내년 100억 목표
병실침대서 바로진단 가능 세계 의료취약지 희망
'연 5.2%↑' 의료기기산업 국내비중은 1.4% 불과
의사들도 혁신제품 개발 동참 … 선제적 투자 시급
■ 바이오헬스 '글로벌 퀀텀점프기' 열어라
(8·끝) 초음파장비를 '손안의 기기'로… 융복합 의료기기로 생명 살린다
우리나라 산모들은 병원에서 초음파 영상을 통해 태아의 모습을 처음 본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인 아프리카에서는 출산 때까지 제대로 된 진료 한 번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통이 시작돼도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확인하는 방법은 고깔을 대고 심장 소리를 듣는 게 고작이다. 이런 열악한 의료 환경 탓에 매일 800명의 산모가 출산 중 사망한다. 초음파 진단만 할 수 있어도 그중 절반 이상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의료기기 벤처기업 힐세리온이 개발한 휴대용 초음파 '소논'은 이같이 낙후된 세계 의료취약지에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있다. 세계 최초의 100% 모바일 초음파 기기인 소논은 의사 가운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20㎝ 크기에 가격은 기존 초음파 장비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배터리로 작동하고 무선으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연결해 영상을 확인하기 때문에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진단을 할 수 있다. 또 촬영 영상을 바로 문자메시지 등으로 전송할 수 있어 병원이나 의사가 없는 곳에서도 먼 거리의 의료기관에 결과를 보내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와 베트남 등에서 소논이 태아와 산모를 살린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10일 서울 구로구 힐세리온 본사에서 만난 류정원 대표는 "앞으로 기기와 통신망만 있으면 어디든 병원이 되는 시대가 온다"며 "언제 어디서나 장소나 시간 상관없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 회사의 목표"라고 말했다.
◇'의료+IT' 융복합 의료기기로 신시장 열어=소논은 류 대표의 다양한 경험에서 나온 산물이다. 공학도였던 류 대표는 IT 벤처사업가에서 의사로, 다시 의료기기 벤처사업가로 여러 번 직함을 바꿨다. 의사로 일하던 2010년, 초음파 장비가 없어 응급실에 실려온 산모를 살리지 못한 경험을 한 후 소논 개발을 결심했다. 임상의사 경험과 IT 벤처에서 익힌 디지털 영상 처리·저장기술, 애플리케이션 개발 책을 쓸 정도로 해박한 모바일 지식 등이 모여 검사실에만 머물렀던 초음파 장비를 '손안의 장비'로 탈바꿈시켰다.
소논의 가능성은 아직 무궁무진하다. 병원에서는 환자를 검사실로 옮길 필요 없이 병실 침대에서 바로 초음파 진단을 할 수 있다. 이달 새로 출시될 골격용 제품은 정형외과나 성형외과에서 시술 중 뼈나 근육의 위치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한 대에 수천만원에 달하는 기존 초음파 기기로는 제대로 실습교육을 받기 어려웠던 의대생들도 더 많은 임상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실제로 힐세리온과 협력하는 길병원은 이미 소논을 의대생 교육실습에 쓰고 있다. 앞으로 의사뿐만 아니라 구급대원이나 간호사도 촬영법을 익혀 영상을 의사에게 보내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고, 최근 급성장하는 동물용 의료기기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다. 활용범위가 커지면서 기술혁신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힐세리온은 지난해부터 미래창조과학부 '신시장창조 차세대의료기기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더 작고 가벼우면서 복부, 골격 등에 범용으로 사용 가능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여러 곳에서 쓰이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요구도 나오고 있다. 완전 방수 기능은 기존 초음파에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류 대표는 "초음파 진단이 일상화될 수 있도록 현장 사용 시 장애가 되는 점들을 고쳐갈 것"이라며 "의료기관과 기기들을 연동하는 모바일 헬스케어 플랫폼을 함께 개발하고 있고, 앞으로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해 의사들이 보다 쉽게 초음파 영상을 분석할 수 있는 '버추얼 가이드 시스템'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힐세리온은 지난해 첫 제품 출시 후 약 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30억원, 내년에는 100억원이 목표다. 다양한 시장 공략이 가능한 만큼 고성장을 낙관하는 것이다. 소논은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물론, 유럽 CE 인증과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미국과 중국 등에서 비슷한 제품을 개발하는 곳들이 있지만, 초음파 분야는 기술장벽이 높아 당분간 쉽게 따라오기 힘들 전망이다. 선진국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장악한 시장에 틈새를 파고들 수 있는 혁신 제품으로, 개발도상국에서는 가격대비 성능이 뛰어난 제품으로 승부할 수 있다. 국제구호단체 등과 손잡고 저개발국에 원조 형태로 진출하는 사업모델도 추진하고 있다.
류 대표는 "의료기기는 국내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세계 시장 진출이 필수"라며 "다각적 협력을 통해 구체적인 세계 시장 개척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들, 혁신 제품 개발 동참해야"=국내 의료기기 시장은 2011년 4조3064억원에서 지난해 5조2656억원으로 연평균 5.2% 성장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소비 감소에도 불구하고 거침없는 성장을 이어가고 있어 대표적인 미래 성장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 시장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에 그치고, 약 3000개 회사가 과당경쟁을 펼치고 있어 경쟁력 향상이 시급하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의료기기 제조업체 2992곳 중 20명 미만 제조업체가 80% 이상이고, 생산액 100억원 이상 기업은 3%인 86곳에 불과하다. 브랜드 인지도와 연구개발(R&D)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국내 병원조차 국산 의료기기를 외면한다. 종합병원은 국산 의료기기 사용률이 20%, 상급종합병원은 8%대에 그치는데, 성능과 브랜드 신뢰도, 사후관리 부족이 원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국내 산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산업계와 의료계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의료기기 업체들은 "의사를 만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의사들은 "실제 임상에서 쓸 수 없는 제품이 많지 않다"고 불만을 나타낸다.
의료기기는 특성상 제품 출시 후 요구사항이 있어도 기능을 개선하거나 수정하기 쉽지 않다. 인허가 절차를 다시 거치는 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획과 개발단계부터 의료진이 참여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인허가 과정을 밟기 전 임상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인지 검증하는 플랫폼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서울아산병원의 기업연계의료기기개발센터와 서울성모병원 의료기기개발센터같이 대형병원이 새로운 수익모델로 의료기기 공동 개발에 참여하는 점은 고무적이다. 미래부는 최근 병원이 의료기기 벤처를 위한 공간과 장비를 구축하고, 입주기업과 함께 융복합 의료기기를 공동 개발하는 '의료기관 창업캠퍼스 연계 신개념 의료기기 원천기술 개발사업'에 5년간 2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힐세리온의 경우 길병원과 공동 개발하면서 각 진료과로부터 실시간 피드백을 받았다. 류 대표는 "시장 친화적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기술력만으론 안된다"며 "기업과 의료진의 접점을 늘리고, 특히 스타트업이나 벤처는 창업단계에서부터 의사들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융복합 의료기기에서 기회 찾아야=세계적으로 자기공명영상장비(MRI)와 컴퓨터단층촬영장비(CT), 초음파 진단장비 등 고부가가치 의료기기 시장은 이미 지멘스, 필립스, GE 등 글로벌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어 진입이 쉽지 않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 신수종사업으로 보고 투자를 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못 내는 상황이다. 개발과정의 기술장벽이 높고 국가별 인허가 과정이 복잡한 데다, 세계 의료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마케팅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세계 시장에 도전하려면 소논같이 기존에 없던 융복합 의료기기를 개발해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효율적인 의료시스템 하에 수준 높은 의료수준을 갖추고 있고, 특히 병원들이 첨단 장비와 전자의무기록(EMR),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등 ICT 기술을 빨리 도입해 세계적인 '테스트베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류 대표는 "우리나라는 축적된 의료경험과 ICT 역량을 바탕으로 융복합 의료기기 분야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지금 진입 장벽을 잘 만들면 스마트폰 등 다른 ICT 분야와 달리 중국 등이 쉽게 따라오기 힘들기 때문에 선제적 투자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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