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통합 교육과정`, 학력저하 불러온다

문·이과 통합 시도는 학생 학습권 저해 가져와
융합형 인재 양성 목표는 실제 교과목과 거리 멀어
교육현장 학력 저하 불보듯 정책 합의과정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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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9-2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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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통합 교육과정`, 학력저하 불러온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탄소문화원 원장


문·이과 통합형이라는 2015개정 교육과정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교육부가 주요사항을 발표하고 꼭 1년 만에 화려한 교육과정 총론과 함께 초·중·고등학교 12개 학년 200여 과목의 각론을 완성하는 '초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정치인 출신 장관의 무관심 속에서 암울한 현장의 기억 대신 달콤한 권력의 맛에 흠뻑 취해버린 교사 출신 전문직 관료들에 의해 밀실에서 졸속으로 추진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수능 개편은 2017년으로 미뤄버렸다. 정체불명의 '통합'이 학교 현장에서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것이다.

교육부의 문·이과 통합 시도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이었다. 학생들의 학습권과 미래 행복 추구권을 제한하는 기형적이고 반인권적인 문·이과 구분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에 대한 엉터리 인식조사로 촉발된 한국사 필수화 논란을 해결하기 위한 행정편의적 꼼수가 엉뚱하게 교육과정 개정으로 번져버린 것이었다. 실제로 2015개정에는 문·이과 구분 교육의 진짜 폐해에 대한 진정한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동안 교육부의 치명적인 정책 실패를 모두 문·이과 구분 교육 탓으로 떠넘겨 버리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담겨있다고 봐야 한다.

교육부가 가장 중요한 개선 사항으로 강조하는 '지식 암기식 교육'이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돼버린 '수포자' 이슈는 문·이과 구분 교육이 아니라 '과목별 학력고사'로 변질돼버린 '가짜 수능' 때문에 불거진 것이다. 1993년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을 도입한 이유가 바로 과도한 과목별 암기 교육의 폐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수능은 도입 2년 만에 과거의 과목별 학력고사로 되돌아가 버렸다. 과목 이기주의의 틀에 갇혀 버린 교육부와 교육학자들이 통합적 수학능력을 파악하는 진짜 수능의 출제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교육부는 지난 20여 년 동안 그런 사실을 애써 은폐하고 과목별 학력고사를 수능이라고 국민을 속여 왔던 셈이다.

진단이 잘못되면 처방도 틀릴 수밖에 없다. 암기식 교육이나 수포자의 문제를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포함한 7개의 '공통과목'으로 해결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더욱이 공통과목을 새로운 시도라고 볼 수도 없다. 1998년에 시작되어 치명적인 학력저하를 초래하고 말았던 제7차 교육과정의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되살린 낡은 시도일 뿐이다. 과목 이기주의의 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어설픈 공통과목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인문·사회·과학기술에 대한 기초소양과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길러주겠다는 교육부의 주장도 터무니없는 것이다. 학생들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선택한다는 90여 개의 '일반선택'과 '진로심화선택' 과목으로 구성된 교육과정을 '문·이과 통합형'이라고 부르는 것도 잘못이다. 결국 2015개정은 철저하게 실패해버린 제7차 교육과정을 되살린 엉터리 교육과정이다.

과목별 각론과 아무 관련도 없으면서 미사여구로 가득 채워진 총론의 문제도 심각하다. 홍익인간을 바탕으로 자주적이고, 창의적이고, 교양을 갖추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창의융합형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목표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학생들에게 자기관리·지식정보처리·창의적 사고·심미적 감성·의사소통·공동체 역량을 키워주겠다는 시도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총론에서 강조하는 화려한 인재상과 핵심역량이 실제로 학생들이 배우게 될 교과목과는 아무 상관없이 급조된 것이라는 사실은 만천하가 알고 있는 진실이다.

교육부가 무책임한 학부모 단체를 등에 없고 교묘한 언론 플레이를 통해 여론화에 성공한 학습내용 축소의 폐해도 심각하다. 지식기반 사회를 살아가야 할 학생들에게 학습 부담을 핑계로 학습내용을 줄여버리는 것은 사실상 교육을 포기하는 일이다.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을 중학교 수준으로 내려버린 2015개정은 공교육을 죽이고 사교육만 부추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부담만 주고, 학생들의 학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반(反)교육적 교육과정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일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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