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1조달러 달성 실패 … 경제성장률 2%대 '저성장' 위기
스마트폰·LCD 등 중국 맹추격에 주력품목 수출경쟁력 약화
기업 M&A 등 사업재편 '선택과 집중' 미래 동력 찾기 사활
스마트폰·LCD 등 중국 맹추격에 주력품목 수출경쟁력 약화
기업 M&A 등 사업재편 '선택과 집중' 미래 동력 찾기 사활
■ reDesign 대한민국
한국경제 새 틀을 짜자
"매년 치솟는 물가 인상을 걱정하던 우리나라가 어쩌다 물가가 오르지 않아 걱정하는 상황까지 이르렀을까요. 그만큼 돈을 못 벌고 못 쓴다는 얘기이니 기업들도 앞으로 계속 힘들 것 같습니다."
오일쇼크와 IMF 구제금융,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등 수차례의 위기를 극복한 한국 경제가 이번엔 '저성장'이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지금까지의 위기가 외부에서 온 충격과 성장 중심의 무리한 확장에 따른 성장통이었다면, 이번 위기는 성장동력 자체가 없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경제계는 이 같은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자·자동차·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규모의 경제에 기술력까지 따라잡은 중국과 엔저와 원천기술을 앞세워 부활하고 있는 일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 선제 투자'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한다.
◇무역규모 2010년 이전 회귀…경제성장률 2%대 고착화= 우리 경제가 이처럼 위기에 직면한 가장 큰 원인은 수출 감소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중 수출 비중이 50%가 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까지 우리나라의 교역 규모는 8860억달러(수출 4846억달러, 수입 4014억달러)에 불과하다. 아직 연간 통계가 나오진 않았지만, 현재의 분위기면 2010년 이후 처음으로 무역 1조달러 달성이 실패했다.
앞으로 닥칠 상황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경제성장률이 3% 이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등 국내 주요 연구단체는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 수준으로 전망했고, 현대경제연구원(2.8%)과 한국경제연구원(2.6%) 등도 비슷한 전망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현 상태가 유지되면 고령화와 저출산 등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2026~2030년 잠재성장률은 1.8%까지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외부에서 보는 한국 경제 진단도 이와 비슷하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구조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한국의 신용등급을 언제든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국내 12대 주력사업 가운데 조선과 철강,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주력 제품의 수출규모가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전자·자동차 등 주력산업 경쟁력 약화…중국 급성장= 이 같은 분석은 주요 제조업에서 국내 대기업들의 경쟁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력 수출품목인 전자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해 3분기까지 해외 매출이 3% 이상 줄었고, 현대차의 해외판매 실적 역시 지난해 11월까지 기준으로 1.4% 줄었다.
조선, 철강, 건설, 정유, 화학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국내 조선산업 수주액이 2014년보다 27%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고,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저유가에 따른 오일머니의 위축으로 올해 해외 건설 수주액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500억달러 이하로 내려갔다.
물론 최근 국내 기업들의 수출 부진의 주 요인은 미국의 금리인상과 저유가 장기화,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 등 대외 경제 여건이 주 요인이다. 그렇지만 약 15억명의 강력한 내수시장과 소위 '대륙의 실수'로 불릴 만큼 기술 경쟁력에서도 우리나라를 거의 추격한 중국과 엔저 등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장기 저성장에서 벗어나려는 일본 업체들의 공격적인 움직임 등으로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실제로 중국은 삼성전자의 주력 수출품으로 꼽히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을 꾸준히 높이는 중이고, 올해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이 30%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속속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중국 국영기업 칭화유니그룹이 190억달러를 들여 미국 플래시메모리회사인 샌디스크를 인수하는 빅딜로 국내 제조업체를 위협했다. 디스플레이 역시 BOE가 국내 업체보다 먼저 10.5세대 LCD(액정표시장치) 라인을 오는 2018년까지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세계 시장 1위 자리를 뺏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동차의 경우 폭스바겐 등 주요 완성차 업체가 현지 기업과 합작해 중국에 생산공장을 짓도록 유도하면서 자국 기업을 키우는 중이고, 정유·화학 역시 시노펙 등 국영기업을 앞세워 대규모 투자를 하는 중이다. 일본의 경우 엔저에 힘입어 간판 업체인 소니와 토요타 등이 '어닝 서프라이즈'급 실적을 거두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주요 대기업 사업재편 잰걸음…정부 도움 절실= 이 같은 저성장 위기 속에서 주요 대기업은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삼성그룹의 경우 한화에 삼성테크윈 등 방산·화학계열사를 넘긴 데 이어 지난해에는 삼성SDI 케미칼사업부문과 삼성정밀화학 등 나머지 3개 화학계열사를 롯데에 팔았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제철이 지난해 2월 동부특수강을 인수한 데 이어 7월에는 현대하이스코를 합병해 경쟁력을 키웠고, SK그룹은 CJ헬로비전과 반도체 소재 회사인 OCI머티리얼즈를 인수하는 등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투자를 했다. 재계에서는 올해에는 주요 그룹사의 사업재편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국내 산업계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울러 올해부터는 정부와 금융권을 중심으로 소위 '좀비기업'을 정리하는 작업도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해 극심한 부진을 겪었던 조선·철강과 중국의 대규모 증설로 공급과잉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석유화학 등의 산업군에 대한 구조재편 움직임도 예상된다. 재계는 바이오와 자동차 부품, 에너지 등 미래 사업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단 재계에서는 정치권이 주요 기업들의 자발적인 사업재편의 물꼬를 터줘야 경제 활성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은 이를 위해 기업들이 인수·합병(M&A) 등 사업재편을 빠르게 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나 규제를 줄여주는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의 조속한 처리를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이와 관련, "우리나라의 경제 부진은 경기 순환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중기적인 현상"이라며 "경제정책의 주된 방향은 성장률 목표를 맞추는 것보다는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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