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원자력발전소의 사이버 보안 취약문제가 대두됐다. 지난 5년간 2000회 가까이 사이버 침해를 당했고, 기본적 정보보호 수칙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수원은 2013년 4월부터 외부망과 철저히 차단된 폐쇄망을 운영 중이라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과연 그럴까.
일본 몬주에서는 업데이트를 수행하던 중 악성코드에 감염돼 4만개가 넘는 문서가 도난당했다. 이란에서는 악성코드가 단자를 통해 원전 전산망에 전파됐으며, 미국에서는 전직 직원이 원전을 공격하려다 발각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주제어계통과 원심분리기가 파괴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한수원 측은 제어망과 업무망을 분리해 위협은 없고 지원중단 운영체제를 쓰더라도 보안장치가 있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맹신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독립적인 망이라 하더라도 관행적 실수나 악의적 공격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산업부는 한수원 내부망에서 외부침투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유출된 자료는 보기 힘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건의 정확한 유출 경위는 밝히지 못했다. 어떠한 경우라도 보안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힘들다. 금고의 문이 열렸는지 확실친 않아도 구멍이 난 건 사실이다. 한수원의 초기대응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인터넷에 떠도는 자사의 대외비 도면과 교육용 자료를 언론보도를 통해 인지했다면 국민의 비난을 비켜가기 어렵다. 도둑이 든 줄도 모르고 있다 도둑이 자진신고 하니 그제야 법석을 떠는 꼴이다. 국가 최상급 보안시설을 맡길 수 있는 건가.
그럼에도 산업통상자원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례적으로 신속한 결론이다. 물론 맞는 얘기다. 어차피 몇 년째 멈춰있는 월성 1호기가 기껏 도면 몇 장에 넘어갈까. 그러나 유출된 자료의 양과 질이 모두 백일하에 드러난 다음 신중하게 발표하는 것이 맞다. 문제의 본질은 10장이 됐건 10만 장이 됐건 절대 나돌아다니면 안 될 문건이 전자공간에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이는 안전에 앞서 국방과 국익이 결부된 사안이다. 국가 안보에 구멍이 났고, 수출 전선에 빨간불 하나가 더 켜졌다. 자체 운영도 허술한 나라의 원전을 누가 선뜻 사들일 것인가.
국내 원자력계는 부품 비리, 금품 수수, 가격 담합 이후 정보 누출까지 악재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발전소는 유사시 제1호 공격 대상이다. 그 뒤에 전력망이 이어져 있고, 전류가 끊기면 기반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일 수도 있다. 이번 사태는 사이버 전쟁의 전주곡일 수도 있다.
미국 국가안보국장 겸 사이버사령관이 중국, 러시아 등이 사이버 공격으로 전력망 가동을 중단시킬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사이버 공격의 가능성은 이미 널리 알려졌으나 미국의 사이버 작전 수장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과대포장일 수도 있지만 우리 원전과 전력도 이러한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원전 운전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도 국민 안녕이 앞서야 할 것 아닌가. 원자력의 안전은 운영자의 과신 앞에서 스러질 수도 있다. 국민과 원전이 공감에 이를 때까지 안전하다는 말은 아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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