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TDX-1' 2만4000회선 개통
세계 10번째 전자교환기 생산국 올라
1991년 퀄컴과 CDMA 공동개발 착수
1995년 6월 코엑스서 상용시험 성공
국산 이동통신기술력 '세계최고' 입증
세계 10번째 전자교환기 생산국 올라
1991년 퀄컴과 CDMA 공동개발 착수
1995년 6월 코엑스서 상용시험 성공
국산 이동통신기술력 '세계최고' 입증
■기술로 이룬 70년 성장신화
(10) 1인 1전화 … ICT코리아 이정표를 쓰다
"연구원 일동은 시분할 전전자교환기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만약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을 것을 서약한다."
지금부터 33년 전인 1982년 한국전기통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ETRI)의 한 사무실. 당시 최순달 소장과 양승택 시분할교환기개발단장 등 기관장과 관련 부서장들은 각자 앞에 놓인 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그야말로 혈서를 쓰듯 비장한 각오였다.
1986년 우리나라가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게 해준 'TDX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반드시 성공해 내고야 말겠다는 결의에 찬 ETRI 연구자들의 땀과 희생, 정부의 강력한 지원, 공고한 산연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가구 1전화' 개막의 주역 'TDX' 개발=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후인 1960년대 우리나라에 전화가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이후 전화 가입자 수는 갈수록 늘어났지만 전화 적체현상은 갈수록 심해졌다. 통화품질도 좋지 않아 열 번, 스무 번 다이얼을 돌려도 통화가 될까 말까 했고, 전화 신청에서 설치까지 1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로 통신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문제는 교환기였다. 기계식 교환기로는 늘어나는 전화 수요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은 전자식 교환기 개발이었다. 당시 전자식 교환기 개발은 세계적 추세였다. 캐나다, 미국, 일본, 스웨덴 등은 이미 상용화를 마친 상황이었다. 정부는 전화 적체 해소와 경제발전을 위해 1981년 전자교환기 개발계획을 최종 확정하고, '시분할 전전자교환기(Time Dvision Exchange, TDX) 개발사업'의 돛을 올렸다.
한국전기통신연구소는 정부에 연구개발 기간 5년, 연구 참여인력 1300여 명, 연구비 240억원이라는 TDX 개발 계획안을 제출했다. 우리나라 사상 초유의 대형 프로젝트였다. 당시 군 장비 개발을 위한 사업을 제외하고 10억원이 넘는 프로젝트조차 드문 시절임을 고려할 때, 240억원의 연구비를 투입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일이었다. 더구나 대형 연구개발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던 상황에서 일부 선진국만이 성공한 시분할 전전자교환기 개발에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 만큼 TDX 개발은 국내외 보유 기술과 자원을 총동원하는 범국가적 프로젝트로 추진됐다. 한국전기통신연구소가 개발을 맡고, 참여 기업들은 기술을 이전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산연협력' 체계가 갖춰졌다.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던 터라 개발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었지만, 참여 업체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기계식 교환기와 아날로그 교환기 제작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전자식 교환기를 개발·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드디어 1986년 3월 전북 무주, 경북 고령, 경기도 전곡, 가평 등 4개 지역에서 TDX-1 2만4000회선을 동시에 개통, 세계에서 10번째로 전자교환기를 개발·생산하는 국가 반열에 올라섰다.
TDX 개발 성공의 의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개발에 참여한 연구자는 물론 당시 모든 분야의 과학기술자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심어줬다. 우려를 딛고 시작한 TDX 개발은 우리나라가 'IT강국 코리아'로 올라설 수 있는 출발점이 됨과 동시에 세계 최초로 CDMA 개발에 성공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1인 1전화 시대' 연 'CDMA 성공신화'=CDMA 개발을 1년 앞둔 1993년 가을. ETRI 6연구동의 한 실험실 문에 '작전본부'라고 쓰인 작은 명패가 붙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빠듯한 개발 일정에 쫓기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퀄컴과 3단계 공동개발 계약을 앞두고 상공부가 제2 이동통신사업에 TDMA(시분할 다중접속)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체신부는 상공부의 이러한 주장을 무마시키기 위해 1997년으로 예정됐던 CDMA 상용화 시기를 예정보다 2년이나 앞당겨 1995년에 상용화를 완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상용화 일정이 앞당겨지자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갔다.
1년 남짓한 개발 기간을 남긴 상황에서 정부 관계자들은 한밤중에 불쑥 실험실에 나타나 개발 상황을 점검했고, 당시 양승택 소장도 거의 매일같이 실험실에 들러 연구자들을 독려했다.
어느덧 야근과 밤샘 작업은 일상화됐고, 새벽에 호출을 받고 나와야 하는 상황도 빈번해졌다. 급기야 담당 연구자를 언제라도 호출할 수 있도록 '삐삐'가 지급됐다. 중요한 장비의 운용 요원은 24시간 대기조로 편성, 해당 시험팀들을 지원했다. 이러한 생활이 1년 가까이 계속됐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험실에 붙은 '작전본부'라는 명패가 말해주듯 연구자들은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비장한 각오로 치열한 '기술개발 전쟁'에 뛰어든 전사와도 같았다. 드디어 1994년 4월 17일, ETRI 6연구동 실험실에서 마침내 첫 통화에 성공하는 감격적인 순간이 왔다. 이듬해인 1995년에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에 성공하는 쾌거를 올렸다.
CDMA는 TDX에 이어 ETRI가 주도한 프로젝트였다. TDX 개발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ETRI는 우리나라 이동통신 산업 발전을 위해 1988년 '디지털 무선통신시스템 개발과제'를 제안했고, 정부는 '디지털 이동통신시스템 개발사업'으로 승인해 1989년부터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이 사업은 연구비 441억원, 연구인력 608명이 투입된 대규모 프로젝트로, 통신 분야에서 TDX에 이어 또 하나의 대형 사업이었다.
프로젝트를 담당한 ETRI가 목표로 삼은 기술은 TDMA였다. 그러나 TDMA 방식을 선택하기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먼저 개발완료 예정 시점이 1996년이었는데, 당시 가입자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보다 큰 용량의 시스템이 필요했다. 또 이미 유럽에서 GSM이 개발돼 상용 서비스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이 기술을 이용해 시스템을 개발할 경우 핵심 기술 확보가 어려워져 또다시 선진국 기술에 의존해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던 중 당시 미국의 작은 벤처기업이었던 퀄컴이 개발한 'CDMA 이동전화실험시스템(RTS)'을 접하게 됐다. CDMA는 가입자 용량이 아날로그 방식의 10배, TDMA 방식의 3배 이상이었고, 전파 효율성과 기지국 배치 면에서도 TDMA 방식보다 뛰어난 기술이었다. 하지만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우리나라 이동통신의 미래가 달려 있기에 선택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ETRI는 CDMA 방식을 선택했다. CDMA 방식으로 시스템을 개발할 경우 선진국의 시스템 기술 종속을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세계시장 진출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책 연구기관으로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기술을 선택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ETRI는 CDMA 방식을 선택할 경우 최신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개발하고 상용화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논리로 정부와 학계, 산업계를 설득했다. 결국 1991년 5월 퀄컴과 CDMA 공동개발 계약서에 서명하고 본격적인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대한민국 이동통신의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개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업체 선정 지연과 상용화 일정 단축, 교환방식 논란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예정된 상용화 시기를 맞출 수 있을 지 위태로웠지만, 이를 극복하고 1994년 4월 17일 KCS-2(Korea Cellular System)의 첫 통화시험에 성공했다. 첫 통화에 성공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상용모델인 CMS(CDMA Mobile System)-1 시험통화에도 성공했다. CMS는 KCS와 달리 처음부터 경제성을 고려해 만든 상용 가능 모델이었다. 1995년 6월 9일, 서울 코엑스에서 CDMA 상용 시험통화 시연회가 열렸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상용화되지 않은 CDMA 기술을 ETRI와 국내 업체가 개발해 상용시험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입증해 보였다.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동통신 산업의 최강국으로 떠올랐고, 오늘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적 최고의 휴대전화 기업으로 발전했다. 대한민국 대표 산업이자 다른 모든 산업의 혁신 토대가 된 'IT산업'의 대들보를 놓은 것이다.
대전=이준기기자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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