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연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시론] `과감한 실패`를 허하라](http://contents.dt.co.kr/images/201609/2016093002102351607002[1].jpg "[시론] `과감한 실패`를 허하라")
추석이 지났다. 예년에 비해 일찍 찾아온 추석으로 차례상에 햇과일과 햇곡식을 올리기는 어려웠지만 뜨거웠던 올 여름에 큰 자연재해가 없어 풍성한 가을 추수가 예상된다. 아직도 한낮에는 가벼운 옷차림이 더 편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은 자연의 순리에 한 치 어긋남이 없다. 예로부터 추석은 풍성한 가을을 맞기 위해 같이 땀흘려 온 동네 사람들과 더불어 그해 농사로 얻어진 신선한 수확물을 조상님께 바치는 넉넉한 휴식의 시간이었다. 산업이 고도화 되어 농업 등 1차 산업에 종사자 수가 적고,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오늘날에도 각박한 생업에서 잠시 벗어나 가족, 친지 등을 만나 모처럼 따스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힘든 귀성길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생 마다않고 부모, 형제를 만나기 위해 고향을 다녀오고 있다.
추석 연휴가 되면 가족끼리 모여 소위 추석민심이라 하는 정치, 사회 현안들에 대한 자연스런 의견 교환을 하게 된다. 필자의 기억에 떠오르는 주요 사건으로는 올 봄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된 것과 사드(THAAD) 배치를 두고 미국, 중국 그리고 한국 간 국제적 공방과 더불어 국내 논쟁도 그 정도가 더 심해진 일을 꼽을 수 있다. 최근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우리나라 안보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현 상황에서 현명한 해법이 도출되어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개발에 맞서 우리도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 경제의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상태에서 핵개발을 하게 되면 국제사회의 무역제재 등으로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거라는 신중론이 맞서고 있어 북한 핵실험이 몰고 온 후폭풍에 걱정이 앞선다.
우리나라는 24기의 원자로를 가동해 국내 전력 생산의 30%인 2만1000 MW를 공급하고 있으며 수십 년 동안 안전사고 없이 원활하게 운영해 오고 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측면에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적 합의만 있으면 단시간에 핵무장이 가능하겠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 올 결과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듯 기술이 있어도 주변 상황에 따라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하고 싶어도 기술이 부족해 못 하는 게 있다. 최근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우주 개발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어느 나라나 우주개발은 국가의 전략적 기술이므로 외국으로부터 기술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수년전 러시아로부터 발사체를 들여와 나로호를 발사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러시아의 철저한 기술보안으로 결국 발사체를 비롯한 우주기술을 획득하는 데는 실패해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우주개발은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제한된 예산과 시간 내에 성공적인 개발을 하려면 개발자들에게 큰 부담을 줄 수 밖에 없다. 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쏘아대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인접한 중국의 우주굴기(宇宙屈起)에 우리가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중국의 괄목할 만한 우주기술 발전이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의 배경에는 엄청난 실패로 점철된 과거가 있다. 시간이 지나 잊혀졌을 뿐이다.
필자의 세대에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최근에는 예전만큼 이 격언이 그리 자주 사용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실패하면 안된다는 강박 의식이 팽배해 있다.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인식에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우리 국민은 대학입시를 통해 실패냐 성공이냐 하는 첫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본인에게 적합한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것 보다 본인의 적성과 소망에 관계 없이 소위 명문대와 취직이 잘되는 학과를 가면 성공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라는 이 단순한 사고가 청소년들을 옭아매고 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남들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심지어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으로 과외로 몰리다 보면 다양한 생각과 엉뚱한 행동 그리고 남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남을 배려하는 자세 그리고 인간으로 갖춰야 할 도덕성 등 인품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된다. 자유로운 사고를 할 틈 없이 틀에 박힌 암기 위주의 전근대적인 교육을 받고 심지어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조차 부족한 우리 청소년들이 실패를 피하기 위해 어떻게 하든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는 실패를 통해 이뤄지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일에 매달리기 보다는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연장선상에서 국내 연구개발과제에서 성공률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비단 과학기술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으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고도화 된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4차 산업혁명시대가 이미 도래하고 있고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부존자원과 넓은 국토가 없는 우리로서는 과학기술이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독창적인 기술을 통해 발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독창적인 기술은 실패를 바탕으로 탄생한다. 명실공히 창조경제의 바탕인 개척자 정신이 우리사회 전반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실패를 용인하고 또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국민 의식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글귀가 다시 우리 마음 속에 울림을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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