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형 칼럼] 산업 재편과 원숭이의 지혜](http://contents.dt.co.kr/images/201601/2016010402102251661001[1].jpg "[이근형 칼럼] 산업 재편과 원숭이의 지혜")
십이지 중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지혜의 상징 원숭이(申)의 해가 밝았다. 원숭이가 십간의 붉은색을 의미하는 병(丙)을 만나, 육십 년 만에 돌아오는 '붉은 원숭이의 해' 병신(丙申)년이다. 건강과 부, 열정, 따뜻함을 의미하는 붉은색과 지혜, 추진력, 긍정의 이미지를 가진 원숭이가 결합했다. 최근 몇 년간 벌어졌던 좋지 않은 기억을 훌훌 털어버리는 긍정의 해일 것으로 기대한다.
병신년은 민족의 역사에서 부정보다는 긍정의 의미가 강하다. 396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병신대원정'을 통해 백제와 관계를 반전시켰다. 고려의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것은 936년 병신년이다. 민족의 문화유산 중 하나인 팔만대장경도 1236년 병신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776년 병신년에 조선의 명군 중 한 명인 정조가 즉위한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독립한 해도 1776년이니, 역시 병신년이다.
원숭이는 우리에게만 긍정의 아이콘이 아니다. 원숭이는 동양에서는 '상서로운' 짐승이다. 소설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은 천축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삼장법사를 호종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신통력과 꾀로 어려움을 이겨낸다. 중국에서는 붉은색과 원숭이가 만난 올해 태어난 아이는 귀하고 지혜롭다고 한다. 인도 신화에 보면 반은 사람이고 반은 원숭이인 하누마트는 변장술에 능하고 꾀도 많아 불교의 라마왕을 잘 모신 대가로 신이 됐다. 우리 조상들도 원숭이를 꾀가 많고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동물로 그리고 있다. 신화 속 원숭이는 우리 삶의 든든한 조력자다.
올해 우리에게는 원숭이의 지혜가 필요하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대한민국 산업이 중대한 고비에 서 있다. 지난해 우리 경제를 이끌어 온 제조업이 산업화 50여 년 만에 최고의 위기를 맞았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2014년에 비해 7.9% 감소한 5272억달러에 그쳤다. 수출이 줄다 보니 국내 경기도 침체해 연간 물가상승률이 사상 최저인 0.7%에 그쳤다. 매월 뒷걸음질친 수출로 인해 2011년 이후 4년 만에 무역 1조달러 고지에 올라서지 못했다.
산업별로 보면 더 심각하다. 한때 세계 1위를 질주하던 조선업은 3사 모두 수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하며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았다. 조선사를 주 고객으로는 하는 철강 역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휴대폰이나 TV 등 세계 1위를 달리던 전자 산업은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기업들은 저마다 몸을 낮추고 생존 방법론을 찾고 있다. 기업이 위축하다 보니 시장 역시 쪼그라들고 국가 경제 전반이 활기를 잃었다. 늘어만 가는 부채에 대한 부담이 연말 미국의 제로 금리 시대 종결로 최고 경보 단계까지 올라갔다.
올해도 뚜렷한 반전의 기미는 없다. 미국 금리 인상은 여전히 경제에 부담을 주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신흥국 경제의 침체, 저유가 장기화 등은 우리를 계속 누르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천문학적인 부채와 부동산 거품, 소비 침체, 생산 경쟁력 저하 등 불안 요인이 산적하다.
커다란 벽 앞에 서 있는 형국이다. 이 벽을 넘는 방법은 산업의 회복이다. 경쟁력 없는 산업과 부실한 기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새로 틀을 짜는 산업 구조의 개편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에는 반발이 따를 수밖에 없어 슬기롭게 헤쳐나갈 지혜가 필요하다. 희생도 불가피하다. 이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우리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 열정적이고 지혜로운 붉은 원숭이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다.
이근형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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